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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평화대행진 행진하는 사람들
 강정평화대행진 행진하는 사람들
ⓒ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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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월요일 오전 9시. 제주도 서귀포 풍림콘도 앞에 있는 강정마을 축구장에 오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아침부터 강한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다.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행진할 준비를 하고 있다. 행렬의 앞에는 노구의 문정현 신부님이 앞장서셨다.

9시 20분. 이들은 두 개의 팀으로 나뉘어져 각각 동편과 서편으로 향한다. 동진팀에 212명. 서진팀에 215명. 나처럼 사전접수를 하지 않고 현장에서 결합한 사람들도 일부 있다. 지원팀은 강정마을에 남아 행진팀을 위해 밥도 짓고 여러 가지 지원을 준비한다.

바다를 보며 쉬는 사람들
▲ 강정평화대행진 바다를 보며 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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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부터 8월 4일까지 5박 6일 동안, 여름 더위의 가장 절정인 휴가 시즌에 제주도를 두 발로 걷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하여 강정평화대행진단이다. 30일 월요일 전까지 800명 정도가 참가신청을 했다. 6일 동안 전부 걷는 사람들도 있고 일부 구간을 참가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전부 강정마을에서 출발하여, 각각 동진팀과 서진팀으로 나뉘어 제주도를 동쪽과 서쪽으로 걸어서 돈 다음, 6일 토요일에 제주시 탑동광장에서 만난다.

너무 뜨거운 날씨에 어디 시원한 그늘이나 에어컨, 선풍기 앞에만 있고 싶어지는 한여름. 강정마을 주민들과 그곳에서 오랫동안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해온 평화활동가들이 강정평화대행진을 기획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 놀랐다. 도보여행을 해도 숲길 같은 곳으로만 골라 걸을 참인데, 그늘 한 점 없는 아스팔트 위를 일주일 동안 걷게 하겠다니! 그들의 생각은 이거였다. 1만 명이 강정마을을 위해 걷는다면, 해군기지는 막을 수 있다는 것.

전국에서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 '노란 깃발' 들고 걸어요

강정평화대행진 출발
 강정평화대행진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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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도의 서부 중산간 마을에서 태어나 20년을 제주에서 살았고, 지금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닌다. 강정마을은 이번 해군기지 논란이 있는 후에야 몇 차례 가보았다. 강정 앞바다는 정말 아름다웠고, 강정천에서 아이들은 은어 떼처럼 신나게 놀았다.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부지로 선정된 이후, 벌써 5년이 넘었다.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주민들도 있고 반대하는 주민들도 있다. 반대하는 주민들은 벌써 5년째, 생업을 잘 돌보지도 못하면서 반대운동을 해오고 있다. 그 옆을 전국, 전 세계에서 온 평화운동가들이 함께한다.

그러나, 뭐든 시간을 끄는 싸움에는 지치는 법이다. 이번에 제주도에 내려와서 들어보니, 제주도민들은 "어서 찬반갈등을 마무리 짓고, 제주도의 발전을 가져올 '민군복합관광미항'을 진행하자"는 의견이 더 우세하다고 한다. 

나는 서울에서 막 휴가차 내려온 남편과, 제주에 사는 형부를 모시고 서진팀에 합류했다. 월요일 서진팀은 215명이 행진한다. 내 앞에는 정혜신 박사님이 걷고 있었다. 그녀는 뜨거운 햇살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자를 쓰지 않은 채, 환한 미소로 사뿐사뿐 걷는다. 남편은 '해군기지 결사반대'의 노란 깃발을 들었다.

"평화가 길이다"
 "평화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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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어제 제주 서부는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한두 시간을 걷고 중문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휴식. 작은 생수병 한 통을 한번에 마셨다. 부모를 따라 나온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예닐곱 명이다. 아이들의 얼굴도 빨갛게 익었다.

행진이 늦어져, 오후 1시가 넘어 주먹밥과 오이냉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길가 인도의 작은 나무그늘 아래에서 벌러덩 누워 쪽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다.

점심을 먹는 동안, 하와이에서 오신 크리스틴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었다. 하와이에 지어진 군사기지가 하와이 주민들의 삶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었는지 알리고, 아름다운 제주도만은,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으로 남아야 한다고 말하려고 오신 분이다. 하얀 머리의 할머니가 명랑하게 잘 걸으신다.

걸어보면 압니다, 제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평화의 아이들, 종일 잘 걷는다.
 평화의 아이들, 종일 잘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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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냉국을 들이켜며 인사를 나눈 어느 점잖은 신사분은 은행을 다니다가 퇴직하시고 작년에 제주도에 놀러왔다가 집도 한 채 사셨다고 한다. 나중에 아내와 함께 아예 제주로 이사를 올 예정이시라 한다. 그는 벌써 몇 차례 강정마을을 다녀갔다고 한다. 은행 지점장 등을 하는 그의 친구들은 대부분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찬성하기 때문에 이제는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말을 잘 꺼내지 않으신다고 한다.

오후 4시가 넘어도 아스팔트 위를 걷는 일은 정말 덥다. 하루 동안 걸어야 할 구간의 길이는 총 22km. 중간에 오르막길이 나오면 까마득하다. 이제 흐르는 땀은 아예 닦지도 않는다. 무슨 햇볕이 오후 4시가 넘어도 줄어들지를 않는가 싶은 투덜대는 마음이 들다가, 내 바로 앞에 걷고 있는 작은 두 소녀를 보았을 때, 정신이 맑아졌다.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보이는 두 아이는 내내 둘이서 손을 잡고 행렬의 선두에서 조용히 걷는다.

오후 7시 가까이 되어 종착지인 화순 금모래해변에 도착했다. 바로 그곳 화순항에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삼성계열사인 SFD라는 회사가 케이슨을 만드는 곳이다. 우리는 강정 앞바다에 투척하기 위한 케이슨을 만드는 이 회사에 항의하기 위해 공장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공장 인부들이 줄지어 나와서 정문을 지키고 섰다.

화순 SFD 공장 앞에서 공장 출입문을 지키고 선 인부들.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 화순 SFD 공장 앞 화순 SFD 공장 앞에서 공장 출입문을 지키고 선 인부들.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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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는 까만 유니폼을 입은 안전요원이 둘, 민군복합 관광미항을 지으며 제주도에 일자리를 창출하여 지역경제에 이바지 한다더니, 공장 인부들은 대부분 외국인노동자들이다. 그들 앞에서 군사기지가 평화를 위협한다는 말을 해보았자, 그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까? 이국의 땅에 돈벌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를 신기한 듯이 관찰하고, 우리는 그들이 신기해서 봤다.

긴긴 하루를 마무리하고 사람들은 바닷가에 천막을 치고 잔다. 이렇게 닷새를 걷고 마지막 6일째에는 탑동에 모여서 다같이 해군기지 반대를 외칠 것이다. 강정주민들과 우리처럼 전국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외국에서 평화의 염원을 안고 온 이들. 걸어보면 안다. 제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양한 색깔의 제주바다와 검은 현무암 지대, 다양한 꽃과 나무가 무성하여 이 화산섬을 빛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꼭 지키려 한다. 제주의 평화를 말이다.


태그:#강정마을 , #강정평화대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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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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