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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조사과정에서 검사에게 작성해 제출한 부당한 보수에 대한 반납 각서는 효력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검찰이 사인들 간의 민사 분쟁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다.

부산저축은행그룹은 상호저축은행법상의 제한을 회피해 자기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특수목적법인(SPC)인 R사를 설립한 뒤 부산저축은행으로 하여금 SPC에 대출하게 해 이를 통해 부동산이나 골프장 등의 개발 사업을 영위했다.

이 과정에서 J(44)씨는 R사의 대표이사로 명의를 빌려주고, 명의대여 대가로 1억5000만 원의 급여를 받았다. J씨는 부산저축은행그룹과 아무런 연관이 없고, 단지 자신의 동생이 부산저축은행에 근무할 뿐이었다.

그런데 저축은행 사태가 불거져 수사에 나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비리 전반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개시해 박연호 회장과 김양 부회장을 구속기소하는 등 부산저축은행그룹 임직원 21명을 기소했다.

검찰 수사결과 특수목적법인 SPC의 주주와 임직원들이 부산저축은행의 직원이나 친인척으로 구성돼 있고 이들이 실제로 근무하지 않았음에도 매월 상당한 급여를 부당하게 지급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부산저축은행 관리인은 이들로부터 부당하게 수령한 급여의 반환과 관련한 각서를 받으려 했으나, 당시 부산저축은행 본점은 비상대책위원회에 의해 점거되는 등 상황이 여의치 않자 예금보험공사와 이 문제를 협의했다.

예금보험공사는 수사를 진행한 대검 중수부에 협조를 요청했고, 대검 중수부가 관련자들로부터 각서를 받기로 했다. 이후 대검 중수부 검사는 SPC 대표이사로 등재된 J씨를 소환해 J씨로부터 "R사에서 급여 명목으로 부당하게 수령한 1억5000만 원을 부산저축은행에 반환할 것을 서약한다"는 각서를 받아냈다.

하지만 J씨가 각서대로 위 돈을 반환하지 않자, 부산저축은행 파산관재인이 J씨를 상대로 각서를 이행하라 소송을 낸 것.

반면 J씨는 "대검 중수부 검사는 부산저축은행을 대신해 각서를 받을 권한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은 수사기관에 장차 급여를 반납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각서에 표시했을 뿐 부산저축은행을 상대방으로 급여를 반납할 의사를 확정적으로 표시하지 않았다"며 맞섰다.

1심 재판부는 부산저축은행이 J씨를 상대로 낸 각서금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1억5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에 J씨가 항소했고, 부산고법 제6민사부(재판장 신광렬 부장판사)는 지난 2월 J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부산저축은행 관리인 각서 징구와 관련해 예금보험공사와 협의해 예금보험공사의 요청으로 대검 중수부가 관련자들로부터 각서를 징구하기로 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산저축은행이 검사 등에게 각서의 징구에 관한 대리권을 줬다거나, 감사 등이 각서의 징구와 관련해 부산저축은행의 사자(使者)의 지위에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특히 "각서의 작성 장소는 대검 중수부 사무실로서 피고로서는 부당 수령 급여와 관련해 횡령 등의 범죄사실로 처벌 받을지도 모른다는 점에 대해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므로, 검사의 각서 작성 요구를 거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경험칙상은 물론이고 현실적으로도 매우 어려워 각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22일 예금보험공사가 "검찰 조사에서 부정하게 수령한 1억5000만 원을 반환하겠다며 검사에게 작성한 각서를 이행하라"며 부산저축은행그룹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대표 J(44)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국가권력기관으로서 수사기관인 대검 중수부가 사인(私人)인 고소인 또는 피해자의 의뢰 내지 위임에 따라 수사 대상인 피의자 또는 참고인으로부터 고소인 또는 피해자에 대한 변제각서를 징구해 이를 고소인 또는 피해자에게 교부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고, 수사기관이 사인 간의 민사 분쟁에 개입함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어 이를 쉽사리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는 각서 제출을 통해 수사기관에 부당 수령 급여를 반환할 것을 다짐함으로써 수사기관이 부당 급여 수령에 따른 별도의 형사책임을 묻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각서를 기재했을 개연성도 충분한 점 등에 비춰 보면, 피고는 수사기관을 상대방으로 인식한 채 장차 부산저축은행에 반환할 것을 다짐한다는 의미로 작성 교부했던 것으로 보일 뿐"이라며 "따라서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춰 보면,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각서, #부산저축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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