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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두 딸의 아빠입니다. 큰 애는 대학교 2학년이고, 작은 애는 중학생입니다. 우리 부부는 늘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제대로 키워 사회에 자랑스럽게 내보낼 수 있을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합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가 볼 때에 애들이 영 미덥지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저런 얘기도 해주고 야단도 치고 경각심을 가질 만한 수많은 화두들을 던져보고 가족여행 등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때론 아이들 문화를 함께 호흡하려는 안간힘을 쓰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기획들이 갖는 목표는 아이들로 하여금 현재 자신의 위상을 자각케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미래를 힘차게 그려나갈 수 있도록, 부모로서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부모로서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이 모든 몸부림이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면 좀 아득하고 허망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개인적 넋두리를 늘어놓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제대로 된 자식농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많은 부모들과 함께 공감하고 해법(?)을 모색하며, 또한 이에 앞서 인생, 가정, 부모와 자식의 관계, 사회 등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지만 하루하루 삶의 무게앞에서 그냥 스쳐버리는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간, 기성세대와 자라나는 세대간의 갈등은 오랜 역사 속에서 늘상 있어왔던 일입니다. 내가 부모로서 느끼는 한계와 자식에 대한 분노, 부모자식간의 갈등과 불만은 사실 나만의 문제는 아니고 이 시대 많은 부모들과 공유하는 고민이고 또한 우리들의 부모, 그리고 오랜 역사속에서 반복됐던 일일겁니다. 저는 이 중대한 이슈를 또래 집단의 압력(peer pressure)과 가정문화(family culture) 라는 키워드로 풀어내볼까 합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차적 주체가 부모이니까 아이들은 출생 이후 자라나면서 부모의 가치관의 절대적 영향 아래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학교를 가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또래집단의 문화가 아이들을 지배하는 중심축으로 떠오릅니다.

 

결국 아이들은 또래 집단의 압력과 가정문화라는 이중구조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구도 속에서 - 때론 어느 일방이 절대적 영향을 미치거나 양자가 적절한 긴장 속에서 타협을 하는 - 삶의 양태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에 또래 집단의 압력에 비해 또래 집단의 압력은 너무 미약합니다. 힘의 균형이 유지되기가 일반적으로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애든 어른이든 비슷한 연령대에 친밀감을 느낍니다. 부모는 아이의 삶의 조건들을 규정짓는 존재여서 아이들은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정서적 교감 측면에서 부모는 자식들이 소속된 또래집단에 비해 열세입니다.

 

게다가 사회적 유행이나 대중문화, 말초적 소비문화, 허무맹랑한 유행어 따위는 강한 호소력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빛의 속도로 전파되고, 그 공유된 또래문화 속에서 아이들은 강력한 소속감을 느끼게되겠죠. 이에 비해 부모는 고리타분하고 초라한 존재일 뿐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잔소리까지 해대니 아이들 마음 속에 부모는 악마와 동창생 쯤으로 자리매김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요즘 스마트폰이 대세입니다. 아이들은 이걸로 사진을 찍고 친구들과 하루에 수십 수백 번 메시지를 주고 받고 인터넷 검색으로 시시콜콜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게임을 합니다. 아이들은 열광하고 부모에게 사달라고 조릅니다. 이건 분명히 아이들 공부에 방해가 되고 정서적으로 유해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의 요구를 거절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설령 부모가 단호히 거부해 아이들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아이들이 마음 속으로 부모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강한 반발심에 잡혀있다면 또다른 전장터에서 부모자식간의 전투가 벌어지겠죠.

 

