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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계곡에서 만난 신왕국 시대 파라오들

크루즈선에서 바라 본, 나일강 건너 왕가의 계곡이 있는 산
 크루즈선에서 바라 본, 나일강 건너 왕가의 계곡이 있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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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볼 것이 많아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다. 아침 5시 30분 기상에, 6시 30분 아침식사다. 배는 이미 룩소르 신전 앞에 정박해 있다. 배의 데크에서는 바로 앞 룩소르 신전과 강 건너 왕가의 계곡을 조망할 수 있다. 룩소르의 유적은 아침의 여명 속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룩소르 신전으로는 해가 솟아오르기 시작하고, 왕가의 계곡 위로는 열기구가 떠오른다.

우리는 아침 7시 30분 룩소르 서안에 있는 왕가의 계곡을 답사하러 떠난다. 이처럼 일찍 관광을 시작하는 것은 더운 낮을 피하기 위해서다. 또 하루 종일 많은 시간 걷거나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관광을 시작하는 경향도 있다. 배에서 내리니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사실 왕가의 계곡은 나일강 건너 바로 있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하류 쪽에 있는 다리를 건너 10㎞는 돌아가야 한다.

왕가의 계곡
 왕가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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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계곡은 알 쿠른(Al-Qurn)산 아래 테베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피라미드 무덤 건설이 중단된 후 그 대안으로 만들어진 무덤군이다. 기원전 1500년에서 1000년 사이 신왕국 시대  파라오들의 무덤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무덤이 자리 잡게 된 원인은 첫째 나일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범람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골짜기가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석질이 부드럽기 때문에 무덤을 조성하기 쉬웠다. 셋째로는 주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계곡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8시 15분이다. 우리는 차를 내려 약 10분쯤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들어가면서 상가들이 있고, 그것을 지나면 왕가의 계곡에 있는 지하 무덤들을 보여주는 모형도가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전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우리가 보게 될 네 개 무덤의 위치를 확인한다. 우리는 투탕카문, 람세스 3세, 람세스 9세, 메렌프타(Merenptah)의 무덤을 볼 것이다.

파라오의 무덤 위치 지도
 파라오의 무덤 위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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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계곡에서는 현재 64개의 파라오 무덤이 발굴되었다. 이들 무덤을 찾아내 처음으로 체계적인 이름을 붙인 사람은 존 가드너 윌킨슨(John Gardner Wilkinson)이다. 그는 총 21개의 무덤을 발견했고, 왕가의 계곡(Kings' Valley)을 뜻하는 KV 다음에 발견 순서대로 번호를 붙였다. 이때 처음 발견된 것이 람세스 7세의 무덤으로 KV1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현재도 레이더 탐사를 통해 65번째 무덤 발굴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  

무덤의 규모에 놀라고 그 안에 그려진 벽화에 넋을 잃다

나와 아내는 먼저 가장 많은 유물이 나온 투탕카문(기원전 1332-1323년 통치)의 무덤으로 향한다. 투탕카문의 무덤은 비교적 최근에 발굴되어 KV62라는 명칭을 얻었다. 이 무덤을 발굴한 사람은 하워드 카터다. 1922년 무덤을 처음 발견했을 때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23년 2월 부장품이 묻힌 전실과 관이 있는 현실 사이 벽을 열었을 때, 거의 완벽한 상태의 무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투탕카문 현실 벽화
 투탕카문 현실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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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문 왕이 그때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도굴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발견된 부장품은 모두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으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미라만 유리관 속에 넣어 현장에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그렇지만 3300년이 넘는 세월 속에 미라가 검게 변해 있다. 또 현실 벽에는 사자(死者)의 신 오시리스가 파라오를 영접하고 있다.

벽에는 또한 바분 원숭이가 파라오를 지키고 있다. 투탕카문의 무덤은 현실로 들어가는 연도가 상대적으로 짧고 벽화도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전체를 볼 수 있다. 투탕카문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이 이집트 박물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면, 무덤이 차지하는 비중은 왕가의 계곡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카르나크 신전에 있는 람세스 3세 석상
 카르나크 신전에 있는 람세스 3세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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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문의 무덤을 나온 우리는 더 위쪽에 있는 람세스 3세(기원전 1187-1156년 통치: KV11) 무덤으로 향한다. 람세스 3세가 가진 다섯 가지 이름을 보면, 강하고 위대하고 부유하다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이를 통해 그가 통치기간 많은 일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지중해 동부 지역 민족과의 갈등이 있었지만, 대내적으로는 신전을 짓고 산업을 일으키는 등 부국강병을 위해 애썼다.

