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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의 앙골라와 함께 양질의 지하자원 쟁탈전이 한창인 모잠비크 내륙에 위치한 테테 시내를 가로지르는 잠베지 강과 철교.
▲ 잠베지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서부의 앙골라와 함께 양질의 지하자원 쟁탈전이 한창인 모잠비크 내륙에 위치한 테테 시내를 가로지르는 잠베지 강과 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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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몇 년 전까지 그랬단다.  아침, 눈부신 햇살에 견딜 수가 없다. 눈을 떠보니 온도계는 35도를 가리킨다. 한낮,  버스 창문을 여니 이건 숫제 바람이 아니라 히터를 틀어놓은 듯하다. 45도. 습도까지 높으니 푹푹 찌는 지옥이 따로 없다(옛날 5월 어느 날, 인도 부다가야에서 창문 열고 자다가 기절한 적이 있다).

여긴 아프리카 모잠비크 테테. 해발 1000미터 고원에 자리 잡은 말라위와 짐바브웨 사이에 부대끼다 그만 바닥 아래로 꺼져 버린 땅. 그 사이로 황량한 아프리카 대륙을 적시다, 빅토리아 폭포로 떨어져 다시 수천리를 달려온 잠베지 강이 흐른다. 왜 이렇게 더우냐 하니, 사방으로 가로막힌 분지 지형인데다 석탄이 묻혀있는 땅이라 지열이 대단하다고 한다. 그러니 강은 강이고 바람은 바람이로되 웅크린 열기만 휘젓는 꼴이 되어 버린다.

그래도 그 옛날부터 산에 살던 사람들과 낮은 땅에서 살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 장터를 열었던 곳. 세월이 흘러 희망봉을 돌아온 포르투갈 사람들이 몰려오고, 니아사랜드(말라위)로 향하는 영국인들이 강을 거슬러 도착했던 테테. 그들이 떠나고, 독립하고… 그랬건만,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오로지 땡볕이 퍼질러 놓은 무더위만 남았다.

그러다 양질의 탄광이 발견되고, 담배 공장이 들어섰다. 다시 일확천금을 노리는 외국인들이 비행기를 타고 오고, 필리핀 인도네시아 광부들을 데려 오고, 돌고도는 돈을 붙잡으러 슬리퍼를 실은 중국인도 몰려오고, 그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 소문에 휘둘려 보따리를 싸서 도시로 도시로 밀려온다.

"그건 별거 아냐, 그냥 므중구가 신기한 거야"

아침이면 간단한 차와 빵을, 저녁이면 집에서 담근 술을 파는 골목의 선술집. 보잘 것 없지만 시대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스하고 왁자지껄한 웃음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 아프리카 선술집 아침이면 간단한 차와 빵을, 저녁이면 집에서 담근 술을 파는 골목의 선술집. 보잘 것 없지만 시대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스하고 왁자지껄한 웃음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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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기억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를 만난 건 3년 전, 탄자니아 다르에르살람에서 스무 시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말라위 므주주에서였다.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 사람으로, 그 당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여관을 전전하던 때였다.

그리 비싸지 않은 여관방에서 침대 하나를 비워주고, 빈한한 세간살이를 부끄럽지 여기지 아니하고, 떠날 때 라면 세 봉지를 건네주던…. 사람이 사람에게서 감동을 느끼는 것은 별다른 게 아니다.

체면이란 결국은 상대방을 위함이 아닌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 한밤중까지 지직거리던 여관 방안의 텔레비전과 코 고는 소리, 그리고 내 손에 들린 라면 세 봉지. 그것 때문이었다. 짐바브웨 하라레에서 소식을 듣고 달려온 까닭은.

"우리 보고 '치나' '치나(중국인)' 라고 하는데, 그것도 호기심인 거야. '치나'라고 했다고 화내거나 열 받지 마. 그냥 반가워서 그런 거니까. 로컬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는 걸 좋아하거든. 어쩌다 므중구(외국인)가 이런 데서 술도 마시냐고, 어떤 사람은 술도 사줘.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 그러면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내가 술을 쫘악 돌리지. 크크.

간혹 어떤 여자가 신호를 보내기도 하거든? 그건 별거 아냐. 그냥 므중구가 신기한 거야.
조금 있다가 내가 물어보지. '너…하고 싶어?' 글면 그렇다는 거야, 키득키득. 므중구는 어떻게 생겼는지, 힘이 센지 아닌지 궁금한 거야, 낄낄낄."

그는 스스로 말하길 가방끈도 짧고, 건달도 못 되는 양아치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람을 좋아하고, 소박함을 허세로 가리지 아니하며,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줄 아는, 로컬 술집을 좋아하고, 흑인 친구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래서 우리가 에이즈와 아프리카의 문란한(?) 성 문화를 연관시켜 탁상공론할 때, 그는 사람들 속에서 본질을 얘기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아프리카를.

아프리카, 공중에 떠 있는, 자극적인 빠알간 풍선

강은 부자와 빈자를 가르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저쪽은 상업 지역, 이쪽은 서민들의 주거지역이다. 그러나 점차 강변쪽으로 고급빌라와 카페등이 생겨나 서민들은 강 너머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 잠베지 강에서 바라본 테테 강은 부자와 빈자를 가르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저쪽은 상업 지역, 이쪽은 서민들의 주거지역이다. 그러나 점차 강변쪽으로 고급빌라와 카페등이 생겨나 서민들은 강 너머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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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사는 한인들 대부분은 사업, 관료, 종교, 봉사…그 누구든지 간에 아프리카 사람들과 섞여 살지 않는다. 마치 현지인들의 삶에서 떠난 고립된 섬과 같다. 그러니 로컬 술집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마시는 소박한 기쁨을 알리 만무하다. 인종적 편견이든, 경제적 우위에 따른 자만심이든, 한국인 특유의 끼리끼리 문화든지 간에.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자들 대부분 또한 저 멀리 저잣거리에서 떨어져 있다. 도시와 관광지만을 찍고, 혹은 개인적 모험담에 취하든 간에.

그래서, 변함없이, 오랜 시간 동안, 아직도 사람들이 얘기하는 아프리카는 한결같다. 수많은 이미지와 선입견들…가난, 질병, 에이즈, 원시부족, 야생동물 등…그것은 사실이나, 동시에 사실이 아니다. 그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매우 자극적인 빠알간 풍선과 같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 편린들을 붙잡고 아프리카의 전부를 말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프리카 돕기 캠페인이 화면에 뜬다.

이 무슨 소용이랴. 선술집에서 술 한 잔 걸치지 못하는 오장 육부를 가진 자라면,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껴안지 아니한다면.


태그:#모잠비크, #테테, #잠베지강, #아프리카식당, #아프리카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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