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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늙어 죽어야 한다"

여든 두살되신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어머니에게 "곱다"는 말은 병들지 않거나, 잘 먹고 잘 사는 뜻이 아니라 평생 살아오면서 가졌던 신념을 배반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젊었을 때 권력을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이들이 다 늙어 수구세력에 빌붙어 "빨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또 일제식민지 때 3.1운동을 주도했던 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민족과 신념을 배반하고 친일부역자가 된 이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평생 올곧음을 유지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평생 올곧음을 지키며 살다가 가는 이들 역시 적지 않습니다. 2013년 새해들어 며칠새 우리는 올곧음을 평생 지키며 생명을 놓은 두 분이 있습니다. '생명농부'로 잘 알려진 원경선 풀무원농장 원장과 교회 연합·일치 운동과 사회운동에 헌신해 온 오재식 전 참여연대 창립대표입니다.

원 전 원장은 1914년생이니 우리나라로 올해 100세입니다. 풀무원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1955년에 경기도 부천의 황무지 3만3000여㎡(1만평)를 개간해 풀무원농장을 만들었습니다. '풀무원'은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어 '풀무질'을 통해 철기구로 거듭나듯이 세상이 버린 오갈데 없는 이들을 가장 쓸모있는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특히 1976년 경기도 양주로 농장을 옮긴 후 '생명존중'과 '이웃사랑'의 정신을 바탕으로 국내 최초로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을 시작하면서 한국 최초의 유기농민단체 '정농회'를 설립했습니다. 사람들 원 전 원장을 '유기농업의 아버지'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원 전 원장은 자녀들도 농장식구들과 함께 일하고, 한솥밥을 먹게했습니다. 슬하 자녀 중 원혜영 민주당 의원이 장남입니다.

원 전 원장을 개인적으로 만난 것이 1994년 7월 풀무원에서 열렸던 한국국제기아대책 훈련때입니다. 딱 30년 전으로 나이가 일흔 살이었습니다. 그 때도 흐름한 옷을 입고 삽과 괭이로 농삿일을 하던 원 전 원장 모습이 눈에 아련합니다.

원 전 원장 같으면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으면서 환경운동과 생명운동, 평화운동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원 전 원장은 몸에 밴 올곧음을 끝까지 지켰고, 우리 어머니 말씀처럼 곱게 늙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얼마나 올곧은 삶을 살았는지 한 일화는 지금도 유명합니다.

1961년부터 이사장을 맡아온 열린 교육'으로 유명한 경남 거창고등학교는 군사정권시절 교육계와 마찰을 빚으며 3번이나 문을 닫을 뻔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그는 "타협하느니 차라리 학교 문을 닫는 것이 인격적으로 바른 교육이 된다."며 버텼다고 풀무원은 전합니다. 목을 내놓을지라도 자신의 신념은 내놓지 않겠다는 원경선의 올곧음은 과거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싸웠다는 것 하나로 자랑하는 이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교회연합과 사회운동에 몸바치다가 지난 3일 세상을 뜬 오재식 박사(81세)는 1933년 제주도 추자도에 태어났습니다. 그가 살아온 삶을 보면 한국YMCA전국연맹 대학생부 간사·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총무·교회협 선교훈련원장·세계교회협의회 개발국장, 참여연대 창립대표·한국 월드비전 회장·대북지원민간단체협의회 초대회장·아시아교육연구원 원장 등을 지냈습니다.

오 전 박사는 "늘 현장이 나를 불러 빨려 들어가는 신비한 경험의 나날이었다"고 했습니다. 사회운동가 답게 '말'이 아닌 '현장'에서 자신의 삶을 녹인 것입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김근상 회장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발인예배 설교에서 "살아생전 오 박사는 '현장을 떠난 하나님나라운동은 공허하다'고 했다. 그는 관념이 아닌 공포·불안·빈곤·고통 등이 있는 구체적인 현장에서 살며 하나님나라 운동에 앞장섰다"고 말했다고 <뉴스앤조이>는 전했습니다.

새해 들어 연거푸 두 어른을 떠나보냈습니다. 원경선과 오재식은 자기 신념을 배반하지 않고 평생 올곧게 살다가 육신을 놓았습니다. 이렇게 가는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 나라는 사람답게 사는 사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태그:#원경선, #오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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