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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비공덕회의 장학금을 받고 있는 네팔 소년 가장 사빈 당이(Sabin Dangi)
 한국자비공덕회의 장학금을 받고 있는 네팔 소년 가장 사빈 당이(Sabin Dangi)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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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소년가장 사빈이의 사연

"저는 두 어린 누이와 병든 어머니 함께 살고 있는 사빈 당이(Sabin Dangi·사진)라고 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셨고, 어머니는 중풍을 앓고 있어 짧은 거리도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저희들은 지붕에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많은 비가 새들어오는 구멍 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생활비를 버느라 저희 두 누이동생들은 정부의무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학업을 계속하고 싶다는 저의 희망을 받아들여 저는 2012년도부터 한국 자비공덕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그 장학금으로 저는 책과 종이, 연필 등을 구하고 생활에도 많은 도움이 되어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한국 자비공덕회의 장학금은 저로 하여금 인생의 목표를 충실하게 하고, 굳은 결심을 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저의 목표는 궁핍한 가족들을 위하여 분투하며 살아가는 강한 남자가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성장을 하여 성공을 하면 저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가난한 사람들이 기초적인 생활을 하는데 꼭 필요한 기금을 설립하고자 합니다. 저는 결코 저만의 이익을 위한 목표를 갖지 않겠습니다. 저는 더욱 열심히 노력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허덕이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삶을 살지 않겠습니다……."

네팔 동부 칸첸중가 기슭에 살고 있는 사빈 당이 학생으로부터 온 편지
 네팔 동부 칸첸중가 기슭에 살고 있는 사빈 당이 학생으로부터 온 편지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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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전 10시, 북한산 자락 수유리 '국립4·19민주묘지' 옆 작은 암자에는 자비공덕회 회원 30여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남을 위한 기도법회를 열고 있었다. 이날 법회에서는 자비공덕회에서 후원하고 있는 네팔 동부 칸첸중가 기슭에 위치한 버드러칼리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로부터 온 '감사편지' 내용을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장학금을 받고있는 30통에 달하는 학생들의 가슴 뭉클한 사연이 담긴 편지를 하나하나 읽어 갈 때마다 회원들은 진한 감동을 받았다. 특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중풍을 않고 있는 어머니와 두 누이동생을 책임지며 소년 가장으로 어려움을 딛고 먼 거리를 걸어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 사빈 당이(Sabin Dangi)라는 학생의 사연은 우리 모두를 눈물짓게 하고 말았다.

고등학교 2학년생인 사빈이는 버드러칼리 학교에서 11.9km나 떨어진 저로파니(Juropani)라는 마을에 살고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된 그는 이웃 고을인 코하바라(Kohabara)에 위치한 버드러칼리 학교에서는 한국에서 보내온 장학금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2011년 말 그는 버드러칼리 한국자비공덕회 장학생 선정위원회에 자신의 처지를 기록하여 장학생 수혜 신청을 냈다. 버드러칼리위원회에서 그를 장학생 대상으로 선발하여 그의 신청서를 한국의 자비공덕회에 보냈다. 한국자비공덕회에 접수된 그의 신상명세는 다음과 같다. 

- 이름 : Sabin Dangi, 1993년 9월 5일생, 남자
- 신분 : 체트리(Chhatri)
- 학년 : 9학년(우리나라 고등학교 2학년과정)
- 가족 : 아버지는 일직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장애인이며, 두 여동생이 있음.
- 경제사정 : 농사를 짓고 있으나 경작할 땅이 없고, 오두막(Hut)에서 살고 있으며, 연간 수입 은 70$ 수준임. 아무도 그들을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음.

사빈이의 집에서 학교까지는 11.9km로 걸어서 2시간이 
넘는 거리로 비가 오면 길이 끊겨 학교에 가기도 힘들다.
 사빈이의 집에서 학교까지는 11.9km로 걸어서 2시간이 넘는 거리로 비가 오면 길이 끊겨 학교에 가기도 힘들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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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비공덕회는 그의 신청을 받아들여 사빈이를 2012년도 장학금 지급 대상자로 결정했다. 마침내 그는 2012년도부터 장학금을 받아 그의 희망대로 다시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집에서 12km나 떨어진 먼 거리에서 매일 2시간도 넘게 걸어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 비포장도로인 데다 비가 많이 올 때는 길이 막히거나 끊겨 학교에 갈 수 없는 날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소년 가장인 그는 어려운 가정을 돌보며 희망의 꿈을 안고 학교에 다시 다닐 수 있게 된 것을 무척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빈이의 성적은 평균 76점으로 상위권에 속해 있다.

이날 기도 법회에 참석한 회원들은 사빈이의 간절한 소식을 듣고, 즉석에서 사빈이 돕기 위한 특별 성금이 자발적으로 모아졌다. 가난한 가족을 위하여 분투하며 살아가겠다는 소년가장의 굳은 마음, 그가 앞으로 성공을 하면 자기처럼 가난에 처해있는 학생들을 위하여 장학기금을 설립하고, 절대적으로 궁핍한 가정을 위하여 최소한 기초적으로 필요한 생활비를 채워주는 기금을 설립하겠다는 어린 소년의 갸륵한 마음이 모두의 심금을 울렸다.

