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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입 짧은 큰 아이는 항상 "배가 부르지"만, 먹성 좋은 막둥이는 항상 "배가 고픕"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기 때문에 집에 돌아오면 3시반에서 4시쯤 됩니다. 엄마가 돌아오는 6시 30분에서 7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생선을 앞에 둔 고양이가 주인이 어디론가 떠나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습니다. 지난 수요일(22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빠 배 고파요."
"네가 언제 배 안 고픈 적이 있니?"

"그래도 오늘은 더 고파요. 냉장고에 먹을 것이 없어요."
"엄마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니?"
"도저히 못 참겠어요."
"그럼 어떻게 하지 먹을 것도 없는데."
"아빠 내가 볶음밥 만들어 볼게요."

"네가 볶음밥을?"
"응. 만들 수 있어. 내가 만들면 아빠도 드세요."


막둥이는 드디어 볶음밥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당근과 오이를 준비했습니다. 볶음밥에 당근과 오이가 들어가는 것은 아는 모양입니다.

볶음밥 만들기 위해 당근을 써는 막둥이. 칼질이 조금 위험하게 보이지만 이제 어엿한 6학년입니다
 볶음밥 만들기 위해 당근을 써는 막둥이. 칼질이 조금 위험하게 보이지만 이제 어엿한 6학년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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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과 오이를 준비한 막둥이 칼을 꺼냈습니다. 순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초등학교 6학년이지만, 다치면 큰 일 납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칼질을 잘 했습니다.

"막둥이 칼질 위험하지 않겠니?"
"조심하면 돼요. 아빠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아요. 위험하면 아빠가 썰면 돼잖아요."
"그렇구나 아빠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지."
"그리고 이제 저 초등학교 6학년이에요. 6학년."

"그렇구나 이제 6학년이지. 당근과 오이가 들어가는 것을 어떻게 알아?"
"엄마가 볶음밥 만들 때 봤어요."

"당근과 오이가 들어가면 진짜 맛있어."
"당연하죠. 나는 햄보다는 당근과 오이를 넣는 것이 더 맛있어요."

"막둥이 이제 다 컸네. 햄보다 당근과 오이를 더 좋아하고."
"그래도 햄이 있으면 좋겠어요."
"햄은 다음에 넣자."
"알았어요."

오이 껍질도 잘 벗겼습니다. 솜씨가 아빠보다 낫습니다.

오이 껍질도 잘 벗깁니다.
 오이 껍질도 잘 벗깁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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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막둥이 오이 껍질 벗기는 실력이 아빠도 낫네."
"아니에요. 아빠가 훨씬 잘 벗겨요. 난 잘 못해요."

"아냐. 아빠가 보니까. 막둥이가 훨씬 잘 벗겨. 앞으로 엄마 많이 도와드려야 겠다."
"정말요? 앞으로 엄마 많이 도와드릴게요."
"아빠가 막둥이에게 배워야겠어."
"그럼 잘 보세요. 왼손으로 오이를 잡고, 오른손으로 이렇게 벗겨요. 왼손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돼요."
"와 막둥이가 정말 아빠보다 낫네."


막둥이 오이 껍질 벗기는 솜씨는 정말 아빠보다 낫습니다. 언제 이런 것을 배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더운 날씨에 가스레인지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땀이 줄줄 흐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막둥이는 볶음밥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밥을 볶고 있습니다.
 밥을 볶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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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이 더위에 가스레인지 앞에서 볶음밥을 만들겠습니까?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습니다. 아마 큰 아이같았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밥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입니다. 한 번씩 라면을 끓여 먹을 때가 있지만, 무더위에 볶음밥까지 만들 아이는 아닙니다. 하지만 막둥이는 그 일을 해냈습니다.

"아빠!"
"왜?"
"볶음밥 다 만들었어요. 드세요."

"더운 날씨에 땀 뻘뻘 흘리면 만든 볶음밥을 먹으려고 하니까. 미안하네."
"아니에요. 아빠도 드시고, 나도 먹을 거예요."
"어디 한 번 먹어보자. 정말 맛있다."
"맛있죠. 내가 만들었으니까. 맛있을 수밖에 없어요."
"땀 뻘뻘 흘리며 만든 '막둥이표 볶음밥'..."둘이 먹다 한 사람이 어떻게 돼도 모르겠다."

내가 만든 볶음밥 정말 맛이었어요
 내가 만든 볶음밥 정말 맛이었어요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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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었습니다. 식당에서 만든 그 어떤 볶음밥보다 막둥이표 볶음밥은 참 맛있었습니다. 막둥이는 자기 자랑을 한창 이어갔지만, 그 자랑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막둥아 볶음밥 잘 먹었다.


태그:#볶음밥, #막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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