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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 아키히로 변호사
 시마 아키히로 변호사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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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2년 7개월이 넘었지만, 사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사고 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엄청난 양의 방사능 오염수를 원전 앞바다로 방출하고 있다. 또한 원전사고로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던 피난민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임을 누가 져야 할까? 현재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운영회사인 도쿄전력을 상대로 엄청나게 많은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원전을 만든 제조회사에는 책임이 없을까?

후쿠시마 원전 제조사는 히타치, 도시바, GE 3개 회사. 이들 회사는 일본 현행법에 의하면 원전사고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일본 원자력손해배상법에는 제조 회사의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전사고의 책임을 전력회사뿐만 아니라 원전제조사에게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주장만 제기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도 시작되었다.

후쿠시마 참사 모른 척 하는 히타치, 도시바, GE

지난 2012년 11월 10일 창립된 탈핵아시아행동(No Nucks Asia Action, NNAA)는 원전제조사에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NNAA는 이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1만인 원고 모집에 나섰다. 소송 시기는 2014년 1월 말로 잡고 있다.

소송에 참여하는 원고는 일본에서만 모집하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도 이 소송에 참여하기 위해 '후쿠시마사고 원전제조사 세계1만인 한국소송단 추진위원회'가 꾸려져 원고 모집에 나섰다. NNAA는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핵발전소가 건설되었거나 건설을 추진하는 아시아 국가에서도 원고를 모집할 예정이다.

후쿠시마 사고는 20세기 중반 이래 계속되어 온 핵시대의 위험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지속가능한 지구에서의 삶을 위해 우리는 탈핵시대로 가야 하기에 핵사고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고 원전제조사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세계 1만인 시민소송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 '후쿠시마 원전제조사 세계 1만인 소송' 팸플릿에서

일본의 현행법상 원전 제조사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데도 소송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한 사람은 시마 아키히로 변호사. NNAA는 시로 변호사를 만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소송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23일, 시로 변호사는 '후쿠시마 원전제조사 세계 1만인 소송'에 대한 설명회를 열기 위해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16살 때부터 로큰롤 가수로 활동을 시작, 26년 동안 6개의 음반을 낸 시로 변호사는 로큰롤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생각을 했고, 3년 전 변호사로 변신했다.

23일 오후 6시, 경기도 군포의 군포환경자치시민회 사무실에서 시로 아키히로 변호사를 만났다. 통역은 최승구 NNAA-J 사무국장이 했다.

편안한 복장으로 목에는 십자가 목걸이를,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에는 해골 문양의 두꺼운 반지를 낀 시로 변호사는 변호사라기보다는 자유분방한 기질을 지닌 예술가처럼 보였다. 목소리는 굵으면서 맑아 듣기 좋았다. 최승구 국장은 "가수 출신이니 목소리가 좋은 건 당연하다"고 거들었다.

1년 전인 2012년 10월, NNAA 창립총회를 앞두고 시로 변호사와 최 국장은 처음 만났다. NNAA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책임을 도쿄전력뿐만 아니라 히타치, 도시바, GE에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의 유명한 변호사들은 한결같이 "현행법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런데 시로 변호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혀 왔던 것.

"원자력손해배상법이 처음 만들어질 때 누구도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큰 사고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이 법은 피해자 보상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원자력 사업의 발전이 목적이었다. 법 자체가 헌법 위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전제조사 소송은 헌법소원이라고 할 수 있다."

"원전제조사는 책임 안 진다? 그 자체가 헌법 위반"

시마 아키히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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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AA는 소송을 제기하는 시점을 창립 1주년이 되는 2013년 11월 10일로 잡았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소송에 참여하게 만들기 위해 그 시기를 3개월 정도 늦췄다.