즉석에서 소년가장 사빈이 돕기 성금이 모아지기도...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결코 비관하지 않고, 그가 성공을 하면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남을 돕는 일을 하겠다는 소년가장의 꿈은 자비공덕회가 추구하는 일이기도 했기에 모두가 깊은 공감을 하게 되었다. 사실 자비공덕회 회원들도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기에 사빈이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간절했다.

사빈이를 위해 자전거 1대를 선물하겠다는 사람, 사빈이의 누이동생들이 입을 옷을 보내주겠다는 사람도 나왔다. 그리고 구멍이 숭숭 뚫린 사빈이의 집을 수리해주자며 십시일반 조금씩 성금을 내서 50만 원의 집수리 자금도 모여졌다. 물론 이 돈으로는 사빈이의 집을 수리하는데 턱없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빈이를 돕고자 하는 회원들의 뜨거운 정성은 그에게 큰 용기를 줄 것이다.

마침 사빈이가 살고 있는 곳이 고향인 네팔관광청 한국사무소장인 케이피 시토울나(K.P Sitoula) 씨의 처제가 이번 10월 1일 날 사빈이가 살고 있는 네팔 현지 고향에 가게 되어 그편으로 모아진 선물과 성금을 사빈이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한국의 자비공덕회에서 지급하는 장학금은 학생 1인당 한 달에 1000루피(약 13,000원)의 작은 돈이다. 그들은 그 돈으로 책, 종이, 연필, 유니폼 등을 사고 교통비 등 최소한의 생활비에 충당하며 학교에 다닐 수 있다.

네팔은 초·중·고등학교까지는 정부의무교육으로 학비 부담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 가난하여 학용품 등을 살 수 없고, 기초적인 생계비를 버느라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많다. 따라서 이들에게 1000루피는 한 달간 생활을 할 수 있는 큰돈이다.

히말라야 기슭으로 찾아간 작은 사랑의 손길

기초적인 최소한의 생활비를 버느라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네팔의 순박한 어린이들. 한 달에 1000루피(약 13,000원)이면 네팔 어린이 1명이 학교에 다닐 수 있다.
 기초적인 최소한의 생활비를 버느라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네팔의 순박한 어린이들. 한 달에 1000루피(약 13,000원)이면 네팔 어린이 1명이 학교에 다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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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러칼리 학교는 네팔 동부 히말라야 칸첸중가 기슭 오지에 위치한 초중고 전문대학교 과정까지 있는 학교다. 자비공덕회는 이 지역 어린이들 중 공부는 하고 싶으나 가정환경이 어려워 생활비를 버느라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선발하여 장학금을 전달해주고 있다. 2009년부터 남을 위해 기도를 하며 희망을 담은 작은 사랑의 손길이 국경을 넘어 히말라야 기슭 오지마을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자비공덕회(회장 석명조 스님: http://cafe.naver.com/buddhajb)'는 10년 째 심장병을 앓고 있는 명조 스님과 스님을 돌보고 있는 지상스님의 원력으로 세워진 작은 봉사단체다. 두 스님은 수유리 북한산 자락에 가정집을 개조하여 법당 겸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작은 암자에 기거하고 있다. 스님은 법당이나 종각을 짓는 불사보다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지난 2009년 6월 '남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이란 취지로 자비공덕회를 설립하였다.  

스님은 평생 신도들이 준 시주 밥만 축내고 살 수 없다며, 법당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비좁은 암자에서 심장병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실천을 하겠다며 자비공덕회를 창립했다. 스님의 갸륵한 자비정신에 감동한 20여 명의 신도들이 함께 동참을 했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 자비공덕회를 설립한 향운사 명조, 지상 두 스님.  명조스님(좌)은 10년째 심장병을 앓고 있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 자비공덕회를 설립한 향운사 명조, 지상 두 스님. 명조스님(좌)은 10년째 심장병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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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은 매일아침 집에서 남을 위해 기도하며 스님이 나누어 준 <보시함>에 작지만 정성껏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성금을 모은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그 보시함을 털어 수유리 암자에 모여 남을 위한 기도 법회를 갖고 있다. 때로는 어린이들이 돼지저금통을 털어서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스님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을 많은 돈을 모아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작지만 성금이 모여지는 대로 즉시 실행을 하자고 했다. 작은 돈으로 무엇부터 시작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첫 사업으로 네팔 어린이 학자금 후원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심장병 환자 돕기 등 국내의 어려운 이웃돕기도 생각해보았으나 불과 20여 명이 모은 작은 성금으로는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 그런데 마침 네팔관광청 한국사무소장인 케이피 시토울나 씨와 인연이 되어 알아보니, 한 달에 1만 원 정도를 후원하면 네팔의 어린이 1명이 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자비공덕회는 얼마 안 되는 성금으로 우선 네팔 어린이 돕기부터 실천하기로 결정했다. 

