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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사주명리학을 만나다
▲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인문학, 사주명리학을 만나다
ⓒ 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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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이젠 사주명리학에까지 손을 뻗쳤다. 고전인 <열하일기>를 통해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펼쳐 보이고, 공부와 사랑과 돈의 달인이 되기 위해서 고전 읽기를 강조해오던 고미숙. 그가 <동의보감>으로 몸과 우주의 관계성과 비전을 제시하더니,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통해 사주명리학과 인문학과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사실 사주명리학은 고전평론가로서 다루기에는 쉽지 않은 주제이다. 학자가 자칫 비학문적 운명론에 빠졌다고 오해를 불러들이거나, 고전의 품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자기 검열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미숙은 정면 돌파한다. 2011년 가을에 출간한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의 '짝꿍'으로 명리학 해설서인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동의보감>의 키워드가 '몸'이라면, 이 책은 '운명'이라고 했다. 몸이 밟아가는 삶의 리듬이 운명이고, 운명의 무대는 어디까지나 몸이라는 것인데, 이는 몸과 운명이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며, 몸이 우주와 자연의 소산물이므로, 결국 운명도 우주와 자연의 비전과 맞물리는 지점에 있다는 것일 게다.

고미숙은 책의 입구에서 남대문(숭례문) 화재 사건을 슬쩍 언급한다. 화재가 난 해인 무자년(戊子年)은 운기상 '불의 해'이고, 남대문의 남쪽은 오행상 불(火)을 의미하는데, 이 우연의 일치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 해에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100만 명이 거리로 나와서 촛불을 켰으며, 그해 겨울엔 용산참사가 벌어져, '불로 시작해서 불로 마친 해'가 2008년이었다.

그런데 그 많던 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렇다! 2008년 이후에 세상이 더 나아졌다는 아무런 징표가 없었는데도 더 이상 불은 타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우리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 걸까? 우리는 얼마나 무지한 걸까?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모르는가가 화두인 셈이다.

"오직 모를 뿐!"

고미숙은 사주명리학을 미신이나 신비로 간주하는 습속에 대해 단호하게 거부한다. 음양오행이나 육십갑자를 무속인이나 도인들의 전유물로 여기거나, 신비주의적 외피를 씌워서 지식의 범주에서 밀어내려는 의식 말이다. 신비이거나 미신이거나 모두 폄하와 거부감의 표현인데 이러한 표상 이면에 만연하는 은밀한 거래 또한 넘쳐난다.

총선을 치르고 대선을 앞둔 현재, 역술가를 찾지 않은 정치인이 얼마나 될까? 거의 모든 재벌들이 전용 역술가를 거느리고 있다는데, 이와 같이 공적인 담론에서는 밀어내 놓고서, 사적인 유통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진보 진영에선 명리학을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함으로써 동양 고전의 지혜와 영적 탐구엔 무관심하거나 무지하게 되었다고 안타까워한다.

사주명리학엔 사주팔자와 음양오행, 천간지지(육십갑자), 지장간, 용신, 그리고 십신과 육친법 등, 다소 전문적인 용어들과 개념들이 등장하여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혹 공포감을 줄지 모르겠지만, 이런 용어와 개념 이해를 차치하고, 내가 이 책을 읽고서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받아들인 것이 첫째는 '자연(천지, 우주)'이고, 둘째는 '관계'였다.

말하자면 우리 인간의 존재가 우주 자연의 운행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란 우주의 운행과 자연의 흐름, 천지의 상응 관계 속에서 태어나며, 태어난 그 시점에 누구나 부여받은 4개의 기둥인 사주(四柱, 연월일시)가 있고, 그 연월일시 각 기둥에 해당되는 두 개의 천간과 지지가 붙어서 여덟 개의 글자, 즉 팔자(八字)를 가지는 것이다. 즉, 어느 해에, 어느 계절에, 어느 날에, 어느 시간에 태어나느냐가 그 사람의 기질과 성향과 삶의 방향성을 결정한다는 이치다.

