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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던 여야 정치권의 약속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둘러싼 정치 공방 속에 실종됐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제민주화 국회'의 실종이 꼭 최근의 정치 공방 때문만은 아니다. 19대 국회의 지난 1년을 돌아보면, 그 '경제민주화 정치'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경제민주화 정치' 실적 저조... '경제민주화 국회' 약속은 어디로

19대 국회 1년 동안 이룬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실적은 필자가 보기에 20개 법률 29개 과제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경제민주화 과제와 관련성이 큰 4개 상임위(정무위, 산업통산자원위, 환경노동위, 기획재정위)의 소관법률 개정현황을 파악한 결과인데, 이러한 실적은 국민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와 기대에 비춰 상당히 저조한 실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들여다봐도 만족스럽지 못하다(상임위별 입법 현황은 기사 하단의 <별첨1> 참조).

19대 국회 경제민주화 관련 법 통과 현황
 19대 국회 경제민주화 관련 법 통과 현황
ⓒ 박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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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의 수뿐만 아니라 내용을 따져 봐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불법 하도급거래 행위에 대한 3배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범위를 크게 늘리지 못했다. 지난 5년간 하도급법 위반행위 유형을 보면 '하도급대금 미지급' 사건이 가장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였다.

그 뒤를 잇는 위반사례는 어음할인료 미지급, 지연이자 미지급 등이며, 그밖에 건설업의 경우 서면(하도급대금 및 그 지급방법 등 하도급 계약 내용) 미발급 거래행태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등 다양한 유형에서 하도급법 위반행위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에 대한 처벌 강화는 경제민주화의 의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의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조항이 '폐지'가 아니라 '보완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미흡하다. 특히 하도급법의 경우, 불공정 하도급거래의 당사자인 피해 기업이나 그 대표조직, 피해 기업의 노조나 그 노조의 상급단체들에게는 모든 불법 하도급 행위에 관한 고발권을 부여해야 한다.

또한, 4대강 건설사 담합사건이나 정유사, 식품회사, 건설회사 등의 담합사건에 알 수 있듯이, 담합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가 큼에도 불구하고 형사처벌 없이 과징금에 의존하는 규제방식이 담합 등의 불법행위를 반복하게 하는 만큼 원칙적으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와 관련 소송의 남발 우려와 관련해서는 검찰과 법원의 기능과 역할에 맡기는 것이 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이다. 

셋째,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규제입법(공정거래법 제23조 1항 7호, 제23조의2)의 경우 그 실효성이 의심된다. 일감몰아주기 불공정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시장경쟁을 제한했다는 입증을 하지 못할 경우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총수 일가에게 부당한 이익을 주는 행위를 하거나 받는 계열회사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법이 적용되도록 한 점, 대기업의 소위 '통행세' 규제조항의 경우 예외를 인정한 점 등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규제입법이 느슨하게 이루어진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넷째, 유통산업발전법의 경우 지난해 연말에 개정되었지만, 중소자영업자들의 요구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중소자영업자 단체들은 대형유통업체 신규입점 허가제, 영업시간 제한 확대 등의 추가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19대 국회 '경제민주화 정치'의 근본적 문제점

19대 국회의 '경제민주화 정치'에 대한 실적 부진 이외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다음의 두 가지다.

우선, 19대 국회의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논의의 범위가 재벌개혁 의제를 중심으로 너무 협소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19대 국회가 시작된 2012년 한 해 동안 국회에서 열린 경제민주화 관련 토론회 현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한해 동안 열린 16차례 토론회 가운데 재벌개혁 의제가 5차례, 경제민주화 전반이 3차례 토론주제로 다뤄졌다(<별첨2> 참조). 그런데 이렇게 입법논의가 진행되다 보면 사회경제적 약자의 보호와 권리확대 등의 입법논의는 미뤄지게 되고, 그 결과 그들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관심과 참여 의욕을 저해하게 된다.

19대 국회 2012년도 경제민주화 관련 토론회의 주제별 분류 현황.
 19대 국회 2012년도 경제민주화 관련 토론회의 주제별 분류 현황.
ⓒ 박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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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19대 국회는 이제부터라도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대중소기업의 실질적 상생을 위한 제도화(이익공유제 도입 등), 중소기업과 중소상인 적합업종 법제화 또는 실효성 제고, 공공부문부터라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입법, 비정규직 차별금지 및 보호 입법, 노동자경영참가 법제화, 보편적 복지확대 법제화, 법인세 및 소득세의 누진과세 강화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과제인 사회 양극화 해소에 기여하는 '경제민주화 정치'에 매진해야 한다.

다음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조차 입법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단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을 약속했다. 이와 관련한 법안들은 이미 박근혜 후보가 공약하기 전에 정무위원회에 제출되어 있으며, 대선 이후에도 여러 법안들이 제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에 대해 국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실현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민주화 정치'의 불씨 다시 살려야

상황이 이러한 데도 전경련 등 재계는 경제민주화 입법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재계는 경제민주화 입법이나 통상임금, 현대자동차 불법파견에 대한 대법원 판결 관련 "기업의 투자심리 크게 위축",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 근본적 약화", "산업현장의 혼란 심화", "우리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라는 표현을 동원해 불만을 드러내는가 하면 전경련이 발간하는 <월간 전경련>은 2013년 6월호에서 "한국경제의 엑소더스(Exodus)가 우려된다"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많은 국민들이 위협을 느끼기에 충분한 이런 발언들을 하는 배경은 분명히 있다. 전경련 등 재벌 대기업을 대변하는 재계의 입장에서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중소자영업자 등 사회경제 약자들도 "함께 살자"고 하는 경제민주화 요구로 인해 그동안 자신들이 누려온 경제권력이 조금이라도 손상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재벌 대기업 주도의 경제성장이 대다수 국민들에게 '좋은 일자리'와 '안정된 소득'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마치 '자본파업'이라도 할 것인양 위협적 태도로 국민들의 경제민주화 요구에 맞서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적어도 아직까지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전경련의 이러한 정치적 개입은 이전 정부나 국회에 대해서도 있었던 일이다. 이 사실만 봐도 정부나 국회의 경제논의는 이해당사자들은 물론 대다수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현안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지금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최대의 난제인 사회경제 양극화 문제, 전경련의 불만과 위협에서 알 수 있듯 재계와 대다수 국민들 사이에 입장차이가 큰 경제민주화 문제도 정치를 통해 조정되고 해결되어야 한다.

