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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보이는 곳이 2구 멀리 1구가 보인다.
▲ 홍도 항공 사진 신안군 제공 먼저 보이는 곳이 2구 멀리 1구가 보인다.
ⓒ 이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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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개요

목포에서 115km, 흑산도에서 22km 서쪽으로 떨어진 홍도는 1구 대밭밑(죽항) 마을과 2구 석기미(석금) 마을이 있다. 1구에는 해수욕장과 동백군락지가 있고 2구에는 등대와 생태계 자연림이 있다.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신비의 섬이다. 이 섬에 본격적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숙종 4년(1679) 제주 고씨였고, 사람이 정착한 곳은 홍도2구였다. 지금도 홍도1구 마을에는 고씨의 12대손이 몇 명 살고 있다. 홍도라는 이름은, 해질 녘 바다로 떨어지는 노을에 비친 섬이 붉은 옷을 입은 것 같다 하여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홍도 둘러보기

목포항에서 쾌속선을 타고 출발하여 첫 번째 경유지인 비금도, 도초도에 먼저 도착한다. 이곳까지는 내해로 물결이 잔잔한 편이었다. 이곳을 벗어나면 외해, 곧바로 망망대해로 접어든다. 이내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하는데 넓은 바다로 나갈수록 배가 요동을 쳤다. 얼마나 파도가 센지 300톤급의 큰 배인데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했다.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여기저기서 지르는 탄성이 마치 놀이기구에서 들을 만한 소리다. 처음에는 재미있어 하다가 나중에는 잠을 청하는 승객과 심한 배멀미에 시달리는 승객으로 소리가 잦아들었다.

미역말리기
▲ 홍도의 관문 1구 미역말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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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를 경유한 배는 드디어 절해고도 홍도에 도착했다. 필자가 1992년에 처음 방문했을 때는 종선이 그 많은 관광객들을 실어날랐지만, 지금은 최신식 접안시설을 갖추어 새롭게 단장한 선착장에 직접 배를 댄다.

홍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 습한 바람결에 갯냄새가 물씬 풍겼다. 항구에 이어진 홍도1구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까지 관광객들로 가득했고, 길 양쪽으로는 해삼, 멍게, 돌김, 미역 등을 판매하는 작은 노점들이 죽 늘어서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마을에는 홍도생태전시관과 홍도관리사무소 그리고 우체국이 있다. 1구에만 교회 두 곳과 성당이 있는 것도 특이했다.

마을로 올라가는 길은 오르막이지만 그다지 가파르지는 않았다. 길 따라 아담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식당과 숙박업소들이 정렬되지 않은 채 난무하고 있었다. 골목을 지나자 바로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장이었다. 이곳에서 오른편 남쪽으로 나 있는 길은 깃대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1구에 있는 홍도 유일한 몽돌 해수욕장
▲ 빠돌 해수욕장 1구에 있는 홍도 유일한 몽돌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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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아래는 홍도 서쪽 해변인 빠돌해수욕장이다. 빠돌이란 파도에 씻기고 씻겨 동글동글해진 몽돌을 홍도 사람들이 부르는 말이다. 몽돌이 워낙 커서 걷기가 좀 불편하지만 사시사철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해변이다. 길이 600m, 폭 70m인 이곳 해수욕장은 기암절벽을 병풍처럼 두른 비경 속에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물이 부족하여 다른 섬들처럼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하는 등 관광객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홍도는 바위섬이라는 지형 때문에 전답이 전혀 없다. 있다 해도 물이 너무 귀해서 농사짓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배추를 '금치'라고 부를 정도로 농산물이 귀하다. 그러다 1995년에 지하 800m의 암반수를 개발해 식수로 사용하고, 1998년에 해수담수화시설이 가동되어 생활용수로 사용하게 되면서 관광지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어 섬주민들의 물 고충까지 해결되었다.

남북 6.7㎞, 동서 2.4㎞의 길이인 홍도는 허리가 잘록한 누에고치 모양이다. 다르게 보면, 남북으로 길게 누운 여인의 자태 같기도 하다. 볼록 들어간 허리춤에는 천혜의 포구를 형성하고 있는 홍도 1구가 자리잡고 있으며, 여인의 얼굴 쪽에는 2구가 있다. 1구에는 해수욕장이 있고, 2구에는 해안의 전망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등대가 있다.

