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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의가 있으니 저녁 먹고 한분도 빠짐없이 마을회관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장님이 방송을 했다.

오늘 저녁 안건은 위친계였다. 위친계란 상을 당했을때 서로 돕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조직한 계다. 우리 마을은 그동안 적립한 위친계 돈이 천만 원 가까이 된다고 했다. 외지에서 들어온 뒷집, 우리집, 들이네 이 세 집을 빼고는 마을 사람 모두가 계원이다.

"제가 한 말씀 할랍니다."

동네분들의 발언은 항상 이렇게 시작된다. 물가상집 어르신이  앞으로 나섰다.

'"그동안 위친계가 있어서 우리가 상부상조 했왔는디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단 말입니다. 인자는 모도 장례식장으로 가잖어요. 그러니 동네에서는 헐 일이 없어. 글고 우리가 인자 나이가 많아서 힘이 없응께 상여를 메겄소, 산에 가서 멧자리를 파겄소. 모다 장례식장에서 알아서 해준단 말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위친계를 깨면 어쩔까 헙니다."
"저도 이 형님과 이야기를 좀 해봤습니다만 그 말씀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헙니다."

선숙이네 아저씨가 동조를 했다.

마을회의
 마을회의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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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생각 안허요. 지금 위친계를 깨도 그만 안 깨도 그만 아니요. 달라질 것이 별로 없단 말이요. 그러면 그냥 두는 것이 어쩔까 싶네요. 뭔 일을 당허면 도시에 있는 자식들이 온다허지만 그것도 오는데 시간이 걸린단 말입니다. 당장 가까운 동네사람들이 나설 수 밖에 없는디 위친계가 있는 것하고 없는 것은 다를 것이단 말이요."

앞집 아저씨가 발언하고 이번에는 봉덕이네 아저씨가 동조를 했다. 깨자는 측과 그냥 두자는 측 의견이 팽팽이 맞서서 주거니 받거니 발언을 하느라 시간이 자꾸 흘러갔다.

모여앉은 할매들은 수군수군할 뿐 발언하지는 않는다. 

"없으면 서운해."

그 중 탑골할매 소리가 크게 들렸다. 여든 다섯 잡수신 탑골할매는 아침 일찍 회관으로 출근해서 종일, 그리고 회의가 있으면 저녁까지도 꼿꼿이 앉아서 항상 자리를 같이한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의견을 말한다.

"내가 딱 봉게 할매들은 위친계가 그대로 있으면 허는것 같은디 그러지라? "
"하먼, 고것 없애불면 허전해."

수군거리던 할매들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헙시다. 일년 더 두고 보다가 내년에 회의를 해서 정합시다."

위친계를 깨자는 측이었던 선숙이네 아저씨가 한 발 물러서서 회의를 마무리 했다. 홀로되어 멀리 있는 자식들을 의지하는 할매들이 비로소 안도하는 얼굴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다같이 식사
 회의가 끝나고 다같이 식사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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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돕고 사는 것을 계라는 형식으로 공식화한 일종의 마을 규약이 자연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이 두계골짜기의 작은 마을 내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을 구성원들 사이에 쳐진 촘촘한 그물인 셈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오랜 풍습들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없어지기도 하고 영향 받는 것 또한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태그:#귀촌 , #두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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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두계마을에서 텃밭가꾸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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