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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사장이 물러났다. 170일간의 파업과 230명이 넘는 대량 징계는 그가 남긴 상처다. 이제는 그 후가 중요하다. 상처를 씻기 위해, MBC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오마이뉴스>는 MBC 내부 인사와 언론 전문가 릴레이 기고를 통해 그 방안을 모색한다. [편집자말]
지금의 MBC는 비정상적이어도 너무나 비정상적이다. 조직의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지배(거버넌스) 구조가 철저하게 무너졌다. 정치권력에 의해 조인트 까인, 법인카드를 멋대로 써 대고 고소장과 해고 통보를 마구 남발하는 것 외에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낙하산 사장 탓이다. 회사를 완전히 말아먹은 것 외에는 한 게 없는 사장. 김재철 휘하에서 늘어난 것은 그와 공모한 도당들의 기회주의요, 그에 의해 배척된 다수 선한 구성원들의 비탄이고 좌절이었다. 재철씨를 향한 시중의 조롱은 MBC에 대한 불신과 회의로 이어졌다.

개인적 비행과 구조적 몰락의 불행한 연동 효과. 물론 비정상의 상태는 김재철 아웃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부정과 공모한 기회주의 세력은 아직도 MBC 내부에 친친 그 똬리를 틀고 있다. 정수장학회의 전 지배인을 만나 주식 매각 등의 공모를 한 자들이 아직까지도 MBC 안에 굳건하다. 그렇다. 내·외부 부정한 세력에 의한 공영방송의 장악 사태. 제작의 독립성과 편성의 자율성이 이런 상황에서 제로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능력 있는 인력과 비판적인 목소리의 거세는 MBC 비정상화의 가장 확실한 징표가 된다.

권력의 서비스를 위해 최승호나 이상호 같은 제작자들은 서둘러 해고되어야 좌천되어야 했다. 자리에서 멀리 한직으로 쫓겨나야 했다. 사장 일파의 입맛에 맞춰 선발한 대체 기능직 용역들이 남은 일감을 차지한다. 잘리지 않고 남은 피디들, 눈치 보기 급급한 보도국 기자들도 무력·무능하긴 마찬가지. 위로부터의 강압이 내부로부터의 자기검열을 유혹했다. 그렇고 그런 프로그램을 때울 연출가나 오늘의 사건을 옮기기 급급한 리포터들, 고액연봉 기술직 사원으로서 오케이인 사람들에게만 MBC는 그 아슬아슬한 목숨 보존의 자리를 허했다.

뉴스가 제대로 될 리 없고, 탐사·취재의 보도가 가능할 리 만무했다. <뉴스데스크>는 권력용 뉴스 테이블로 바뀐 지 이미 오래. 정권의 비위를 건드릴 수 있는 그 어떤 뉴스 보도도 몇 년 동안 MBC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에 MBC가 내놓은 것은 정치권력의 의중을 전달하기 위한 선전적 뉴스,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를 부추기는 선정적 뉴스뿐이었다. 유능한 피디를 자르고 능력 있는 작가를 추방한 후, 겨우 행해화한 형태로만 남아 방송되는 <피디수첩>은 비정상적 MBC의 처참한 지경을 가장 절망적으로, 비극적으로 드러낸다.

MBC 정상화는 보통 일이 아니다

지난 3월 26일 오전 방문진 사무실에 도착하는 김재철 MBC사장.
 지난 3월 26일 오전 방문진 사무실에 도착하는 김재철 MBC사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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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인력의 추방과 공익적 프로그램의 축출,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판적 저널리즘의 붕괴라는 행태로 시청자들은 MBC 비정상화를 구체적으로 체험해 왔다. MBC(뉴스)의 존재감 상실, 공영방송 MBC의 정당성 위기로 일반 시민들에게 생생하게 다가가 있다. 만약 이게 김재철 일파가 진정으로 의도한 것이었다면, 그들은 바로 그 목표를 완벽하게 성취한 셈이다. 공영방송 MBC의 몰락. MBC 공익성의 무효화 조치를 통한 공영방송 체제의 해체. MBC의 비정상성은 이 중대한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진행되었고 또 지금도 진행 중인 중대 사태다.