폭 400m에 불과한 허리 부분에 자리한 1구마을에 대다수의 가구가 몰려 살고 있다. 이 섬의 인구 밀도는 늘 다르다. 성수기에는 주민 수보다 관광객의 수가 더 많은 날도 있다. 아름다운 섬에서 사는 덕분에 1구 주민은 대부분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 극소수 사람들만이 어업에 종사하고, 관광객과 낚시꾼들을 수송하거나 배를 빌려주는 해상관광업을 주로 한다. 비릿한 어촌의 냄새보다는 상업적인 냄새가 짙은 섬인 것이다.

1구와 달리, 2구의 한적한 마을 주민들은 낚시꾼을 상대로 배를 운항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바다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다. 2구를 갈 적에는 여객선 터미널 반대편인 빠돌 해수욕장 선착장에서 여객선 시간에 맞추어 하루에 두 번 운항하는 마을배로 옮겨 탄다. 군의 지원으로 운항되는 이 마을배는 2구 이장이 선장을 맡으며, 2구 마을사람들과 소수의 관광객들을 위해 운항한다.

앞에 있는 솟아 있는 곳이 닻거는 여,  그 안으로 배들이 안전하게 정박한다.
▲ 2구 마을 입구 해변 전경 앞에 있는 솟아 있는 곳이 닻거는 여, 그 안으로 배들이 안전하게 정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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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관광중 2구 대풍리에서 잠시 배를 어선에 대고 생선회를 손님들에게 팔고 있다.
▲ 관광선과 어선의 조우 해상 관광중 2구 대풍리에서 잠시 배를 어선에 대고 생선회를 손님들에게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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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관광 코스는 1구에서 관광선을 타고 섬 일주 관광을 마친 후, 다시 1구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그러나 필자는 처음부터 이 마을배로 옮겨타고 홍도2구로 들어가는 여정을 택했다.

방문한 그 날은 1구와 2구를 이어주는 마을배 서진호가 태풍 때문에 흑산도로 미리 피신한 터라 다른 배가 대신 나와서 3명의 관광객을 싣고 2구로 향하였다. 2구에서는 바다에 쳐놓은 그물을 걷어와서 고기를 떼어내고, 잡아온 고기를 손질하는 아낙들, 그리고 주낙을 정리하는 주민들을 볼 수 있어 정겨웠다. 숙박 시설과 횟집, 음식점이 밀집된 1구와 달리 2구 석기미 마을은 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평화로운 어촌이었다.

1구와는 배를 이용한 왕래는 용이하지만 육로인 깃대봉을 넘어오기가 힘들기 때문에 두 마을의 교류나 문화가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곳은 두세 곳의 민박과 여관, 노래방, 나이트클럽이 있기는 하나, 그다지 손님이 없어 보인다. 1구 마을에 여행객들이 넘쳐나는 여름 한 철만 잠시 문을 연다고 한다.

2구 마을 포구는 북풍이 몰아치면 파도가 높아 배의 정박이 어려운 지형이라 마을 앞에 있는 닻거는 여라는 조그마한 무인도에 방파제를 만들어 작은 어선들이 드나드는 포구를 만들어 두었다.

석기미는 한성호 이상수(47)씨가 홍어잡이를 하며 홍도에서 유일하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남자들은 한 달이면 보름은 바다에 나가 있다. 먼 바다에서 홍어를 잡고, 나머지 보름은 바닷가에서 그물 다듬는 일을 한다.

홍어잡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낙으로 고기를 잡는다. 2구 해변가 이상수 선장 집에서 주낙을 정리하시는 분들이 총 6명이었다. 그 중에 유일하게 남자인 김광식(65)씨가 끼어 있었다. 아직도 1구와 달리 문명의 때가 덜 묻어 있는 곳이다. 바다에서 나는 풍부한 해산물 덕분에 그들의 삶이 지금까지 버팀목이 되어 있다. 홍도는 관광객들이 많은 것은 좋지만 2구만이라도 예전의 홍도 특유의 고유성을 잃지 않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맨 위쪽에서 바라다 보이는 2구 마을
▲ 2구 마을 맨 위쪽에서 바라다 보이는 2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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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에 있는 아름다운 등대
▲ 홍도 등대 2구에 있는 아름다운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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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등대를 거처서 산을 넘어 깃대봉을 지나 1구에서 배를 타고 목포로 나가야 되기 때문에 아쉬운 작별을 하고 마을을 돌아보면서 등대로 향하였다. 가파른 산기슭을 따라서 올라가는 등대 쪽 길은 색다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오솔길로 되어 있었다. 등대로 오르는 길은 두 곳이다. 등대로 곧바로 올라가는 숲길은 수백 년 된 후박나무와 동백나무들이 터널을 이뤄 가기가 편했다. 또 우측 마을을 관통하는 길은 해안가를 따라 억새풀과 야생화가 멀리서 온 여행자를 환영해 주는 듯하였다.

