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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은 높고 수려한 산세,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강줄기와 드넓은 평야가 있어 예로부터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곳이었다. 주민들은 산과 나무와 태양에 의지해 평생 농사지으며 이 땅을 일궈왔다.
▲ 따듯한 볕의 마을, 경남 밀양(密陽) 밀양은 높고 수려한 산세,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강줄기와 드넓은 평야가 있어 예로부터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곳이었다. 주민들은 산과 나무와 태양에 의지해 평생 농사지으며 이 땅을 일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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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눔문화 사회행동팀장 김재현입니다. 2일부터 밀양 송전탑 공사를 강행한다는 한국전력(아래 한전)의 발표를 접하고 긴급하게 밀양 현장을 찾았습니다. 그동안 한전과 정부가 왜곡해 온 주민들의 입장과 현장의 진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지금 밀양 산골 마을에는 방패로 무장한 3000여 명의 경찰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70~80대 어르신들을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끌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송전탑을 막아온 지 9년째, 어르신들은 "이제 나는 목숨도 내놨다, 내를 죽이고 세우라"며 산속 건설현장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노인들을 상대로 병력을 수 천 명이나 투입하는 것은, 아마 전쟁터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일 것입니다. 이미 1일 새벽부터 경찰과 한전 직원들이 주민들을 끌어내려 하면서, 70대 어르신 한 분이 실신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5월 경찰 500명이 투입되었을 때도 20여 명의 어르신들이 크게 다쳤습니다. 국회와 언론에서는 '제2의 용산참사'의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습니다.

765kV 밀양 송전탑은 신고리 원전에서 생산될 전기를 서울 수도권으로 수송하기 위해 세워지는 세계 최대규모의 송전탑입니다. 하지만 당장 밀양 송전탑을 건설하지 않아도 전력 대란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한전이 국회에서 인정했듯, 신고리 3, 4호기의 전력은 기존 송전선로를 이용해도 충분히 수송할 수 있습니다. 신고리 5,6호기 전력도 345kV로 나누어 지중화하면 충분합니다. 또한 수명이 다해가는 고리 1~4호기 노후 원전이 2025년에 가동 중단되면 밀양 765kV 송전탑은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전기는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전력 확보가 아닌 전력 관리입니다. 비효율적인 중앙독점 시스템에서 전기는 매일 버려지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전기절약 기술만 도입하더라도 낭비되는 에너지를 30% 줄일 수 있습니다. 군사작전하듯 밀양 송전탑 건설을 강행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정부 결정이 곧 법질서인 시대는 지났습니다

충남 당진의 765kV 송전탑을 찾아간 밀양 어르신들. 누구도 그 아래서 살고 싶지 않다. 현재 전국 송전탑은 3만 9천여 개. 10년 안에 약 1,700기의 송전탑이 더 지어질 예정이다. 밀양에 들어설 765kV 초고압 송전탑은 강력한 전자파 때문에 소도 불임 되고, 인체에 암을 유발한다.
▲ 세계 최대 규모의 765kV 송전탑 충남 당진의 765kV 송전탑을 찾아간 밀양 어르신들. 누구도 그 아래서 살고 싶지 않다. 현재 전국 송전탑은 3만 9천여 개. 10년 안에 약 1,700기의 송전탑이 더 지어질 예정이다. 밀양에 들어설 765kV 초고압 송전탑은 강력한 전자파 때문에 소도 불임 되고, 인체에 암을 유발한다.
ⓒ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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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은 전국 지부에서 인원을 동원해 1000여명을 밀양에 투입했다고 합니다. 지금 한전이 해야 할 일은 밀양 어르신들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철저히 원전 안전을 검증하는 것입니다. 작년 국내 원전 23기 중 9기가 고장 났습니다. 무려 고장률은 40%에 가깝습니다. 최근 <시사IN>이 보도한 것에 따르면 국민 71%가 "원전 안전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원전이 가장 기본적인 안전마저 위협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한전에 바라는 것은 제대로 된 원전 관리와 함께 원전에 의존하는 불안하고 근시안적인 에너지 정책의 대안을 연구해 달라는 것이지 70,80 노인들이 평생 일궈온 삶 터를 밀어내고,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면서 초고압 송전탑을 건설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 전, 이성한 경찰청장은 밀양에서 "불법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희생도 감수하라는 뜻입니다. 경찰이 보호해야 할 것은 송전탑 건설 계획이 아닙니다. 국민입니다. 밀양의 70~80대 어르신들입니다. 누군가가 희생되어야 누릴 수 있는 풍요라면, 그 풍요는 얼마나 폭력적이고 야만적이겠습니까.