국회가 이렇게 '경제민주화 정치'에 소홀해서는 정치도, 경제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국민은 양극화 해소에 대해 기대나 가능성 대신에 냉소를 갖게 되고, 참여 대신에 무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결국엔 '경제민주화 정치'는 양당중심의 기득권 정치체제에 의해 '배제'되고, 경제민주화 요구는 좌절될 것이다. 모두를 위한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 지금 당장 '경제민주화 정치'를 살려내야 한다.

<별첨1> 19대 국회의 2012년도 경제민주화 관련 토론회 개최 현황
2012.6.13. 불법 채권추심으로부터의 채무자 보호방안(민주통합당경제민주화본부, 홍종학 의원 주관)
2012.6.22.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시민연대, 민주당․통합진보당 정책위 주관)
2012.7.5. 특강-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국회경제민주화포럼)
2012.7.12. 원하청 불공정거래 근절(국회경제민주화포럼,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시민연대, 전국금속노조 주관)
2012.7.18. 재벌개혁 시작,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로부터!(이상직 의원)
2012.8.22. 특강-한국 재벌의 현황(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연구회)
2012.8.27. 재벌정책의 새로운 접근(김기식 의원, 한겨레경제연구소)
2012.8.30. 기업집단법을 말한다(경제민주화포럼)
2012.9.6. 초과이윤공유제 법제화 방안(노회찬 의원, 전국금속노조)
2012.9.11. 경제민주화-대기업집단정책(여의도연구소)
2012.9.14. 불완전판매와 금융약탈(민병두 의원)
2012.9.18. 중소기업의 경제민주화, 금융공공성(김영주 의원, 금융노조, 금융경제연구소)
2012.9.19. 경제위기와 경제민주화, 산업민주주의, 대선후보 경제민주화 정책평가(경제민주화포럼)
2012.9.26. 가맹사업 진단(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 추진 의원모임)
2012.10.23. 중소기업․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오영식 의원, 경제민주화국민운동본부)
2012.11.21. 경제위기, 일자리․성장, 경제민주화 해법(여의도연구소)

(*국회전자도서관 홈페이지 '소장자료검색'에서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중소기업을 키워드로 검색한 자료 가운데 국회의원이나 국회의원연구단체, 정당 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 자료집을 기준으로 정리함.)

<별첨2> 상임위원회 소관별 경제민주화 입법 현황
<정무위원회 소관>(9개 법률 14개 과제)
■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2013. 04. 30)
-중소기업조합에 납품단가 조정협의권 부여
-부당한 단가인하 등에 3배 징벌적 손해배상책임 부과
■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2013. 04. 30)
-불공정 약관의 시정 및 확산방지
■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2013. 04. 30)
-임원 개인별 보수액 공개의무
-자본시장 불공정거래행위 규제강화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2013. 04. 30)
-전자상거래의 소액거래 소비자 보호
■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2013.06.25)
-공정거래위 전속고발권 완화
■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2013.06.25)
-공정거래위 전속고발권 완화
■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2013.06.25)
-공정거래위 전속고발권 완화
■ 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2013.07.02)
-금산분리 강화
■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2013.07.02)
-하도급대금 지급 관련 수급사업자 보호
■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2013.07.02)
-가맹본부의 부당행위 규제강화 및 가맹점 권리보호
■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2013.07.02)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규제강화
■ 금융지주회사법 일부개정법률안(위원회안)(2013.07.02)
-금산분리 강화

<산업통산자원위원회 소관>(5개 법률 5개 과제)
■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2013.01.01)
-대규모점포 영업시간 및 의무휴업일 규제 강화
■ 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2013. 04. 30)
-소상공인 경영안정 및 지원
■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2013. 04. 30)
-전통시장 보호 및 육성
■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2013. 06. 27)
-중소기업 사업영역 보호제도 실효성 강화
■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2013. 06. 27)
-중소기업 판로지원

<환경노동위원회 소관>(5개 법률 6개 과제)
■ 고용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2013. 05. 07)
-65세 이상인 자에 대한 실업급여 지급 확대
■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2013. 04. 30)
-공공부문 청년고용 의무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2013. 04. 30)
-근로자정년 60세 이상 의무화
■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2013. 02. 26)
-차별적 처우 항목의 구체화
■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2013. 02. 26)
-차별적 처우 항목의 구체화
■ 고용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2013. 01. 01)
-고용유지지원금제도 개선

<기획재정위원회 소관>(1개 법률 4개 과제)
■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2013. 01. 01)
-연구개발비 등 세액공제 비율을 하향 조정
■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2013. 01. 01)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율 1% 인하
■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2013. 01. 01)
-소득공제 종합한도 2,500만원 설정
■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2013. 01. 01)
-법인세 최저한세율 최대 2% 인상

덧붙이는 글 | 박창규 기자는 '정의당'(대표 천호선) 부설 정책연구소의 전문위원입니다. 이 기사는 <‘모두를 위한 경제성장’ 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포럼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http://www.justice21.org/18645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태그:#경제민주화, #19대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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