- 현재 일본에서 소송에 원고로 참여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나?
"200명이 넘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 1만 명 소송인데 너무 적지 않나?
"일본에서는 최저 1000명이 목표다. 세계적으로 만 명을 모집하는 거니까 최저 1000명으로 잡고 있다. 원고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 소송에 참여하고 있는 변호사는 몇 명인지?
"지금까지 21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 소송 금액은?
"1인당 100엔이다."

1인당 100엔이면 원고가 1만 명이라도 100만 엔밖에 되지 않는다.

- 금액이 너무 적다.
"금액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원전 제조사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따지기 위해서 제소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송금액을 100엔이라고 하면 금액에 대한 문제는 없어지고 책임이 있느냐 없느냐에 집중될 것이다. (원전제조사의) 책임을 집중적으로 따지기 위해서 금액을 그렇게 했다."

최승구 국장이 옆에서 통역을 하다가 "소송금액이 많아지면 인지대가 많이 들어 간다"며 웃었다.

승소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시로 변호사는 "원자력손해배상법 자체가 헌법 위반이기 때문에 그 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면서 "원전제조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답변했다. 시로 변호사는 "원전제조사에 책임이 없다고 하는데 그건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며 "그걸 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 소송에서 이긴다면 여파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전력뿐만 아니라 원전제조사에도 손해배상소송이 잇따를 것 같은데?
"당연하다. 소송에서 이긴다면 굉장히 큰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이다."

통역을 하던 최승구 NNAA 사무국장은 "원전제조사에 원전사고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온다면 그 영향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전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일본과 비슷한 원전배상법을 채택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원전 수출국가에도 타격을 줄 것이 분명하다. 일본과 한국은 대표적인 원전수출국가다. 지금까지는 원전을 수출한 뒤 원전사고가 나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됐지만, 원전제조사에 원전사고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수출한 원전에 대해 사고가 나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탈핵단체들이 후쿠시마 원전제조사 1만인 소송에 참여하면서 원고를 모집하는 배경에는 이런 이유가 숨어 있다. 일본과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가 탈핵으로 가려면 원전 수출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금 '흰곰소송' 중... 기후정의의 문제

시마 아키히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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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변호사가 후쿠시마 원전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현재 일본에서 진행 중인 흰곰(White Bear) 소송 때문이라고 했다. 흰곰 소송은 기후정의(Climate Justice)에 관한 재판이라는 게 시로 변호사의 설명이다.

지구 온난화는 CO2 때문인데, 이런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범은 선진국을 포함해 에너지 소비를 과다하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지구 온난화의 피해는 북극에 사는 흰곰이 입게 된다는 것에 착안해서 진행하는 소송인데, 그 문제를 파고들다 보니 원전까지 다다르게 되더라는 얘기다.

CO2 발생을 줄여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전력회사들이 핵발전소를 건설한다는 핑계를 댔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그런 전력회사들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 되었다. 시로 변호사는 원전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원전 문제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흰곰 소송에는 일본인 100명, 한국인 30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26년 동안 로큰롤 가수로 활동하다가 변호사로 변신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 얼마 동안 공부를 했느냐고 물었다. 3년 과정인 로스쿨에 입학했고, 로스쿨 기간을 포함해 4년 동안 공부를 했다. 로스쿨 입학시험에는 전반기에는 떨어졌고, 후반기에 합격했단다.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시로 변호사는 면접과 논문을 통해서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었다는데 최승구 국장은 "일본에서도 로스쿨은 입학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후쿠시마 원전제조사 세계 1만인 소송에 참여하는 변호사들은 대부분 젊다고 한다. 변호사가 된 지 1년~3년 정도 되는 젊은 변호사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게 시로 변호사의 설명이다. 시로 변호사 역시 3년밖에 안 된 신참이다.

가끔은 이전에 같이 활동하던 밴드와 함께 공연을 한다는 시로 변호사. 그는 "로큰롤을 하는 게 좋아서 로큰롤 가수를 했고, 지금은 변호사로 일하는 게 좋다"며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태그:#시로 아키히로, #후쿠시마?원전, #탈핵, #원전제조사,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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