그렇지만 최근 연구를 통해 그가 모반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컴퓨터 단층촬영 결과 그의 목 부분에 7㎝ 정도의 자상이 발견되는데, 이 정도면 식도와 기도는 물론이고 경추까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람세스 3세의 아들인 람세스 4세가 남긴 모반에 대한 재판기록을 통해서도 신빙성을 인정받고 있다. 연구자들은 람세스 3세의 첩이었던 테예(Teje)가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한 모반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람세스 3세 무덤의 연도와 현실 지도
 람세스 3세 무덤의 연도와 현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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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람세스 3세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연도는 파라오 중 가장 깊고 또 길다. 계단-복도-방-복도-전실로 이어지는 연도를 지나야 미라와 관이 있는 현실이 나오기 때문이다. 입구를 지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서 우리는 여러 신의 형상을 볼 수 있다. 하토르, 라, 케프리, 이시스, 네프티스, 마트와 같은 여신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첫 번째 복도에서는 매의 형상을 한 라-하락티 신이 파라오를 맞이한다. 두 번째 복도에서는 제물을 바치고 음악을 연주하는 등 인간과 신의 생활상을 자주 볼 수 있다. 세 번째 복도에서는 배를 타고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신과 파라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의 형상을 한 호루스, 악어 형상을 한 소벡이 배를 이끌고 위에서는 뱀이 이들을 지켜준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람세스 3세 석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람세스 3세 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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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지나 네 개의 석주가 있는 방에 이르면, 람세스 3세가 오시리스에게 제물을 바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또한 태양신 케프리, 라, 아툼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다음의 복도와 전실에도 농경과 천체의 운행 등을 담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인간이 하는 일들을 신들도 똑 같이 하고 있다. 이들을 지나면 드디어 현실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는 원래 람세스 3세의 미라를 담고 있는 석관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미라는 이집트 박물관에, 석관은 루브르 박물관에 가 있다.         

저 높은 곳에 있는 메렌프타, 저 낮은 곳에 있는 람세스 9세

메렌프타(KV 8)의 무덤으로 가기 위해서는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무덤 입구에서 뒤를 돌아보면 왕가의 계곡이 내려다보인다. 그런데 무덤 내부를 보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다시 아래로 160m를 내려가야 한다. 이 무덤에는 전체적으로 태양신 라의 모습이 많이 그려져 있다. 이곳의 유물은 일찌감치 도굴되었고, 현실에는 메렌프타의 석관 덮개만 남아 있다.

첫 번째 방에 보이는 파라오 람세스 9세
 첫 번째 방에 보이는 파라오 람세스 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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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렌프타의 무덤을 나온 우리는 비교적 초기에 발굴(KV 6)된 람세스 9세의 무덤으로 간다. 이 무덤 역시 일찍이 훼손되어 부장품이나 유물은 없고 오직 벽화와 부조만을 볼 수 있다. 1817년과 1888년 다시 발굴을 했으나 별다른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이 무덤은 특히 입구가 넓으며, 들어가는 길이 세 개나 된다. 이를 통해 이 무덤이 도굴범들에 의해 여러 번 침범 당했음을 알 수 있다. 현실에 이르는 연도의 길이는 105m로 비교적 긴 편이다.
 
연도의 끝에는 3개의 방이 있다. 첫 번째 방에는 죽은 파라오의 입을 열게 하는 의식을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다. 두 번째 방에는 네 개의 커다란 석주가 있는데, 정교하게 자르거나 치장을 한 흔적이 없다. 세 번째 방에는 현실로 들어갈 수 있도록 램프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천정에는 천신 누트(Nut)의 모습이 별과 함께 그려져 있다. 그녀는 천상에서 우주의 질서를 지배한다.

나일강 서안에 있는 왕가의 계곡
 나일강 서안에 있는 왕가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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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9세 무덤의 현실에는 석관이 남아있지 않다. 그렇지만 미라만은 하쳅수트 장제전 뒷산인 데이르 엘-바하리(Deir el-Bahari)의 파라오 무덤에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이처럼 파라오의 무덤은 매장 후부터 도굴되는 수난을 당했다. 무덤 작업에 참여한 장인들에 의해 처음 도굴이 이루어졌고, 그 후에도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도굴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들 왕가의 계곡을 나오면서 뒤를 보고 또 본다. 왕릉이 계곡 속에 있고, 계곡을 감싸고 있는 산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민둥산이다. 동양의 왕릉은 대개 자연친화적으로 나무가 있고 봉분이 있는데 반해, 이집트의 왕릉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그리고 또 전 세계적으로 한 지역에 이렇게 많은 무덤이 있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조선 왕릉도 40기 정도가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명나라 시기 왕릉도 북경의 외곽에 13기가 있을 뿐이다. 이집트는 역사 속에서 세계 최고 최대인 것을 정말 여러 가지 가지고 있다.

하쳅수트 장제전
 하쳅수트 장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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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스를 탄 우리는 이제 왕가의 계곡 반대편에 있는 장제전(葬祭殿: Mortuary temple)으로 향한다. 장제전은 말 그대로 장례를 지내고 제사를 지내는 신전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네 가지 큰일을 치르게 되는데, 그게 관혼상제(冠婚喪祭)다. 장제가 바로 상제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는 그 중 가장 유명한 하쳅수트 장제전을 자세히 살펴보고, 나오면서 아메노피스 3세 장제전을 잠깐 살펴보려고 한다.


태그:#왕가의 계곡, #투탕카문, #람세스 3세, #메렌프타, #람세스 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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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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