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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수험생들이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자료 사진)
 고3 수험생들이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자료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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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수능시험이 35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수능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예전만 못합니다. 내신 위주로 선발하는 수시 전형의 모집 인원이 수능 중심의 정시 인원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서입니다. 수시 전형 기간을 지나면서 고3 교실은 전반적으로 열기가 확 떨어집니다.

그래도 여전히 수능 점수를 최저 학력기준으로 제시하는 학교가 적지 않습니다. 속칭 상위권 대학이나 학과일수록 수능 점수를 최저 학력기준으로 활용하는 데가 많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수능형 모의시험에서 점수깨나 나오는 아이들은 수능 시험이 끝나고 성적표가 나올 때까지 점수 스트레스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 고3 학생들을 위해서 보통의 학교에서는 토요일이나 공휴일에도 학교 교실을 개방합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문제도 풀고, 부족한 과목 내용 정리도 하라는 것이지요. 교실에 아이들만 두어서는 안 되니 감독 교사도 층별로 한 분씩 배치합니다.

오늘은 개천절입니다. 휴일입니다. 모두가 집에서 쉬는 날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휴일 자습을 위한 감독 교사로 배정되었습니다. 저는 집에서 7시 20분쯤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 후 8시 쯤에 출발했습니다. 학교에 도착하니 막 8시 20여 분이 되었습니다. 휴일 자습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등교를 마쳐야 하는 시각입니다.

출근해 교실을 둘러보니 각 반 교실에 아이들이 서너 명 정도씩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두 명만 있는 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우리 학교 고3 학급 중 휴일 자습 평균 출석률이 압도적으로 낮은 우리 반에 아이들이 세 명이나 있었습니다. 조금 놀랐습니다. 다른 반과 견준 평상시 휴일의 상황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우리 반에는 한 명도 없거나 한 명 정도만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소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그랬습니다. 토요일이나 국경일과 같은 휴일에는 집에서 푹 쉬면서 지친 몸 추스르는 게 중요하다, 나는 심지어 휴일에 우리 반 교실에서 자습을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도 전혀 상관 없다, 눈치 보지 말고 집에서 쉬고 싶거든 푹 쉬고 학교에 나오는 날 열심히 하면 된다, 휴일에 꼭 나와야겠다고 하더라도 힘들게 등교 시각에 맞추지 말고 늦잠도 좀 잔 뒤 나오라고 말입니다.

고3은 휴일에도 나와 공부하는 게 당연하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와 고3이 있습니다. 고3은 휴일에도 나와서 공부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나라가 대한민국 아닙니까. 그러니 처음에 우리 반 아이들이 저의 그런 말을 듣고 깜짝 놀라는 건 당연합니다. 모두들 반신반의합니다. 그래도 몇 주 지나면서 제가 확실히(?) 그 말에 맞춰 느슨하게 풀어주자 우리 반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응해 왔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휴일 자습에 아이들이 한 명도 나오지 않은 날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공부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아이들은 굳이 이런저런 말을 하지 않아도 다 나옵니다. 거꾸로, 그렇게 좋은 말로 풀어놓으면 나올 성싶지 않은 아이들도 '나도 좀 해 볼까' 하면서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들이, 오늘 우리 반에 여느 때와 다르게 많은(?) 아이들을 모이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휴일 학습은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하루 종일을 자기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 모자란 교과 공부를 느긋하게 충분히 보충하기에 딱 좋지요. 평소에는 부족한 독서 시간으로 쓰기에도 좋습니다. 우리 반에서도 휴일 자습에 참가하면 학급 문고에 있는 책을 꺼내 읽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독서만큼 좋은 공부도 없으니 휴일 자습 시간이 얼마나 유익합니까.

문제는 이런 휴일 학습이 강제적으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우리 학교는 전반적으로 그렇지 않습니다만, 상당수 학교나 교사가 휴일에 고3 아이들을 강제로 등교시킵니다. 그런 학교는 대개 출석 확인도 철저하게 합니다. 휴일인데도 지각을 하면 벌을 세우고, 심하게 꾸지람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적된 출석 상황을 종합하여 벌점을 매기거나, 야간 자율학습 강제 퇴출이니 기숙사 신청 배제니 하는 식의 불이익을 주기도 합니다.

