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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 여아 사망 사건 계기로 응급의료법 개정

꼭 1년 전인 2011년 6월 29일 국회가 여야 합의로 응급의료에관한법률(이하 응급의료법)을 개정하였다. 현 응급의료체계의 후진적인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응급환자를 당직전문의 등이 직접 진료 하도록 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개정한 것이다. 

이는 2010년 대구광역시에서 장중첩증에 걸린 4세 여아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대학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구미시에 있는 병원까지 가서 치료받던 중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현 응급의료시스템의 문제점을 대폭 개선하라는 국민여론과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사건 당시 대구광역시에는 응급의료법에 의해 지정된 응급의료센터가 6개소나 있었으며, 모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당직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어느 곳 하나 지키고 있는 곳이 없었다.

그 이유는 대부분 응급의료센터가 응급환자의 진료를 1, 2년차 전공의한테 일임한 채, 소위 '온콜(on-call)'이라는 관행적인 당직행태를 운영하며 전문의에 의한 비상진료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의 개정은 이와 같은 관행적인 당직제도를 개선하여 살릴 수 있는 응급환자를 살리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입법 취지에 맞게 시행규칙을 마련해야 할 보건복지부는 위급한 생명을 맡긴 응급환자의 처지를 외면하고 의료제공자인 병원과 의사의 의견만을 일방적으로 수용하여 온콜을 당직으로 인정함으로써, 법률의 개정취지를 훼손함은 물론, 국민이 제대로 된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전문의 당직 실태 국민 앞에 밝혀야

응급의료법 개정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비상진료에 필수적인 과목의 전문의 등(전문의와 3,4년차 전공의)이 병원내에 상주하도록 하는 시행규칙안을 6월 27일까지 입법예고했다. 당직의사의 명단을 병원 내에 게시하고 병원 홈페이지에 공개하여 알 권리를 보장하는 규정도 포함하였다.

이에 대해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은 적극 찬성 의견을 밝혔지만, 병원장과 의사들은 반대하고 나섰다. 병원장들은 현실을 무시한 규제라며 응급센터 지정을 반납하겠다고, 전공의들은 과도한 업무가 더욱 가중된다며 반대하였다.

그러자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보건복지부는 병원협회의 공문에 회신을 보내 병원협회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응급환자를 책임질 수 있는 전문의가 병원에 상주하지 않고 '온콜(on-call)' 당직, 즉 인턴이 전공의를 호출하고, 다시 전공의가 전문의를 호출하는 당직체계야말로 응급환자가 의사 오기를 기다리거나 병원을 전전하게 하는 원인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보건복지부가 전문의로 하여금 당직을 서게 할 수 없다는 병원 측의 주장만을 수용한 것은 현실을 무시한 타협에 불과하다. 과연 위반시 과태료 200만 원을 법에 명시했다고 당직 전문의가 "언제든지", "직접" 응급환자를 진료할 수 있을까?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그간 병원 밖에 있는 당직 전문의가 과연 제 시간에 응급실에 도착하여 응급환자를 진료하였는지 그 실태를 정확하게 조사한 결과를 제시하여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무늬만 응급의료센터'가 국민 속여

현재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의해 응급의료기관을 종별로 지정('지역응급의료기관'-'지역응급의료센터'-'권역응급의료센터')하여 높은 응급의료수가와 응급의료관리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응급의료기금까지 지원해 주는 이유는 신뢰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응급진료체계를 갖추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460여 개의 응급의료기관 중, 과연 응급환자나 가족이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응급실은 과연 몇 개나 되는가?

'권역응급의료센터'는 말할 것도 없고 '지역응급의료센터'만이라도 전문의에 의한 응급수술과 집중치료가 즉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전문의의 숫자가 부족하여 당직을 할 수 없는 병원이라면,'지역응급의료센터' 지정을 취소하거나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재지정함으로써 현 138개에 달하는 응급의료센터 중 '무늬만 응급의료센터'인 곳을 과감하게 정비하여야 한다. 국민은 소수라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응급실을 원한다.

세 명 중 한 명에 달하는 '억울한 죽음' 외면 말아야

2011년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응급환자의 예방가능한 사망률이 35%에 달한다고 한다. 예방가능한 사망이라는 말은 환자가 보면 '억울한 죽음'이라는 뜻이다. 국회는 이 억울한 죽음을 막기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연간 2천억 원이 넘는 응급의료기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응급의료법을 개정하였다.

그럼에도 정작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야 할 보건복지부는 늘어난 응급의료기금으로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은 방치한 채 병원 측의 손만 들어 주고 있다. 그동안 응급의료기금을 지원받아 응급실 시설과 장비를 다 갖추게 된 병원들이 이제는 당직 의사인력 확보를 거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응급의료의 질이 드러나지 않는 병원에 헛돈을 쓰지 말고, 응급환자를 잘 보는 병원에 응급의료기금을 과감하게 투자하여 선택과 집중의 효과를 거두어야 한다.

의료 이용자인 시민의 의견, 제대로 반영해야

그간 시행규칙 마련을 위한 일련의 과정에서 보건복지부는 시민의 의견을 들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지난 6월 14일에 있었던 공청회에서는 시민 참여 없이 병원 측의 일방적인 의견만 제시되었으며, 시행규칙을 논하는 자리에서 법개정이 필요하다는 억지 논리만 되풀이 되었다.

보건복지부가 응급의료법 개정 취지에 맞게 스스로 만들어 입법예고한 시행규칙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법을 지키지 않았고, 앞으로도 법을 지킬 수 없으니 법을 완화해 달라는 병원 측의 어이없는 요구를 보건복지부가 그대로 수용한다면, 이는 현재까지의 위법에 면죄부를 내주는 것이며, 보건복지부의 직무유기를 지속하겠다는 것으로 국민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제부터라도 논의를 완전히 공개하여 시민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제 개원하는 19대 국회는 개정된 응급의료법이 행정규칙을 통해 제대로 취지를 살릴지 파악하고 국민의 이해를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응급의료는 국민이 위급상황에서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사회안전망이다. 하지만 응급환자의 처지에서 보면, 전문의가 없는 야간 응급센터는 밤의 뒷골목보다 더 위험한 사각지대라고 할 수도 있다. 

모든 과목의 전문의가 당직을 할 수 없다하더라도 생명을 다루는 최소한의 과목만큼은 전문의가 병원 내에 상시 대기하도록 함으로써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지체 없이 제공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응급센터에 어떤 과목의 당직 전문의가 있는지, 당직 전문의가 누구인지를 응급환자와 가족은 물론 지역사회 시민이 언제든지 알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병원 봐주기에서 벗어나 국민이 '생존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응급의료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기를 요구한다.


태그:#비상진료체계, #응급실 , #야간 딩직 , #당직전문의,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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