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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 책겉그림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 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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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주류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힘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죠. 우리를 압제했던 일본제국에 의해서, 또 미국의 협력을 이끌어 낸 이승만 정권에 의해서 그리고 박정희 정권에 의해서 말이죠.

하지만 지금까지의 세상은 보이는 주류에 의해서만 이끌려 온 게 아니죠. 일본제국 시대에도 윤봉길 의사와 같은 분들에 의해서, 이승만 정권 시대에는 김구 선생과 같은 분들에 의해서, 또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장준하 선생과 같은 분들에 의해서 그 정신세계를 지켜왔죠.

시절이 그토록 수상하던 시절에 또 한 사람의 정신세계가 있죠. 이른바 함석헌 선생이 그분이죠. 그분이 그토록 강조하고 또 강조했던 게 '씨알의 소리'였죠. 억압받고 고통받는 민중 곧 들풀의 소리 말이죠. 그가 의지했던 하나님의 실은 민중이 당한 고난의 역사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믿었죠.

그런데 그토록 올곧은 정신세계를 구현했던 그를 두고서 말들이 많습니다. 이른바 함석헌 선생을 오해하는 분들이 것이죠. 그를 두고 어떤 분은 함석헌 선생을 '오리엔탈리스트'로 매도하기도 하고, 패배주의에 빠졌다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죠.

박재순의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은 그들의 잘못된 생각들을 바르게 잡아주고자 펴낸 책입니다. 물론 그는 지난 20년 동안 함석헌 선생에 관해 써 온 글들을 이번에 한 데 엮은 것이죠. 1970년에 처음 함석헌 선생을 만난 이후, 그는 선생이 명동 가톨릭 여학생회관에서 성경을 강의할 때 빠짐없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1976년 봄에는 그가 수술할 때에 함석헌 선생이 직접 병원을 찾아와 기도해 주었다고 하죠. 인연이 참 깊은 것 같습니다.

"유교적 목민관의 관점에서 민본주의에 머물렀던 다산은 역사와 사회를 변혁하는 운동적 주체로 민중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그의 민본․애민사상은 민을 사랑과 보살핌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민을 나라와 역사의 주인과 주체로 섬기고 받들었던 함석헌의 민주(씨알) 사상과 구별된다."(56쪽)

다산 정약용의 사상과 함석헌의 사상을 비교한 대목입니다. 박재순은 정약용의 사상이 개인의 도덕적 주체성과 과학적 사고를 강조하는 것이라면, 함석헌의 사상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으로서 동서양을 회통(會通)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하죠. 그야말로 세계를 하나로 대통합했다는 뜻이겠죠.

그가 그토록 동서양의 사상을 대통합할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그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갇혀 있지 않고 우물 밖 드넓은 세상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를 견지할 수 있었을까요? 박재순은 무엇보다도 함석헌 선생이 평안북도 출신이라는 바탕이 그 삶을 촉발시켰고, 또한 그가 감옥에 있으면서 읽은 많은 동서양 경전들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이야기하죠.

"씨알은 '나'와 하나님의 역동적 관계, 긴장된 일치를 나타낸다. 씨알이라는 말 자체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알'에 대한 함석헌의 설명에서 이것이 잘 드러난다. '알'에서 'o'은 극대(極大) 혹은 초월적 하늘을 표시하는 것이고, '․'은 극소(極小) 혹은 내재적 하늘, 곧 자아(自我)를 표시하는 것이며, 'ㄹ'은 활동하는 생명의 표시입니다."(99쪽)

달리 말해 함석헌 선생이 말한 '씨알'이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생명을 뜻하는 말이자, 곧 민족의 기운을 뜻하는 말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늘과 이 땅을 향한 연결고리가 그것이란 뜻이겠죠. 또한 그것은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움직이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요.

다만 박재순은 예수님께서 이끄신 하나님 나라의 운동과 함석헌 선생이 펼친 씨알의 운동력에 대해서는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민중들에게 강조한 믿음은 수동적이라는 게 그것이죠. 그에 비해 함석헌 선생이 강조한 믿음은 무엇보다도 주체적이고 또 이성적이란 설명이 그것입니다.

"예수는 '하늘나라가 온다'라고 하거나, '하늘나라에 들어가라'라는 말을 할 뿐 하늘나라를 이루어가라는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이로써 기독교인들은 역사와 사회에서 수동적인 자리에 머물게 되었다. 민중이 역사와 사회를 이루어가는 주체이며 하나님의 일동무라는 함석헌의 씨알사상 같은 주체적 사상이 복음서에는 빠져 있다."(264쪽)

어찌 보면 예리한 지적 같습니다. 그런데 박재순은 그런 제약이 예수님의 제약이라기보다는 시대와 역사의 제약이라고 평가하죠. 하지만 그 부분을 예수님께서는 부활이라는 사건을 통해 풀어헤치기도 하셨죠.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 책이 어떠한 평가를 내리진 않고 있죠. 그저 예수님께서 주도하셨던 하나님 나라를 씨알의 운동, 곧 민중운동으로만 바라볼 뿐입니다.

지금의 정치운동, 이른바 민중운동은 함석헌 선생과 같은 시대적인 인물을 통해도 주도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시절이 수상했던 때는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나서서 정신세계를 이끌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씨알들이 그 주체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만 봐도 더욱 명확해지겠죠. 과연 보이지 않는 씨알들이 어떻게 이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지, 함석헌 선생의 철학과 사상을 통해 깊이 성찰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반양장)

박재순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2014)


태그:#박재순의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씨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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