많은 학교와 교사들이 이런 비교육적인 행위들을 교육의 이름으로, 그리고 학생의 장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거리낌 없이 저지릅니다. '비정상적인' 교육이 '정상적인' 교육으로 둔갑하는 순간입니다.

수능 시험은 1회용입니다. 그런데 그 1회용 시험을 위해 모두가 '비정상'의 회로 속에서 허덕입니다. 그 1회용 시험을 위해 아이들은 기꺼이 문제 풀이 기계가 되고자 합니다. 교사들도 '정상적인' 교육과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정상적인' 문제집 풀기와 정답 찾기 방법을 전수하는 데 골몰합니다. 그러면서 많은 학교와 교사와 학부모는 아이들에게 그 '비정상'을 지극히 '정상'인 것처럼 가르칩니다.

휴일엔 쉬는 게 정상... 몸도 마음도 망가지는 아이들

요즈음 둘째인 아들 녀석이 딱지치기 놀이에 푹 빠져 있습니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입니다. 둘째가 딱지치기를 하자며 저에게 졸라댔습니다. 학교에 자습 감독하러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섯 살짜리 꼬마가 왜 쉬는 날인데 학교에 나가냐며 제게 따져 묻습니다. 아무 할 말이 없었습니다. 쉬는 날에는 쉬는 게 '정상'일 텐데, 그렇지 못하고 학교에 가야 하는 '비정상적'인 저를 녀석에게 설명할 언어나 논리가 제겐 없었습니다.

고3 수험생이니 쉬는 날에도 학교에 가 공부하는 걸 '정상'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겠지요. 당연히 그들을 맡고 있는 고3 담임도 학교에 출근해 감독이든 뭐든 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렇습니다. 휴일에 학교에 가 공부할 수 있습니다. 휴일에 자습 감독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곤란합니다. 그것을 '정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휴일에는 쉬는 것이 '정상'입니다. 휴일에 일하고 공부하는 것은 분명 '비정상'입니다. 휴일은 쉬라고 있는 날이지 일하고 공부하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자명한 사실을 망각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게 일하고 공부하는 이들의 몸이 망가집니다. 쉬어 힘을 보충해줘야 할 날에 몸을 또 쓰니 안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 차차 마음까지 허물어집니다. 일하고 공부하는 일을 당연히 여기고, 다른 이보다 더 일하고 공부하려는 욕심이 생겨납니다. 무엇을 위한다는 목적도 없이 당장 무조건 일하고 공부하는 데 정신이 쏠리니 세상을 돌아볼 겨를이 없어집니다.

그러면서 마음이 점점 강퍅해집니다. 그런 몸과 마음을 가진 이들이 모인 공동체 전체도 메말라갑니다. 강한 이가 약한 이를 밀쳐내고, 약한 이들은 하릴없이 밀려나는 아귀 다툼이 끝없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온 세상은 시나브로 소위 '팔꿈치 사회'가 되고 '피로 사회'가 돼가는 것이지요.

국어 교사는 '평상복' 차림으로 '시집'이나 '펜'을 드는 것이 '정상'입니다. 마찬가지로 체육 교사는 '운동복'을 입고 '공'을 들고 다니는 게 '정상'입니다. 국어 교사가 '운동복'을 입은 채 '공'을 들고 다니며 설치거나, 체육 교사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시집'을 들고 다니기 시작하면 무언가 이상합니다.

'정상'을 '비정상'으로 호도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정상'을 '정상'이라며 강변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들이, 휴일에는 '정상적으로' 집에서 푹 쉬고, 평일에 일터나 학교에 나가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국경일인 개천절에 수능을 30여 일 앞둔 아이들 앞에서 자습 감독을 하는 '비정상적인' 저의 넋두리가 넋두리만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상과 비정상, #휴일 자습, #팔꿈치 사회, #피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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