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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미술신간에 그린 추상화입니다.
▲ 아침달팽이 아이가 미술신간에 그린 추상화입니다.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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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올해 여자 고등학교(이하 여고)에 들어간 아이가 그린 그림으로 제목은 '아침달팽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 아이가 학교 미술 시간에 추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선생님은 한참 인상을 쓰며 들여다 보더니, "교직 30년 만에 처음으로 100점짜리 미술 실기 점수가 나왔다"고 하셨다고 한다. 아이는 미술학원을 다닌 적이 없다.

작년에 시골집 처마 밑에 해바라기 씨앗 몇 개가 떨어져서 싹이 나더니, 한여름에 접시만 한 노란 눈부신 꽃이 피었다. 어느 비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던 날에 달팽이 두 마리가 바람에 펄럭이는 해바라기의 큰 잎사귀에 간신히 붙어 있었다. 엄마는 아이를 불러내어 달팽이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우리는 처마 밑 해바라기 잎사귀에 비바람을 피하고 있는 엄마와 아기 달팽이를 보고 참 신기해 했었다.

거센 비바람에 키 큰 해바라기가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사이에도 달팽이는 두 촉수를 길게 빼고 여유있게 두리번거리며 자기가 갈 길의 방향을 찾고 있었다. "아가 시골살이는 이렇게 자연 가까이에서 식물을 관찰하고 고운 심성을 키워가는 즐거움이 있단다." 엄마는 속으로 내심 기특해하며 아이의 신기해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 적이 있다.

아이가 작년에 그린 푸른머리 소녀에요.
▲ 소녀 아이가 작년에 그린 푸른머리 소녀에요.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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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이가 시내에 있는 여고에 들어갔다. 집에는 한 달에 두 번정도 오는 기숙사 생활을 한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교육을 늘 중요시하였기에 어릴 때부터 시간이 나면 시골 흙집이나 온양의 동물 전 구경을 시켜주고 했다.

지금 아이는 학교 틀 안에서 학습 위주의 교육을 받고 단체 생활을 하는데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다. 내 아이가 청소년기를 이렇게 보내야 하는 것이 정말 후회없는 자녀교육인가 반문하며 갈등이 생긴다. 그동안 키워낸 아이의 정서적이고, 자유로운 사고관이 어른들의 관료적인 주입식 교육에 눌려서 유연한 사고관이 호두처럼 딱딱한 껍데기 속에 갇혀 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다.

2년전에 아이가 공책에 그린 그림
▲ 아이그림 2년전에 아이가 공책에 그린 그림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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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에 귀촌을 결심하던 날에 여느 부모가 다 그러하듯이 자녀의 교육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다. 남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이사한다는데, 엄마는 자식들을 데리고 도시에서 농촌으로 돌아오는 삶을 감행했는데 그전에 몇날 며칠을 두고 곰곰이 생각하며 고민하던 시절도 엊그제만 같다.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사와서 낯선 곳에서 개구쟁이들과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고 참 많이 힘들었단다.

엄마가 아이들과 시골살이를 택한 것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전에 자연 속에서 정석적인 자연 체험을 시키고 싶었다. 왜냐하면, 엄마의 경험에 의하면 유년기의 자연 속에서 자란 정서는 평생을 좌우한다는 느낌을 늘 갖고 살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농촌에서 자랐고, 농번기에는 학교를 쉬면서 농사 일을 도와야 했던 기억이 있지만, 내 삶의 굴곡을 지날 때마다 온전한 몸과 마음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자연 속에서 체험한 강인한 정신력과 생명에 대한 존중감이 정신세계 속에 짙게 깔려있기 때문인것 같다.

엄마가 어린 시절에는 아이보다 몇 배나 큰 소를 몰고 동네 아이들과 마을 뒷산 초지를 올랐다. 체구가 작은 초등학생이 자기 몸집보다 큰 소를 몰고 산에 오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이가 소 고삐를 놓치게 되면 소는 멀리 달아나서 남의 콩밭, 고구마밭에 가서 죄다 뜯어먹고 주인한테 혼나기 일쑤였다.

영리한 소는 소 꼬비를 놓치고 겁내는 아이를 깔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이 달아난다. 어떤 아이는 소를 몰고 산을 오르다가 손에서 소 고삐를 놓치고 울기도 하고 힘이 달려 손에 잡힌 소 고삐에 매달려 소한테 끌려 가기도 한다. 어느날 고삐 하나로 소를 제압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면 의기양양자신감이 생긴다. 내 친구 병기는 말을 안 듣는 소의 잔등에 아예 올라타고 뒷산에 소먹이로 다니곤 했다. 병기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야학으로 나왔지만, 양복점 기술을 배워 큰 부자가 되었다. 어린시절 자연 속에서 터득한 삶의 지혜나 강한 정신력은 인간이 살아 가는데 밑거름이 되는 것 같다.

소를 모는 아이들은 깊은 골짜기로 소들을 일제히 몰아넣고 한여름 뙤약볕 아래 넓은 푸른 잔디 위에서 마냥 뛰어놀았다. 큰 바위 위에 올라가 하늘 높이 흘러가는 흰구름 보며 저 넓은 세상을 동경하였고, 심심하면 푸른 골짜기로 내려가서 흐르는 개울물의 돌을 뒤져 가재를 잡고 놀았다.

여름 한낮의 날씨가 뜨거울수록 저녁에 지는 노을은 더 불타고 아름답다는 자연의 이치를 어린시절에 터득하게 되었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고 소들이 하나둘 요랑 소리를 내며  골짜기에서 초지로 올라와 모이면 아이들은 다시 소 꼬삐를 잡고 집으로 돌아오면 소몰이의 하루일과가 끝난다. 짙은 어둠이 내리깔리는 시골집 마당의 두꺼비소리와 밤하늘에 윙윙 날아다니는 반딧불의 추억을 갖고 살아가는 어른이 되었다.


태그:#아이, #추상화, #그림, #아침달팽이, #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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