아이들이 스마트 폰을 손에 쥐느냐 마느냐의 최종적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화를 통해 부모가 자식을 합리적으로 설득하는가와 부모가 자식의 입장을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하는가, 하는 이른바 소통의 과정입니다. 다시말해 확고하고도 일관성이 있으며 소통을 보장하되 아이들 또래 집단의 압력과 맞먹는 영향력을 보유한  '가정문화' 를 우리 부모들은 가지고 있는가, 만들려고 구체적으로 노력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성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스마트 폰 뿐 아니라 유행하는 옷과 신발 등을 놓고도 부모와 자식간의 문화적 충돌이 빈번합니다. 이건 단순히 부모의 경제적 능력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가정문화의 부재, 빈약함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부모들이 자식의 요구에 수세적으로 끌려가거나 권위를 내세워 부모의 입장만을 강요하는 양극단을 넘어서서 아이들이 다소 불만스럽게 느끼더라도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또래 집단의 압력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가정문화와 조화롭게 절충하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부모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책을 잘 읽지 않습니다. 시험을 위해 교과서 참고서는 열심히 보는 아이들도 소설이나 시, 정치 경제 철학 심리 역사와 관련된 책들은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지요. 우선 책을 읽지 않아도 학교성적에 별 영향이 없고 부모가 독서를 하지 않으며 아이들의 시간소비를 책임지겠다고 아우성치는 다양한 대중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아이들의 또래 집단의 압력이 큰 몫을 차지합니다. 아이들이 모여 대화할 때 "어떤 책을 읽었더니 좋더라, 너는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니?" 이런 얘기들을 거의 안 합니다. 그런 얘기하면 왕따 당하지요. 결국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과 멀어집니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어떤 '가정문화'를 만들고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았습니다. 가정은 기업과는 달라야 할 것 같습니다. 가정을 지탱하기위해 경제력이 필수적이지만 부모가 충분한 재정적 능력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그 가정이 행복하고 자식농사가 순조롭게 이뤄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또한 반대로 부모의 경제력이 취약하다고 해서 자식앞에서 주눅이 들거나 시대를 한탄하거나 3류인생을 자처하며 자포자기하는 것이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어찌보면 자식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성인으로서, 부모로서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매일 매일의 일상과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가?  해가 뜨면 사라지는 어슴푸레한 아침안개같은 세속의 일시적 흐름 속에서 나는 어떤 기준으로 영원한 중심을 잃지 않고 살고 있는가? 부모의 역할을 하고 있는 내가 쏟아내는 무수한 말들과 행동이 자식들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투영이 된다고 본다면, 결국 자식을 향한 애끓고 가슴답답한 사연은 '나'의 삶의 문제로 귀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가정문화'로 돌아갑니다. 멋진 가정을 꾸려나가고 제대로 된 자식을 배출하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소망일 겁니다. 그런데 그 소망은 생각만으로는 부족하고 구체적 전략과 실행력이 요구됩니다. 깊은 고민과 연구가 필요합니다. 자식과의 '대화의 기술'도 다듬어야하고  호감있는 표정과 차분한 말투, '알맹이' 있는 잔소리를 위한 학술적 노력도 있어야 할 듯 합니다. 과도한 권위주의는 배격해야하지만 아이들을 이해한답시고 고통스러운 훈육의 과정을 무시한 채 아이들의 버릇없음을 방치하고 이것을 친구같은 부모자식관계로 착각하지도 말아야겠지요. 원만한 부부관계도 아주 중요하지요.

 

사회생활이라는 이유로 회식이니 모임이니 하면서 밤늦게 귀가하고 주말에는 골프, 낚시, 운동한다고 밖으로 나가거나 피곤하다고 잠이나 자는 이 땅의 무수한 아빠들, 어쩌다가 가족들이 함께 하는 시간에 고작 티비나 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과연 아름다운 자화상일까요?

 

소비적 욕구를 충족하는 물건들을 사는 데는 열심이지만 좋은 공연을 함께 보고 책을 구입하는 데는 인색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가족의 삶.

 

자식은 부모를 잘 만나야하고, 부모는 자식을 잘 만나야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저도 자식이 못마땅하면 자식복이 없는 내 '운'을 한탄하기도 합니다. 좋은 부모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합니다. 부모는 부모, 자식은 자식, 각자의 길이 있다는 생각으로 자식의 일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맘 먹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내가 부모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을 깨닫게 되고 자책하는 맘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자식농사 잘 지어보겠다고 백방으로 뛰어도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 이르면 헛헛함을 떨쳐내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보람있게,죽을 때까지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인생의 진리를 하나하나 깨닫게 된다면 내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고, 이러한 나의 진심과 결실이 종국엔 자식들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 땅의 많은 부모들과 절박하고도 절실한 영혼의 외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냅시다.


태그:#또래집단, #가정문화, #자식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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