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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 6학년 학생들이 기타반주를 하며 영어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4, 5, 6학년 학생들이 기타반주를 하며 영어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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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소규모 학교들 가운데 통폐합 추진학교로 지정된 학교에는 새 학기가 시작되면 거의 해를 거르지 않고 학교를 없앨 것인지 묻는 찬반 의견조사가 진행된다.

교육당국의 꾸준하고 반복적인 시도는 끝내 학부모의 찬성률을 끌어올려 통폐합으로 귀결된다. 충남 예산군에서도 1999년 9개 초등학교가 무더기로 문을 닫은 이후 잠잠하다가 2006년과 2007년에 3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

충남 예산군 신암면에 있는 조림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십수 년째 계속되고 있는 통폐합의 압력에서 자녀들의 학교를 지켜냈다.

교육당국은 통폐합기준의 완화와 강화를 반복하면서 학교를 흔들었다. 조림초는 올해 또 다시 예산군내 통폐합 최우선 대상학교가 됐다. 여느 해보다 강화된 기준으로 통폐합의 의지를 높이고 있는 교육당국. 학교 현장의 분위기는 어떨까?

'통폐합 위기' 조림초... 학부모 만족도 높아

영어챈트를 하며 박수를 치는 학생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발표 내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영어챈트를 하며 박수를 치는 학생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발표 내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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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찾아간 5월 30일, 학교에서는 '영어교과서 외우기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다.

이 학교는 바로 전날 예산읍에서 2명이 전학을 해와 전교생 수가 19명이 됐다. 형제가 있는 가정이 있어 가구수로는 16가구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인데 이날 참석한 학부모는 모두 11명으로 높은 참석률을 보였다. 읍내 학교와 달리 학부모들은 다른 행사에서도 높은 열의를 보인다고 한다.

행사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학생들이 출연해 학년별로 영어 노래와 챈트, 교과서 외워 발표하기가 차례로 진행됐다. 이 학교 학생들은 이날 뿐만 아니라, 다른 행사와 대회에도 참가할 기회가 흔하다. 교실 한칸 크기의 특별실에는 학부모와 교사, 학생 등 30여명이 들어서 활기찬 분위기 속에 행사를 이어갔다.

매일 1시간씩 토크장학생인 원어민교사와 함께 모든 아이들이 학년별로 영어수업을 하기 때문에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아도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해 있다. 아이들은 실수를 하더라도 어른들의 박수를 격려삼아 기죽지 않고 밝은 표정과 큰 목소리로 발표를 마쳤다. 마무리는 방과후수업에서 익힌 기타연주와 영어노래 공연이 장식했다.

학생수가 적으면 교육의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며 통폐합을 권장하는 교육당국의 논리와는 다르게 조림초의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들은 매우 행복해 보였다.

행사가 끝난 뒤 진행된 학부모들의 다과 시간. 학교통폐합에 대해 묻자 격앙된 목소리의 호소와 성토가 쏟아졌다.

"제발 정책을 만드는 분들이 우리 학교에 한번 와보셨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생활을 보면 그런 얘기 못한다. 우리 학교가 얼마나 좋은데, 학생들,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우리 학교만큼 높은 학교 찾기 어려울 거다."

학부모 유혜련씨는 이 학교 방과후 컴퓨터 강사로 일하던 중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의 열정에 반해 4년 전 두 아이를 예산읍의 학교에서 조림초로 전학시켰다.

유씨는 "무엇보다 아이가 학교를 너무 좋아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다른 학교 컴퓨터 수업이 너무 늦어져서 아이와 연락이 되지 않은 채 어둑한 저녁이 됐다. 귀가하지 않아 찾아보니 학교에 있더라. 너무 놀라운게 고학년 형들도 가지 않고 동생과 놀아주며 돌보고 있었다. 정말 기분좋은 충격이었다"라고 실례를 들면서 "우리 학교는 초등학교 때부터 위계질서를 찾는 큰 학교와는 비교도 안 된다. 또 선생님들은 물론, 급식실 조리사님까지 아이들의 특성, 식성 등 부모보다 아이들을 더 잘 안다. 정말 모두가 형제 같고 가족 같은 곳이다. 아이들에게 가장 큰 협박은 '너 그러면 전학시킨다'일 정도다"라며 자랑을 했다.