그렇기에, MBC 정상화는 보통 일이 아니다. 사장을 날리는 일이나 그 후임을 서둘러 뽑는 일 혹은 여야가 이구동성으로 떠드는 '지배구조 개선 논의'로 해결될 수 없는, 중요하고 긴급하면서도 험난한 과제다. MBC를 공영방송의 정상적인 체질로 되돌리는 과업, MBC의 공익적 서비스를 통해 위험에 처한 공영방송 체제 자체까지도 함께 보수하는 프로젝트가 바로 MBC 정상화의 프로젝트인 것이다. 이 귀중하고 지난한 사업은, 최소한 현재의 시점에서, 1%도 채 구현되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으로만 남는다.

물론 김재철이라는 인물의 추방은 정말로 속 시원한 일이었다. MBC 구성원들은 물론이고, 시민사회와 시청자 모두에게 통쾌하고 고소한 사건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설혹 방문진이라는 정권 친화적 집단에 의해 정치 공학적 차원에서 뒤늦게 이루어진 결정인 측면이 크지만, 그 의미는 결코 낮춰 볼 수 없다. 미래의 진행이 바로 그 포인트에서, 그것을 계기로 해서, 전혀 다르게 이루어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김재철은 이렇듯 정상화의 필요조건임이 틀림없지만, 정상화의 충분조건은 전혀 될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이자.

차라리 이제부터가 문제다. 뉴라이트 이명박과 구별되는 보수우익 정권이 집권한 상태다. 효능 다한 퇴물 사장을,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충족으로 대체하려는 세력의 공모가 지금 당장 진행 중이다. 김재철 퇴출을, 정상화 개시의 입구가 아닌 정상화 논의 봉합의 출구로 가져가려는 기획. 김재철보다 좀 나을 성싶은 카드를 던지고, 해직 언론인 몇 명을 복직시키는 타협안을 제시하고 그래서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며, 남은 것은 국회 특위에서 풀자면서, 그렇게 MBC를 저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정상화'하는 수순이 예상된다.

이렇게 나올 저들의 '정상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현 국면에서 더 이상의 뭔가를 기대하기 어렵기에 그 정도의 '정상화'를 수용하는 실리 노선이 맞고 불가피한가? 아니면, 저들이 원하는 방식에서 나아가, 제대로 MBC를 정상화하고 공영방송 MBC를 되찾기 위해 훨씬 지난한 싸움을, 김재철 퇴출이라는 이 귀중한 기회를 통해, 시작해야 할 것인가? 김재철 퇴출로서 겨우 열린 정상화의 가능성을, 어떤 내용으로, 어떠한 전략·전술을 통해 실현시켜낼지, 시민사회와 노조, 그리고 시청자 모두가 당장 자문에 나서야 한다. 공통의 해답 찾기.

개인적인 의견이다. 김재철 없는 MBC, 똑같이 무능한 앵커출신 사장 때문에 속 썩인 몇 해 전 과거를 정상화된 MBC로 결코 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공영방송으로 정상화된 MBC라는 정상화의 최대 목표, 먼 미래를 고집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정상화란 폭력에 의해 훼손된 과거의 긍정적 면모를 원상 복구하고 미래의 필요한 요소들을 적극 구상하는, 지속적 노력이자 활동적 과정에 다름 아닌 것. 구체적인 내용과 확실한 목표를 갖고, MBC 정상화 운동을 지금 당장 개시해, 지속하는 실천 외에 대안이 없다.