하얀 등대의 운치가 간혹 관광객을 향해 손짓하기도 한다. 상업적인 때가 덜 묻어 있는 곳을 선호하는 관광객의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홍도의 등대는 1931년 처음 불을 밝혀 지금까지 배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홍도 등대는 누구나 쉽게 찿을 수 있도록 낮은 지역에 있어서 좋았다. 등대 아래에 있는 직원들 숙소 앞에는, 잘 다듬어진 나무들이 오랜 세월동안 바다 바람을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서 있다. 등대에서 망망한 대해를 바라보면서 홀로 살아가는 등대지기의 외로운 모습을 가슴에 느끼면서 등대지기 노래가 생각났다.

안개속에 둘러싸인 무인도와 멀리 홍도 2구가 보인다.
▲ 홍도2구 앞에 있는 어느 무인도 안개속에 둘러싸인 무인도와 멀리 홍도 2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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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등대를 뒤로 하고 깃대봉을 향하여 1구로 발길을 옮겼다. 가파른 산기슭을 타고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했다. 바람이 많이 불고 파도가 높은 때에는 여객선이 1구만 대고 2구에는 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때 2구 사람들은 1구에 내려서 2구까지 걸어서 갔다.

이제 홍도 주민들은 전혀 다니지 않는 '옛길'이 생각보다 험했지만 주민들의 옛 추억을 더듬으며 걸어 갔다. 20년 전에만 해도 이 길을 통하여 산에 있는 나무를 가져다가 연료로 사용했으며 생필품과 술, 쌀, 등 먹거리를 지게에 지고 넘었다니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확한 일기예보 덕분에 바람이 불지 않는 때를 맞추어서 1구에서 배를 타고 오기 때문에 지금은 좀 처럼 이 산을 넘지 않는다고 하였다. 요즘에는 여행객들이 운동 삼아 산길을 가지만 두 마을을 10여 분 만에 달려가는 서진호를 타고 가는 것은 편리하고 시간 절약 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점점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에 이 길은 추억의 옛길이 되어 버렸다.

2구 산 위쪽으로 태양이 솟아 오르고 있다.
▲ 홍도의 전경 2구 산 위쪽으로 태양이 솟아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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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관광객 가운데 깃대봉을 오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산으로 오르는 길은 한적하기만 하다. 그러나 산길에는 상록활엽수인 동백나무와 밤나무, 후박나무, 백소사나무와 졸참나무, 팽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눈이 즐거웠다. 홍도의 정상, 해발 368m 깃대봉에 이르자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2구에서 1구까지는 3.5km로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지만, 험한 산길이라 1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흔히들 홍도여행을 왔다가 흑산도를 둘러보지 않으면 반쪽짜리 여행이라 말한다. 마찬가지로, 홍도에 와서 홍도 2구 석기미 마을을 가보고 홍도의 정상인 깃대봉에서 홍도의 또다른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고서는 반쪽짜리 홍도여행이지 않겠는가 생각해본다.

태풍의 의미

1구는 상가만 95호에 이를 정도로 관광사업에 의존하지만, 그래도 51가구는 어업에 종사할 만큼 홍도 바다에서는 고기가 잘 잡힌다. 그러나 대체로 2구에서 잡은 해산물을 1구에서 소비하는 실정이다.

2012년 9월 13일, 필자가 갔던 그날은 때맞춰 태풍 산바가 북상하던 중이었다. 태풍 소식은 일단 비상이다. 홍도의 유람선과 어선들은 하나둘씩 1시간 거리인 흑산도로 피항을 하고 있었고, 2구의 작은 배들은 뭍으로 하나씩 도르레에 걸려서 올려지 있었다. 그들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생업의 일등공신인 배들을 애지중지하는 모습이 얼굴에서 역력히 뭍어났다.