그렇기에 헌법 제35조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더디더라도 안전하게, 되돌아가도 신중하게 결정하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이고, 국민이 행복한 사회입니다. 희생을 발판 삼아 국가정책이 강행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경찰은 정부 결정이 곧 법질서인 시대는 지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적 강제 진압을 멈추십시오

지난 9년 동안, 밀양의 어르신들은 “이거는 절대 안 된다! 안돼!”  나무를 껴안으며 몸으로 전기톱을 막았고,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산을 깎아 내는 포크레인을 멈춰 서게 했다.
▲ 밀양 화악산 공사현장에 오른 밀양 어르신 지난 9년 동안, 밀양의 어르신들은 “이거는 절대 안 된다! 안돼!” 나무를 껴안으며 몸으로 전기톱을 막았고,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산을 깎아 내는 포크레인을 멈춰 서게 했다.
ⓒ 나눔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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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원 국무총리는 밀양에서 가구당 400만 원 지급 등 보상을 약속하며 "밀양 송전탑 건설이 시급하다"고 했습니다. 작은 거짓은 우정을 망치지만 큰 거짓은 나라를 망칩니다. 돈으로 해결하려는 일에는 더 큰 이익이 걸려있기 마련입니다. 밀양 송전탑과 연결될 신고리 5~8호기의 최대 건설비용은 총 12조 원입니다. 정부와 한전은 현대건설, 삼성물산, 두산중공업 등이 참여할 신고리 원전을 위해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려는 것입니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는 그 나라의 양심과 도덕을 타락시킵니다. 지금 어르신들이 지키고 있는 것은 평생 살아온 고향 땅만이 아닙니다. 미래세대가 이어갈 도덕과 양심입니다. 어르신들은 "나 살자고 남 죽이는 게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 미래가 있겠나? 우리가 남겨줄 게 달리 뭐 있겠노, 이 땅이다. 미래다"라며 높은 산 속 움막을 지키고 있습니다.

밀양 어르신들은 평생 허리 숙여 농사지으며 떳떳하게 살아온 분들입니다. 하지만 정부와 한전은 돈 더 달라고 떼쓰는 노인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국책사업을 가로막는 범법자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정부와 한전은 어떤 이유로든 생명을 위태롭게 만드는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강제진압, 공권력 투입을 중단하고 밀양 어르신들과의 성실한 대화에 나서야 합니다.

돌아보면, 이 시대의 빛나는 성장과 도시를 떠받치기 위해 우리 농촌 마을은 하나 둘 조용히 사라져갔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전력자립도 3%인 서울의 전력공급을 위해 밀양의 오랜 삶 터와 주민들은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전기를 얼마나 쓸 것인가.' 지금 전국의 수많은 밀양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제는 나쁜 에너지를 거부하고, 무분별한 개발보다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다른 삶의 방식으로 전환해 나갈 때입니다.


덧붙이는 글 | 얼마 전 한 언론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밀양 송전탑 건설문제에 대해 30% 넘는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나마 알려진 것도 한전의 왜곡으로 인해 보상문제만 부각되고 진정으로 주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력난 문제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가려지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 수 있도록 한 권으로 정리한 소책자를 만들었습니다. 부디 밀양의 싸움이 헛되지 않도록 주변에 널리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http://www.nanum.com/site/board_nanum/533023).



태그:#밀양 송전탑, #밀양 송전탑 반대 이유, #나눔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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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에서 사회행동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www.nan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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