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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특히 동성애자들, 흔히 말하는 성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한 주장이 크게 일고 있다. 과거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숨어지내고, 스스로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겼던 시대와 달리, 요즘은 인권과 자유 그리고 해방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얼마 전, 프랑스에서 동성간의 결혼에 대한 법안을 통과 시키면서 동성애에 대한 시간을 점차 달리하고 있다.

동성애, 과연 자유와 해방이 필요한 것인가?

동성애에 대한 자유와 해방을 이야기한다면, 우선 동성애가 정상적인가, 아니면 비정상적인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신학적이나, 윤리적으로 보면 동성애는 비정상적인 행동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남과 여로 창조한 신을 믿는 자들이 동성애자들을 달갑게 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시각으로 동성애를 바라만 볼 수는 없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다양하고 포괄적인 관점으로 지켜봐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대(古代)로 눈을 돌려보자. 고대 철학자들 중 그 유명한 플라톤이란 철학자가 있다. 철학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플라톤이란 사람은 들어봤을 것이다. 플라톤은 철학의 한 기둥이이지만, 동성애를 예찬하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여자와 동침하면 육신을 낳지만, 남자와 동침하면 마음의 생명을 얻는다." 이처럼 고대에서는 동성애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가 아니라 예찬되어 왔다.

하지만 문제가 되기 시작했던 것은 중세(500년~1500년) 시대이다. 엄격한 그리스도교 철학으로 중무장된 중세시대는 그리스도교의 엄격한 교회법에 움직이던 시대이다. 엄격한 교회법 아래 동성애는 단죄되었고, 1428년, 스위스에서는 동성애자들을 화형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중세가 끝나고 해방의 시대, 르네상스 시대가 왔지만 여전히 유럽에서는 동성애를 중죄로 취급되어 사형처해졌다.

근대에 들어서 조금씩 동성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산업의 발달로 다원화되고, 자유로워진 사회가 동성애를 점차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아직까지는 윤리적 문제점으로 간주되어오고 있지만, 얼마전 프랑스의 동성간 혼인이 가능한 법안이 통과되면서 동성애는 더 이상 윤리적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취향으로 생각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

결론적으로, 동성애의 정상인지 아닌지의 판단은 바로 역사적 패러다임의 문제일 뿐, 어느 한쪽으로 정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도,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인들의 커밍아웃, 이것이 올바른 것일까?

동성애자들이 이제 커밍아웃을 하면서 동굴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좋은 현상일 것이다. 숨어지내며, 자신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것보다는 밖에 나와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사는 것이 어쩌면 더 보기 좋고, 더 인간 다운 행동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공인들이기 때문에 문제의 여지가 있다. 일반인들의 커밍아웃과는 달리 공인들의 커밍아웃은 사회적 여파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들, 아직 자신의 정체성이나 세계관이 정립되지 않은이들에게 공인의 커밍아웃은 혼돈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요즘 청소년들은 쉽게 받아들이고, 쉽게 포기하는 것이 특징이다. 저것이 흔히 말해 '쿨 한 것이다'라고 말하면 바로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아닐 때는 어느때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요즘 청소년들의 트랜드이다.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에게 동성애는 '쿨 한 것'일 수도 있겠다. 특히 외롭거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거나, 특히 이성에게 크게 버림받았던 학생이라면 더 크게 눈을 돌릴 수 있겠다.

물론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깨닫고 행복한 길을 찾고 모색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님에도, 현재 상황을 벗어나고자, 아니면 더 멋있어 보이고 싶음에 동성애를 선택하는 학생도 있을 수 있다. 공인의 커밍아웃으로 인해 한 명의 학생의 삶이 바뀐다면, 그것도 불행하게, 그러면 공인들의 커밍아웃은 문제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매듭지으면, 커밍아웃으로 인해 동성애자가 사회활동을 편하게 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그들도 하나의 인격체이고, 동성애라는 것은 어쩌면 이 시대에 개인적 취향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성애자들이 아니라고 해서 단죄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커밍아웃하고자 한다면, 자신이 공인이라면, 주변을 둘러보았으면 좋겠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물론 커밍아웃을 하면 마음도 편안하고 자신이 행복해질 수는 있겠다. 하지만 굳이 공공연하게 해야겠는가? 그저, 조용히 동성애자로 살아간다면 누구나다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을까?

끝으로, 김조광수의 결혼을 축하한다. 성소수자들에게는 용기가 될 케이스이기도 하겠지만, 아직 정체성도 찾지 못한 십대들도 그 결혼을 보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 이해해주길 바란다.


태그:#동성애, #김조광수, #청소년, #합법, #커밍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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