그런데 관광업에 종사하는 홍도주민들에게 태풍은 '휴가'를 의미한다. 장사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근심 걱정과는 달리 주민들은 얼굴 표정이 밝았다. 일 년 내내 손님맞이로 분주했던 홍도 사람들은 태풍이 오면 관광객이 들어오지 않아, 미뤘던 일을 하거나 교육상 목포에 떼어놓은 자녀를 돌보러 가기도 한다. 섬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휴식을 취한다. 태풍소식은 이곳 주민들에게 모처럼의 여가를 누릴 수 있겠노라는 기대가 담겨 있어, 다른 지역과는 사뭇 다른 풍속이다.

독립문 바위에 잠시 정박해 있는 관광선 
탐사선 등대호에서 촬영하다.
▲ 독립문 바위 독립문 바위에 잠시 정박해 있는 관광선 탐사선 등대호에서 촬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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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관광

신의 작품 홍도는 이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섬 중 하나로, 사시사철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유명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성수기에 홍도를 오가는 쾌속선에는 앉을 자리가 없다고 한다. 토요일이나 휴일에는 500명 정도가 홍도에 머무른다고 하니, 과연 섬관광의 메카라 할 수 있다.

홍도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홍도 주변을 일주하는 유람선을 탔다. 홍도는 본섬을 비롯한 20여 개의 새끼섬이 둘러 있어 섬 주위 해상을 둘러보는 홍도 33경의 유람은 홍도관광의 절정을 이룬다. 섬 주위에 펼쳐진 크고 작은 무인도와 깎아지른 절벽은 감탄을 절로 자아내게 했다. 도승암, 촛대바위, 병풍바위, 남문바위, 주전자바위 등 각기 다양하고 기이한 형상을 한 기암괴석은 신이 바람과 파도로 조각한 자연이라는 이름의 작품이었다.

독립문 바위 위로 떠오는 희망 상징인 태양
▲ 홍도의 일출 독립문 바위 위로 떠오는 희망 상징인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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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을 함께 탄 승객들도 하나같이 탄성과 함께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이뿐만이 아니다. 남쪽 해안에는 벼랑과 끊임없이 이어진 크고 작은 해식애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섬 전체가 홍갈색을 띤 규암질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져 다양한 전설과 기묘한 형상을 간직한 기암, 그리고 섬 주위에 펼쳐진 크고 작은 무인도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은 억겁의 세월 동안 닿은 풍파로 형언할 수 없는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 정도 걸렸다. 도중에 선상에서 생선회를 떠주는데 그 맛은 어디에도 비길 데 없는 별미였으며 아름다운 절경과 어우러진 특별한 경험이었다.

탐사선 등대호가 촬영하다
▲ 홍도 2구 앞바다 전경 탐사선 등대호가 촬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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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를 떠나면서

이제 홍도를 떠나야 한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좁은 골목길로 걸어서 1구 마을을 한 바퀴 도는데 불과 20여분 걸렸다. 이곳은 밀려드는 관광객들을 위해서 여기 저기서서 현대적인 숙박 시설을 건축하고 있었다. 너무 변해가는 모습에 기대와 실망이 교차되는데 그래도 홍도 2구는 아직은 예전의 모습이 있어 다행이었다. 홍도뿐만 아니라 울릉도와 거문도 청산도 등 모든 관광지는 그렇다. 모든것은 양면이 있듯이 개발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는 법이다. 이왕 관광지로 거듭났으니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서 굴뚝없는 산업으로 이름을 날리기 바란다.

홍도 지리

홍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에 딸린 섬으로 면적 6.47㎢, 산높이 368m,, 해안선 길이 19.7㎞, 인구는 221가구 539명이다. 목포항에서 서남쪽으로 133.2㎞, 흑산도에서는 22㎞ 떨어져 있다.

홍도 가는 길

남해프린스호, 목포 → 홍도 1일 2회(07:50, 13:20) / 소요시간: 2시간 20분

홍도 선착장에서 바라다 보이는 일몰
▲ 홍도 1구의 일몰 홍도 선착장에서 바라다 보이는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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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남일보



태그:#홍도 , #등대, #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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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연구원으로 2019년까지 10년간 활동, 2021년 10월 광운대학교 해양섬정보연구소 소장, 무인항공기 드론으로 섬을 촬영중이며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재정 후원으로 전국의 유인 도서 총 447개를 세 번 순회 ‘한국의 섬’ 시리즈 13권을 집필했음, 네이버 지식백과에 이 내용이 들어있음, 지금은 '북한의 섬' 책 2권을 집필중

이 기자의 최신기사책 '북한의 섬'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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