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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우 평택사회경제발전소 대표
 이은우 평택사회경제발전소 대표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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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우 평택사회경제발전소 대표를 6년 만에 다시 만났다. 2007년 4월 7일은 미군기지확장저지 운동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던 대추리 주민들이 이주합의를 하고 대추리를 떠나던 날이었다. 그날, 대추리에서는 '매향제'가 열렸다. 문정현 신부와 대추리 주민들은 통곡을 하면서 '매향제'를 진행했고, 나는 종일 그 현장에 있었다.

그 날, 이은우 대표와 대추리에서 잠깐 마주쳤다. 당시 그는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였다. 대추리 주민들이 이주합의를 하고 난 뒤인 2007년 3월에 기자와 인터뷰를 했던 그는 "한편으로는 비참하고, 한편으로는 죄송하다"는 심정을 밝힌 적이 있다.

대추리 이후 평택은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2009년, 쌍용자동차 해고사태가 전국을 뒤흔들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아픔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이런 굵직한 사안이 터지면, 연대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이지만 지역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지역의 현안은 지역시민단체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고, 완벽하지는 않아도 최소한의 해결책을 마련하는 역할이 가능한데 지역을 뛰어넘는 현안에 대해서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은우 대표의 말이다. 1995년,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준비모임부터 참여해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평택 시민운동을 주도한 이 대표는 자칭 '평택 시민운동 1세대'다. 대도시가 아닌 도농복합지역의 특성상 평택에서의 시민운동이 쉽지 않을 것은 지역을 잘 모르는 이들도 짐작할 수 있을 터.

지난 2일, 평택사회경제발전소 사무실에서 이은우 대표를 만나 평택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보수 색채 강한 평택, 시민운동 하려면 더 많은 희생 필요"

- 지난 2012년, 4·11총선에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로 등록, 선거운동을 했다. 결국은 중도에 뜻을 접었는데?
"지난해에 상당히 고민이 많았다. 지역에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정치집단(민주통합당)에 (활동을) 인정받지 못하고 이용만 당한 결과가 되었다.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다."

- 정치를 너무 막연하고 쉽고 단순하게 생각한 게 아닌지?
"순진했다. 준비가 미흡했던 부분도 있고, 권력의지가 약했다는 생각을 정리를 하면서 깨달았다."

총선 출마와 관련, 이 대표는 당시 출마배경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하나는 시민운동가의 활로에 대한 고민이었다. 지난 1995년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준비모임에 참여하면서 시민운동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자신을 '평택시민운동가 1세대'라고 지칭하면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지역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10년 이상 하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할 수 있다.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인 데다가 지역에서 해결할 수 없는 사안들이 계속 평택에서 일어나면서 무기력증에 빠진 것도 한 원인이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부분으로 활동무대를 옮기고 싶다,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계속했다."

다른 하나는 박원순 서울 시장이었다. 박 시장의 서울시장 당선은 시민운동활동가들에게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시민운동가 출신인 염태영 수원시장도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운동의 영역을 정치권으로 잘 확장한다면 '생활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 것이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에서 혁신과 통합을 강조하면서 시민사회의 참여를 유도·권유했고, 그는 기대감을 안고 합류했다. 하지만 끝내 그는 '현실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채 정치판에 대한 환멸을 안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당시 예비후보로 출마의사를 밝힌 그는 매일 선거비용 내역을 밝히는 메일을 유권자와 지인들에게 발송했다. 투명한 선거운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선거출마 의지를 밝힌 뒤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대표를 사퇴한 그는 지난해 연말, 다시 시민운동으로 돌아왔다. 평택사회경제발전소를 창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12월 4일 열린 창립총회에서 대표로 선출됐다.

 이은우 평택사회경제발전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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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도 평택에서 시민운동을 한다는 것은 '불행의 시작'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평택은 도시의 특성상 시민단체 활동의 지지기반을 넓히기 어려운 한계가 있고,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
"맞다. 평택은 지역이 보수적인 색채가 강하고, 토착세력도 많아 소지역주의가 여전히 강하게 존재한다. 시민운동은 공공성, 공익성, 합리성을 강조하는데 그런 것들이 받아들여지기에는 미흡한 구조다. 그래서 수도권의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많은 헌신과 노력 그리고 희생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많은 고민과 상처를 견딜 수 있는 자기관리가 필요한 측면이 있다."

- 그런 상황에서 다시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이유가 뭔가?
"기존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시민운동을 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 비판하고 감시하는 활동이었다면 이제는 대안을 만드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는 시민을 대상화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시민과 함께 호흡하면서 시민들이 지역사회의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방식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이 대표는 '평택사회경제발전소'라는 명칭에 대해 "사회적 경제라는 측면을 강조한 것"이라며 "마을기업이나 협동조합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공공사회의 경제'를 중심에 두고 활동을 해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업은 '작은 도서관' 만들기다. 이름을 공모하고, 책과 성금을 후원받는 방식으로 지역사회의 뜻을 모으고 있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고 한다.

"기존에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슈 파이팅을 하는 방식이 많았는데 그것보다는 미팅이나 토론을 통한 소통의 방식을 통해 정책을 만들어내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낸 정책이 시정에 반영될 수 있는 역할을 잘 해보고 싶다."

- 현재 회원은 몇 명이나 되나?
"한 50명 정도 된다."

