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기에서 팀을 구한 것도 역시 문지기의 슈퍼 세이브였다. 그 주인공이 맨유의 데 헤아에서 첼시의 페트르 체흐로 바뀐 것 뿐이었다. 축구를 수십 년 봐 온 사람으로서도 도저히 믿기 힘든 두 장면이 승부의 갈림길을 또렷이 만들었다. 어떤 감탄사로도 표현하기 힘든 순간이었다.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이 이끌고 있는 첼시 FC는 우리 시각으로 1일 오후 8시 30분 런던에 있는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벌어진 2012-2013 잉글리시 FA(축구협회)컵 8강 토너먼트 재경기에서 골잡이 뎀바 바의 아름다운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켜내며 1-0으로 이겼다. 이로써 첼시 FC와 맨체스터 시티 FC의 준결승 맞대결이 이루어졌다.
지나가버린 일 후회하면 뭐해사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이하 맨유)는 이 재경기를 안 치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더블(프리미어리그 우승, FA컵 우승)을 노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지난 달 11일 이른 새벽(우리 시각) 안방인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첼시와의 8강 맞대결에서 경기 시작 후 11분만에 2-0의 점수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맨유는 후반전에 아자르와 하미레스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2-2로 경기를 끝내고 말았다. 아니, 그 경기 종료 직전에 문지기 데 헤아의 슈퍼 세이브 두 개가 아니었다면 더 큰 망신을 당할 뻔했다.
다른 일도 그렇듯 축구장에서도 지나가버린 일을 후회한다고 해서 씁쓸한 입맛만 다실 뿐이다. 결과적으로 맨유는 이번 재경기를 통해 뼈저린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21분, 또 한 번의 기회가 맨유에게 찾아왔다. 다친 선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첼시의 간판 왼쪽 수비수 애슐리 콜이 왼쪽 허벅지 뒷근육을 잡으며 버틀랜드로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자리에는 퍼거슨 감독이 내보낸 두 명의 측면 자원(수비수 발렌시아, 미드필더 나니)이 나란히 뛰고 있었기에 맨유로서는 호재라 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쪽에서 신통한 장면을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했다.
체흐와 뎀바 바, 둘 다 믿기 어려운운명의 갈림길이 후반전 시작 후 꽤 이른 시간에 새겨졌다. 49분, 왼발을 잘 쓰는 첼시의 공격형 미드필더 후안 마타가 부드럽게 왼발로 넘겨준 공이 방문 팀 맨유의 간판 수비수 리오 퍼디낸드와 문지기 데 헤아 사이에 떨어지고 있었다.
이 순간 퍼디낸드의 뒤로 돌아들어간 첼시 골잡이 뎀바 바는 중심을 최대한 낮추며 오른발 발등 발리 슛을 시도했다. 몸 방향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동작이었는데 거짓말처럼 뎀바 바의 발등을 떠난 공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 CF)의 그것처럼 회전 없이 골문 왼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공의 궤적이 매우 아름다웠다.
그로부터 11분 뒤에는 첼시의 골문 앞이 뜨거워졌다. 맨유의 대니 웰벡이 오른쪽 측면에서 날카롭게 띄워준 공이 골잡이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이마에 맞았다. 몸을 날리며 공을 반대쪽으로 보낸 에르난데스의 집중력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일은 골이나 다름없는 이 슛을 문지기 페트르 체흐가 골문 안으로 몸을 내던지며 쳐낸 것. 안방 팬들도 체흐의 슈퍼 세이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후 방문 팀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골잡이 판 페르시(61분)를 비롯하여 노련한 미드필더 라이언 긱스(65분)와 애슐리 영(80분)에 이르기까지 선수 교체를 세 차례 시도하며 동점골을 노렸지만 체흐가 지키고 있는 첼시 골문을 끝내 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로써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더욱 확실하게 가져올 일만 남았고, 첼시 FC는 오는 14일 늦은 밤에 맨체스터 시티 FC와 FA컵 결승전 진출을 다투게 되었다. 첼시가 노리는 또 하나의 트로피는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트로피다. 오는 5일 새벽 FK 루빈 카잔(러시아)을 안방으로 불러 8강 맞대결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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