정상화의 답을 권력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정권과의 타협을 통해 얻어낼 정상화가 아니다. 몰락 지경인 MBC의 공영성 복구와 프로그램·편성의 공익성·자율성 회복이 정권에 의해 가능할 리 만무하다. 비판적 저널리즘의 실천을 통해 시청자의 신뢰를 얻고, <피디수첩>의 정상 복원은 물론이고 위축된 교양·다큐의 편성 확대를 통해 공영방송으로서의 정당성을 되찾는 일. 이를 위해 해고된 피디와 배제된 기자들을 원직 복귀시켜 대중의 지지를 득하는 일. 권력과의 타협을 통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강제 통폐합 위기에 놓은 지역 MBC를 보존하는 일도.
 
공영방송 MBC가 끝장날 수도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공정보도를 염원하는 시민사회·네티즌 단체' 회원들이 지난 해 12월 4일 오후 여의도 MBC본사 앞에서 "김재철 사장의 MBC가 박근혜 후보 띄우기와 야권후보 흠집내기에 올인하고 있다"며 규탄 회견을 개최한 가운데, 정영하 MBC노조위원장이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공정보도를 염원하는 시민사회·네티즌 단체' 회원들이 지난 해 12월 4일 오후 여의도 MBC본사 앞에서 "김재철 사장의 MBC가 박근혜 후보 띄우기와 야권후보 흠집내기에 올인하고 있다"며 규탄 회견을 개최한 가운데, 정영하 MBC노조위원장이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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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듯이, 중요한 김재철의 퇴출이다. 그것을 노동조합의 승리, 미디어운동의 성과로 볼 수도 있다. 그 의미를 결코 무시할 수 없으며, 그렇게 열린 가능성을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과장은 금물. 그의 추방이 여전히 외부로부터 위에 의해 이루어진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랜 싸움의 당연한 결과라 할 수도 있지만, 김재철 아웃은 명백하게 새로 득세한 정치권력에 의한 인력 재배치, 권력 재정비 작업인 게 맞다. 권력의 이해관계에서 맞추고 권력의 시각에서 마련된, MBC의 지속 통제를 위한 '정상화' 작업일 뿐이다.

정상화가 김재철 아웃으로 마감되지 않도록 하는 일. 정권의 '정상화'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 것. 만약 대충의 타협으로 귀결되고 만다면, MBC 저널리즘의 위기나 공영방송 MBC의 위험 사태는 더 이상 복구 불가능할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렇기에, 희망과 낙관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현재 상황을 과장하지 않으면서, 차분하고 냉정하게,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차원에서, 동력과 목표, 내용과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할 수 있는 것을 당장 시작하면서, 꼭 해야 할 것들을 빠트리지 않는다.

졸속의 사장선임을 막는 일부터 시작할 정상화의 영원한 운동. 비정상화의 내부 책임자들을 정리해야 한다. 해직자를 복직시키고, 강제 입소된 기자·피디들을 작업에 원상 복귀시키도록 해야 한다. 지금 당장, 양보할 수 없는 정상화 조건이다. 자율적인 편성·보도 규약의 재운용, 민주적 지배구조의 구상, 강제적 지역 MBC 통폐합의 중지가 따라야 한다. 중기적인 정상회의 내용이다. 공영방송 MBC의 민주적 지배구조 수립과 공익성 강화의 마스터플랜 마련. 정상회의 최종 목표다. 이 모든 게 완성될 때까지 정상화는 미완성의 투쟁으로 남는다.

권력의 '정상화' 노력만 쳐다보거나 그와 적당히 타협하다가는 큰일 날 수 있다. 진정한 MBC의 정상화 가능성이 물 건너가 버릴 수 있다. 공영방송 MBC가 끝장날 수 있다. 물론 현 상황을 넋 놓고 쳐다보는 것도 실천적으로 옳지 않은 태도. 결국 시민사회, 노조, 학계가 정상화의 긴 목표를 갖고 현 상황에 책임성 있게 개입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현실 조건 속 실현 가능한 목표를 중심으로 전략적이고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것. 저항·대항의 조직화된 움직임 없이 정상화를 기대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역사의 진실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전규찬 교수는 언론연대 대표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입니다.



태그:#MBC 정상화 , #김재철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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