- 너무 적은 게 아닌가? 단체가 크면 그만큼 힘을 받고 활동력이 커지지 않겠나?
"현재로서는 회원확대에 주력하고 싶지 않다. 저는 대형단체를 지향하지 않는다. 힘은 숫자에 있는 게 아니라 모임의 진정성과 실천성 그리고 대안성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예전에는 회원확대를 통한 외형 키우기에 신경을 썼던 적도 있다. 그러다보니 가장 중요한 주체인 '사람'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을 돌아보거나 성장시키거나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사람'이다. 그리고 관계도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더디더라도 여유있게 가고 싶다."

- 2010년 지방선거로 시장이 바뀌었다. 평택은 어떻게 달라졌나?
"이전의 시장은 평택 전역을 다 헤쳐놓는 개발정책을 추진하면서 지역을 황폐화시켰다. 그래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참여해 시장을 바꿨다. 하지만 기대했던 효과는 거두지 못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이 대표는 "현재의 평택시는 말로는 소통을 이야기하지만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시장이 행사장을 찾아가 시민들과 악수를 하는 게 소통은 아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무엇보다도 관료주의와 권위주의가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다. 주민의 참여가 좀 더 활성화되고 활발해지기를 기대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진정한 소통은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경청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나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결은 시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를 통해서 변화하게 하는 것이다."

"쌍용차 사태 '수고했다'는 전화, 곤혹스러웠다"

- 시민단체는 시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비판만이 능사는 아니지 않나?
"시민단체는 자치단체와 과도하게 가까울 필요도 없고 지나치게 멀리할 필요도 없다. 적정한 선을 유지하는 게 어렵지만, 정책은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비판은 강력하게 해야 한다. 또 시의 발전과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적극적인 협력은 비판받아서도 안 된다."

- 평택은 미군기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대추리 주민들이 이주한 지 6년이다. 어떤 상황인가?
"현재 공사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2016년까지 이전을 완료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한미관계의 유동성이 커서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할 것 같다."

- 미군기지 이전이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는데?
"많이 늦어졌다. 2010년 초반까지 이전하겠다는 거였는데 많이 늦어졌다."

- 이전과 관련해 미군기지에 대한 반응은 달라진 것이 없는지?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해 2000년대 중반에는 아시다시피 평택은 아주 뜨거운 시기를 보냈다. 대추리와 도두리 상황이 일단락되고 공사가 진행되면서 지역에서는 (미군기지 이전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전에는 미군기지가 들어오면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감이 있었으나 지금은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표는 "미군기지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지만 다른 지역에서 가끔씩 터지는 미군기지 환경오염과 미군범죄를 우려해 대책을 세워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역사화와 자치단체가 같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짚었다.

"어떻게 하면 미군범죄와 환경오염을 막아내 안전한 도시를 만들 것이냐는 한미 문제와는 별로로 생각하고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은우 평택사회경제발전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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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차 사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얼마 전에 지역의 아는 분들로부터 쌍용차 해고근로자들이 다 복직되었다는 뉴스를 봤다면서 수고했다는 전화를 받았는데 무척 곤혹스러웠다. 복직된 분들은 무급휴직자로 2009년 8월의 노사협의회에서 1년 뒤에 복직시키겠다고 했던 사람들이 이제야 복직이 된 거다. 지금도 여전히 철탑농성이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다."

이 대목에서 이 대표는 잠시 말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가 터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 힘을 보탰지만, 지역을 뛰어넘는 문제였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풀어야 하는데, 국가는 뒷짐을 지고 지역이 모든 갈등과 피해를 끌어안는 모양새가 됐고, 지금도 후유증이 남아 있다. 정치권이나 정부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 해결을 끌어내야 하는 것 아니겠나."

이 대표는 "그 문제를 같이 아파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했는데, 늘 그분들에게 죄송하고 스스로는 매우 깊은 절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평택의 시민운동은 참으로 고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렇게 말하면 뭣하지만 노동운동을 하는 분들이나 민중운동가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그들은 외치면 되지만, 우리는 외치기만 하면 욕 먹는다. 우리에게는 합리성을 요구하고, 중간에서 중재도 하고 대안도 모색하라는 요구를 한다. 한쪽에서는 전투적이지 못하다고 하고, 보수적인 집단이나 시민들은 '시민단체가 너무 과격한 거 아냐, 극단적인 거 아냐' 하는 얘기를 듣는다. 그 때문에 늘 긴장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 괜히 시민단체 활동을 시작했다는 생각은 안 했나?
"없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점점 많이 하게 됐다. 우리의 진정성을 왜 몰라주는 하는 아쉬움은 늘 있었다."

- 이 대표가 꿈꾸는 미래도시 평택은 어떤 모습인가? 평택과 함께 하면서 꿈을 실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텐데?
"지금까지 평택은 외부기업이나 자원을 유치해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것이 경제발전 모델이었다. 이런 것들은 지역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인구증가율에 한계가 있어 도시가 커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역 주민 스스로가 지역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개발이나 발전 주체가 지역민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평택은 면적이 넓은 도농복합도시로 농촌과 도시가 같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역동성이 있어 좋은 전략을 세운다면 훨씬 좋은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며 "외부의 자원을 내부의 자원에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상생할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결론은 "평택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전제되어야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이 대표는 시민단체 활동의 경험을 시정에 반영하는 현실정치에 대한 꿈을 접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은우#평택사회경제발전소#평택#대추리#쌍용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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