최초 12명에서 80명으로 늘어난 '희망의 씨앗'

자비공덕회는 2010년 1월부터 최초로 12명의 네팔 어린이를 선정하여 이 어린이들이 초중고 전문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2년 간 후원하기로 결정했다. 12명의 어린이는 자비공덕회가 네팔에 심은 최초의 '희망의 씨앗'이었다.

네팔의 후원대상 어린이선정은 케이피 시토울나 씨가 네팔 현지와 연결하여 수고를 해주었다. 그는 네팔 동부 칸첸중가 기슭 버드러칼리학교 출신으로 그 학교의 교장 선생님과 초중등학교 동기동창생으로 현지사정을 잘 알고 있어 장학생선발에 큰 역할을 해주었다. 네팔 현지에서는 학교장과 지역주민 6명의 장학생선발 위원회를 만들어 매우 공정하게 장학생을 선발하고 있으며, 장학금관리도 철저하게 하고 있다.

창고처럼 허름한 네팔 칸첸중가 기슭에 위치한 버드라칼리 학교
 창고처럼 허름한 네팔 칸첸중가 기슭에 위치한 버드라칼리 학교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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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기금이 워낙 적어 10살 이하의 어린이들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남을 위해 기도를 하며 모은 작은 성금으로 네팔 어린이들이 공부할 수 있다는 소식에 공감을 한 사람들이 하나 둘 동참을 하기 시작하여 회원수도 100여 명(2012년 9월 현재 95명)으로 늘어났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서도, 대서양과 인도양을 건너 유럽과 호주에서도 몇 분의 교포들도 정성어린 성금을 보내주었다.

기금이 조금씩 더 모아지자 후원학생 수도 매년 하나 둘 더 늘리고, 장학금 수혜범위도 점차 초중고 전문대학생까지 넓혔다. 일단 장학생으로 선발된 학생들은 전문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하여 후원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초등학교 1학년생으로 선발된 어린이는 12년간을 계속하여 후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장갛금 후원을 단기성으로 그치면 그 효과가 적으므로 후원대상자로 선발된 학생들이 전문학교를 졸업하여 사회에 진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후원을 해주자는 것이 자비공덕회 회원들의 의지이다. 다만 전문대학교는 1000루피의 생활비 외에 1년에도 10만 원 정도의 학비를 더 부담해야 한다.

최초로 후원을 한 12명의 '희망의 씨앗' 어린이들과 함께. 지난 2010년 10월 버드러러칼리 학교를 방문한 자비공덕회 회원들
 최초로 후원을 한 12명의 '희망의 씨앗' 어린이들과 함께. 지난 2010년 10월 버드러러칼리 학교를 방문한 자비공덕회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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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 2010년 10월, 지상스님을 비롯하여 자비공덕회 회원 20명은 불교 성지순례 여행을 하던 중 네팔 현지 버드러칼리학교를 방문했다. 현지학교 실태도 파악할 겸, 직접 후원학생들과 가족들을 만나보고 생활상태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한국의 자비공덕회 회원들이 학교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마을입구에서부터 풍악을 울리며 대대적으로 환영을 했다. 창고처럼 지어진 학교 운동장에 입추에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역 라디오 방송이 생중계를 하는 가운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뜨거운 환영을 받은 회원들은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장학금후원을 받기를 원하는 네팔의 많은 어린이들
 장학금후원을 받기를 원하는 네팔의 많은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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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현재 자비공덕회 장학금 수혜를 받고 있는 '희망의 씨앗'은 80명으로 늘어났다. 3년 전 12명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더 많은 어린이들이 장학금후원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장학금 후원 사업은 한국의 자비공덕회와 네팔 현지학교에서 무보수로 자원봉사하여 관리하고 있다. 때문에 회원들이 모은 성금은 100% 전액을 학생들에게 후원을 할 수가 있다.

"……우리가 처음 이 모임을 시작을 할 때 심은 12명의 '희망의 씨앗'이 80명으로 늘어나다니…… 이제 네팔에 80명의 사랑하는 자식을 갖게 되어 더욱 기쁩니다. 정성으로 성금을 모아주신 여러분께 충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보람과 행복은 진실로 이런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명조스님은 최초에 12명의 어린이를 선정하여 후원할 때에도 네팔에 12명의 자식이 생겼다고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는데, 9월 22일 법회에서도 이제 네팔에 사랑하는 자식이 80명으로 늘어났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법회에 참석한 회원들도 국경을 넘어선 사랑의 손길에 모두 눈시울을 적시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태그:#네팔 어린이 돕기, #자비공덕회, #향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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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여행, 작은 나눔, 영혼이 따뜻한 이야기 등 살맛나는 기사를 발굴해서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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