그 뒤 열렬한 조림초 전도사가 되어 스스로 아파트에 홍보전단지를 붙이고, 아는 학부모들에게 "이렇게 좋은 학교가 있다"며 적극 추천한다.

"현장도 안 와 보고 통폐합이라니..."

조림초는 교장과 학부모, 학생이 수평적 관계를 유지한다. 강신학 교장이 공연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앉기 좋게 의자를 밀어 넣어주고 있다.
 조림초는 교장과 학부모, 학생이 수평적 관계를 유지한다. 강신학 교장이 공연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앉기 좋게 의자를 밀어 넣어주고 있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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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던 다른 학부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산읍에 있는 학교에서 1년 동안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아이를 전학시킨 지 3년째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1학년 때부터 '문제아'로 찍혔지만, 전학하고 나서 선생님들이 긍정적으로 지도해주시니 산만하던 습성도 많이 좋아졌다. '그때 전학을 시키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바로 전날 예산읍내 학교에서 두 아이를 전학시킨 다른 학부모는 "첫째 아이는 쾌활한데, 둘째 아이는 좀 내성적이어서 학교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근데 어제 처음으로 조림초에 다녀와서는 '학교가 너무 재밌고 좋다'면서 내 앞에서 춤을 추더라. 너무 놀랐다"라며 학교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학부모들의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산에서 신암 예림리로 이사를 해 둘째 아이는 졸업을 시키고 셋째 아이가 재학 중이라는 한 아버지는 "학생수가 너무 적어 더 다양한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점, 상급학교에 진학한 뒤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 적은 문제 등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교육청에서 통폐합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한 번씩 흔들리기도 하지만, 그것이 학교를 없애는 결정적 이유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인성교육에서 만족한다. 인성이 돼야 공부도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학구 안에 있는 학부모들부터 생각을 달리해 반드시 우리 학교로 진학하면 좋겠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이 지역의 일부 학부모가 학구를 위반해 예산읍내 학교로 입학하는 것도 교육청의 통폐합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통폐합을 한다고 불안감을 조성하니 작은 학교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되고, 한두 사람이 나가면 학생수가 줄어 또 나가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 교육청이 작은 학교의 복식수업을 해소하고 적극적인 지원책을 편다면 학구위반을 하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항변이다.

그는 또 "우리 학교 아이들이 군 대회, 도 대회에서 여러 가지 상을 두루 받고 있다. 또 읍내 상급학교에 진학해서 그 많은 아이들 중에 성적 상위그룹에 속하는 아이들 예가 여럿이다. 그런데 교육성과가 왜 없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어이없어 했다.

조림초 학생들이 지난 4월과 5월 두 달 동안 받은 대외 수상실적만 해도 10건이 넘는다. 그 가운데에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주는 과학의날 표창과 충청남도교육감이 주는 바른품성상도 포함돼 있다. 그밖에 예산교육지원창 교육장이 주는 각종 군대회 상도 8건에 이른다.

조림초 교문 앞에서 만난 주민은 "학교는 농촌지역의 매우 중요한 기관이자, 수천 명 동문들의 뿌리이고, 아이들의 꿈의 현장이다. 그런데 학교를 없애는 엄청난 일을 결정하면서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학교현장을 방문해 실사도 안 하는 게 말이 되냐"며 교육당국을 비난했다.

학부모들이 프로그램 중간중간 큰 박수와 환한웃음으로 아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학부모들이 프로그램 중간중간 큰 박수와 환한웃음으로 아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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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소규모 학교, #학교통폐합, #조림초등학교, #충남도교육청, #농촌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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