여름날 한낮에 태어난 사람은 그 기질에 불의 요소가 많고, 가을이나 겨울밤에 태어난 사람은 물의 기운을 내재하게 된다. 불은 발산하는 성질이라 불 기운이 많은 사람은 활동적이나 뒷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을 것이고, 물 기운이 많은 사람은 수렴하는 성향이라 덜 활동적이나 집중하고 분명할 것이다. 이 둘 사이에는 우열과 서열이 없다. 다만 다를 뿐이다.

춘하추동 사계절의 순환도 인간의 생로병사와 하나로 겹치며, 밤과 낮의 변화도 음양의 변화와 일치한다고 할 때, 결국 사주팔자는 우리가 천지자연과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고, 사람 사람마다에게 하늘이 내려준 고유한 카드이며, 바코드인 것이다. 만약 이렇게 자연의 순환과 인간의 운명이 이어져 있지 않다면 그런 사람은 외계인이거나 상상 속의 존재일 터.

흔히 사람들은 영웅은 하늘이 낸다고 하고, 대통령도 하늘이 낸다고 말을 하는데, 이러한 말들이 가지고 있는 속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사실은 대통령만, 영웅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하늘이 낸 존재들이다. 누구나 하늘로 대표되는 우주 자연과 교통하며 세상에 났으며, 누구나 평등하게 여덟 개의 카드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특별한 존재라고 해서 아홉 자, 열자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또 하나의 핵심은 '관계'이다. '관계가 존재를 선행한다.'는 선언이 그것이다. 음양과 오행 자체가 관계의 산물이다. 어떤 존재도 그 자체로 고유하게, 독립적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음과 양이 따로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며 관계하고 있으며, 음 속에 양을, 양 속에 음을 품고 있다. 태극기의 태극 문양을 보면 알 것이다. 동지와 하지를 생각하면 알 것이다.

'목화토금수' 오행 역시 상생 상극의 관계성 속에서 설명할 수 있다. 토(土)는 바로 뒤에 오는 화(火)와 금(金) 하고는 상생이지만, 하나 건너에 있는 목(木)과 수(水)하고는 상극이다. 모든 오행이 서로 물고 물리는 상생 상극의 변주 속에 관계하고 운행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상생은 좋은 것이고 상극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은 전형적인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다.

애초에 좋은 팔자, 나쁜 팔자가 없으며. 음양오행에선 근본적으로 선악이 없다. 상생성이 강한 팔자는 무난하지만 성사될 일이 부족하고, 상극성이 강한 팔자는 고달프지만 일을 이룬다. 나를 어떤 관계 속에 배치하느냐, 그리하여 내게 부족한 것을 어떻게 보완하고, 내게 강한 것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나의 운명을 사랑하라!'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는 바로 이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이 말은 곧 혁명과 구도의 언사이다. 운명에 대한 사랑! 어떤 악조건에서도 나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버리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떤 권력도 그런 존재를 회유하거나 꺾을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자기 운명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내 명(命)을 '운전'할 수 있다. 사주와 팔자로 변주할 내 운명의 해석을 전적으로 외부에 맡기는 것이야말로 곧 숙명론임을 고미숙은 힘주어 말한다.

자, 이제 모두 자기 팔자를 뽑아보자. 그 속에서 우주와 삶의 비전을 찾아보자. 오, 이런! 내게 상극이 되는 오행이 4개나 있다니! 고달픈 팔자여! 아니 고마운 팔자여! 번뇌가 곧 반야이며, 위기가 곧 기회이니, 나는 단련될 것이다. …근데, 이 책 서평하기 참으로 힘들구나!

덧붙이는 글 |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고미숙 씀, 북드라망 펴냄, 2012년 8월, 280쪽, 1만3000원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북드라망(2012)


태그:#사주 팔자, #운명, #음양오행, #상생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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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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