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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김성주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김성주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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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일 김성주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을 인터뷰하면서 기자는 "솔직히, MCM을 싫어한다"고 했다. MCM은 김 위원장이 회장으로 있는 성주그룹을 대표하고 김 위원장의 성공을 상징하는 패션 브랜드다.

기자가 MCM이란 브랜드를 알게 된 건, 대학교에 다닐 때 두 살 적은 여자 친구가 백화점에 데려가더니 검은색 가죽에 금색 쇳조각이 줄줄이 박힌 배낭이 맘에 든다고 '강조'하면서부터다. 비싸서 못 사줬고, 헤어졌다. MCM은 아무 죄가 없지만 그 브랜드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 없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김 위원장은 단번에 "잘 헤어졌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남자친구에게 그런 걸 사달라고 하는 여성은 나도 싫다"고 했다. 재벌집 막내딸로 태어나 밑바닥에서 기업을 일으킨 이력과 당시 인터뷰에서도 확인됐지만, 김 위원장은 '한국 여성이 더 강해지고 독립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여성이 강해져야 한다'는 김 위원장의 지론은 "여성도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길을 확대해서 극기와 지도력을 배우게 하자"는 주장에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여성 강화론'은 자신이 '그레이스 언니'라고 부르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 대해서만큼은 예외인 듯하다.

27세 성인 박근혜가 소녀 가장인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여야 대선후보 첫 TV토론에서 답변 준비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여야 대선후보 첫 TV토론에서 답변 준비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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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박 후보가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에게서 받은 6억 원에 대해 김 위원장은 '소녀 가장이 받은 돈'이라 두둔했다. (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그분(박근혜)이 정말 아버지, 어머니를 비명에 잃으시고 동생들을 데리고 길바닥에 나 앉은 거예요. 그때 소년소녀가장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의 말은 "당시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도 그렇게 흉탄에 돌아가시고 나서 어린 동생들과 살 길이 막막한 상황이었다"고 한 박 후보 말의 연장선상에 있다. '생계가 어려우니 돈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그러나 사실관계를 대충만 따져봐도 김 위원장의 말은 최대한 박 후보에 유리하게 윤색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길바닥에 나 앉았다'고 할 상황이 아니다. 박근혜·근영 자매는 5·16 이전에 살던 서울 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대지 99평에 건평 39평의 단층 기와집이다.

당시 박 후보는 27세, 동생 박근영(박서영으로 개명)은 25세, 막내 박지만은 21세였다. 3남매가 모두 성인이었고, 박근영은 서울대 음대를 졸업했고, 박지만은 등록금도 필요 없는 육군사관학교 생도였다. 이미 성인이 된 3남매를 소년소녀가장으로 부르는 경우는 없다.

한국 여성들의 나약함을 질타하는 김 위원장의 지론과, 재벌인 집안과의 관계도 끊긴 상태에서 밑바닥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기업을 일으킨 김 위원장의 인생역정을 감안하면, 박 후보가 6억 원을 덥석 받은 걸 옹호하고 나설 입장은 아니다. 김 위원장의 인생역정과는 정반대의 길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 후보가 받은 돈은 노력의 대가가 아니었고, 1979년 청와대를 나온 박 후보는 18년 동안 스스로 생계를 개척하기는커녕 칩거하며 어떤 직업에도 종사하지 않았다.

'금고 속 6억 원' 정당화, 투명성 강조하는 기업인이 할 일인가?

지난 10월 12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국민행복선대위 임명장 수여식에서 박근혜 대선후보가 김성주 공동중앙선대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지난 10월 12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국민행복선대위 임명장 수여식에서 박근혜 대선후보가 김성주 공동중앙선대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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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성을 기업 운영의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김 위원장이 '전두환이 준 6억 원'을 비호하는 것도 모순이다.

박 후보가 1979년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으로부터 받은 돈은 원출처가 비정상적인 '검은돈'일 가능성이 높다. 박 후보가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는 돈이라고 해서 받았다'고 했지만, 대통령이 청와대 안 금고에, 현재 가치로 몇십 억이나 되는 돈을 쌓아둔 걸 정상적인 정부 예산에서 나왔다고 보기 어렵다. 정상적인 돈이라도 문제다. 법적으로 지급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2000년 펴낸 김 위원장의 저서에는 관행처럼 굳어진 뇌물과 리베이트를 근절한 게 사업 성공의 한 요인이었고, 그런 관행을 없애야 한국이 발전할 거란 얘기가 수차례 강조돼 있다. 아무리 박 후보를 비호하고 싶어도 투명성을 강조하는 기업인이라면 박 후보가 청와대 금고 속 6억 원을 받은 걸 '생계비용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치부하는 건 모순이다.

김 위원장이 항상 "나는 종군하러 왔고, 봉사하고 물러날 거다"라는 말을 강조한다. 정치에 욕심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 김 위원장은 박 후보를 찬양·비호의 최일선에 서 있다. 그러면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적어도 평소 자신의 지론과 신념, 사실관계와 논리에는 어긋나지 않게 해야 '정치의용군'이라는 자신의 말에 대한 의심을 떨쳐낼 수 있다는 얘기다.


태그:#김성주, #박근혜, #6억원, #소녀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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