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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하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벌써 10년,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하고픈 일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자신이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이 일을 하면서야 알게됐다. 남보기에 어떨지 모르지만 행복하다.

지세창(50, 충남 예산군)씨. '영철버거'라는 펼침막을 단 파란 트럭에 떡볶이와 어묵, 버거, 소시지 딱 네가지 메뉴를 싣고 마을로 가는 사람.

영철버거
 영철버거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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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신례원, 삽교, 봉산. 요일마다 가는 마을은 다르지만, 그 동네 사람들은 다 안다. 영철버거 아저씨 오는 날. 특히 화요일 출장지인 신례원 성문아파트에서 그는 가족같은 존재다.

점심 즈음 아파트 정문 앞 길가에 이동 매점이 문을 열면 그 앞을 오가는 주민들은 사먹든 안 사먹든 세창씨와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디 다녀오세요?"
"많이 파세요."
"예, 고맙습니다."

꼬맹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이들 이름도 다 알고, 뉘집 아들이 군에 갔는지, 누가 몸져 누웠는지 어지간한 소식은 꿰고 있다.

"벌써 10년 세월인 걸요. 임신부가 우리집 어묵을 좋아하더니 태어난 아이도 학교갔다 오는 길에 꼭 들르는 단골이 됐어요. 밤 늦은 시간에는 소주 한 병 사들고 오셔서 어묵 안주삼아 한 잔하시며 이런저런 얘기하시는 어르신도 계시고…. 제가 여름과 겨울에 딱 한 번씩 쉬는데요. 한 주 걸러 오면 '지난주에 왜 안왔냐''어디 아팠냐' 걱정들을 해주신답니다."

그는 아이들이 오면 "잘 있었어?" 인사하고, 농담도 주고 받는 다정한 아저씨이다. 그러다가도 욕을 섞어 대화하는 아이를 보면 반드시 그 욕의 어원과 욕을 하면 안되는 이유를 길게 '잔소리' 한다.

"예전에는 아이를 골목에서 키운다고 했죠. 동네 어른들이 모두 부모된 마음으로 함께 한다는 얘긴데요, 그게 안 되는 세상이 됐어요. 근데 요즘 아이들도 얘기하면 달라진답니다. 재미있고 착한데 분위기 때문에 거칠어진 것 뿐이에요. 저야 걔네들 꼬맹이적부터 봐온 사람이니까 편하기도 할테고…."

나이가 적거나 많거나, 심지어 반항의 사춘기에도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해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모두 마친 그는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없어진 대산건설이 잘 나가던 때 토목부 좋은 자리에서 근무했지만, 늘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갈망이 컸던 그는 '좋은 직장'을 수년만에 그만두고 '빵장사'를 시작했다. 고교때 미술에 뜻이 있었던 그가 늦게라도 꿈을 찾아가기 위해 나섰던 길에 우연히 맛본 빵이 삶을 크게 바꿔놓았다.

"처음엔 직장 동료들이 트럭에서 장사하는 저를 보면 민망해 하더니 나중에는 오히려 부러워하더라구요."

그도 그럴 것이 그날 재료는 반드시 그날 마련하고 맛에 자신있을 때까지는 메뉴로 내놓지않을 정도로 프로정신이 있는 데다,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것이 즐거워 얼굴이 늘 벙싯벙싯한 그를 보면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가 파는 어묵과 떡볶이, 살짝 익힌 양배추에 햄을 하나 얹은 뒤 원하는 소스를 뿌려주는 버거에 얹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추억. 친정에 왔다가 학창시절 먹던 맛이 생각나 일부러 들렀다는 애기 엄마,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 고등학교 때 야자 제끼고 먹던 버거가 제일 먹고 싶었다며 찾아온 청년….

추억을 찾아 오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또 누군가의 추억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서로 다른 색깔로 기억될 누군가의 그 때, 그 곳, 그 시간들. 그 추억들의 고향이 될 세창씨의 꿈은 무엇일까.

"제게 딸이 둘 있는데요, 아내랑 가끔 그런 얘기를 해요. 우리 가게 이용해주시는 손님들 덕분에 우리 아이들 공부 시켰으니 둘 다 대학 졸업시키고 나면 값을 더 내려서 보답하자."

어느새 계절은 동장군의 기세에 옷깃 여미고 종종걸음을 치다가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길거리 음식이 반가운 12월이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영철버거, #지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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