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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토종)민들레. 서양민들레는 꽃받침이 아래를 향하고 줄기도 매끈하다.(2008년 4월, 고양시)
 그냥 (토종)민들레. 서양민들레는 꽃받침이 아래를 향하고 줄기도 매끈하다.(2008년 4월, 고양시)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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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야생화와 사랑을 시작한 후 잊을 만하면 사진을 전송해 꽃 이름을 묻곤 하는 B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토종민들레라며 사진을 올렸다. 토종민들레가 맞긴 맞는 것 같은데, 위에서 꽃을 내려다보고 찍는 등 둥근 모습의 비슷비슷한 사진들만을 올려 정말 토종민들레인지 확인이 쉽지 않다.

"민들레는 꽃의 옆모습을 찍는 것이 중요해요. 가급적이면 토종민들레와 서양 민들레의 옆모습을 각각 찍어 올렸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수시로 오고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민들레 중 키가 작고 꽃송이가 많은 민들레를 찜해, 꽃이 피었을 때의 꽃대 길이와 열매 뭉치(홀씨)가 만들어질 때의 꽃대 길이를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도록 찍으면 좋겠어요."

가까운 산기슭에 있는 흰민들레(하얀민들레)를 찍으러 갈 거라는 B에게 이처럼 특별한 주문을 했다. 토종민들레는 꽃받침이 밑으로 젖혀지지 않지만 서양민들레는 꽃받침이 밑으로 젖혀지는데, 옆모습을 찍어야 둘의 이런 차이, 즉 서로 다른 생태적 특성이 잘 드러나기 때문에 옆모습을 담아볼 것을 제안한 것이다.

민들레들은 낮은 키로 (아래 꽃송이) 꽃이 피나 꽃이 진 후 씨앗을 만들 때는 씨앗을 멀리 퍼트리는데 유리하도록 꽃대를 쑥 키운다. 사진 속 민들레는 서양민들레다.(2007년 4월 고양시에서)
 민들레들은 낮은 키로 (아래 꽃송이) 꽃이 피나 꽃이 진 후 씨앗을 만들 때는 씨앗을 멀리 퍼트리는데 유리하도록 꽃대를 쑥 키운다. 사진 속 민들레는 서양민들레다.(2007년 4월 고양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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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은 꽃을 피우는 데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고 한다. 그러자면 꽃을 피우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다. 키가 크면 꺾일 위험이 많아진다. 그러니 에너지를 낭비하며 꽃대를 키울 필요는 더욱 없다. 때문에 민들레는 땅에 붙다시피 짧은 꽃대로 꽃을 피운다.

하지만 씨앗을 멀리 퍼트리는 데 작은 키는 불리하다. 그래서 꽃이 진 후 열매뭉치를 만들며 씨앗을 멀리 퍼트리는 데 유리하게 꽃대를 쑥 키운다. 2007년과 2008년에 관찰해본 적이 있는데 두 배 이상 키우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B에게 수시로 오갈 수 있는 거리의 민들레를 찜해 꽃대 길이가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사진을 찍어볼 것을 제안한 것.

민들레는 왜 홀씨 꽃대를 키우는 걸까?

B는 어떤 사진들을 찍어 왔을까. 분명한 것은 이런 생태적 특성들을 전혀 모르고 찍을 때와 알고 찍을 때, 보이는 것도 사진도 많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저 예쁘게만 찍은 사진보다 민들레의 이런 생태적 특성을 충분히 살려 찍은 사진이 훨씬 가치가 있음은 물론이다.

민들레만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흔한 제비꽃들은 꽃 모양은 비슷하지만 잎이 저마다 다르다. 이런지라 잎 모양으로 구분한다. 그러니 제비꽃을 찍을 때는 잎을 함께 살려 찍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잎보다 예쁜 꽃송이를 부각시켜 찍기도 한다. 이렇게 찍은 사진으로는 어떤 제비꽃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돌담이나 뜰의 나무줄기 밑에 기다란 주머니 모양의 집을 만들고 먹이가 걸리는 것을 기다리는 거미가 있습니다. 땅거미입니다. 곤충이나 노래기 등이 위를 기어가면 재빨리 뛰어나와서 먹이를 주머니 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주머니 위를 나뭇가지나 나뭇잎으로 건드려 봅시다. 그리고 거미가 어떻게 하나 살펴봅시다. 여름에 참 억새가 나 있는 데에 가 봅시다. 참억새 잎을 주의해서 보면 조그맣게 잎 끝이 돌돌 말린 데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애어리염낭거미의 집일 경우가 많습니다. 앞에서 거미는 보금자리를 만들지 않는다고 했는데 땅거미와 애어리염낭거미 종류는 덫과 보금자리를 겸하고 있는 셈입니다. 애어리염낭거미 암컷은 집 안에 알을 낳고 알에서 깬 새끼가 첫 번째 허물을 벗은 뒤에 새끼에게 먹히고 맙니다. - <자연도감> '거미' 중에서

거미도 마찬가지. '거미' 하면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거미줄을 떠올리기 쉽다. 그래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방사형의 거미줄만 쫒아 다니면 이런 거미줄을 치는 왕거미나 호랑거미, 무당거미, 갈거미 등만 볼 뿐, 다양한 거미들을 만나거나 관찰하지 못하게 된다. 거미줄을 치는 거미들도 있지만 <자연도감>(진선출판사 펴냄)에 의하면 거미줄을 치지 않는 거미가 절반이나 되기 때문이다.

<자연도감>
 <자연도감>
ⓒ 진선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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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뿔가시거미는 거미줄을 치지 않고 젤 뭉치를 외줄의 거미줄 끝에 매달아 먹잇감이 보이면 철퇴마냥 돌려 사냥을 한다. 집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리잡이거미(깡충거미)나 농발거미 역시 거미줄을 치지 않고 파리나 바퀴벌레 등을 찾아다니다가 먹잇감이 보이면 살금살금 다가가 잽싸게 달려들어 낚아챈다.

조릿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거미는 낮표스라소니거미일 가능성이 많다. 이 거미는 조릿대 잎을 접어 그물을 치고 그 안에 알을 낳은 후 옆에서 지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냇가 풀숲에서 볼 수 있는 거미는 황닷거미일 수 있다. 이 거미는 거미줄을 치지 않고 냇가 풀숲에 살며 곤충이나 물고기 등을 사냥하기 때문이다.

또한 거미줄을 치는 거미들이 모두 방사형의 거미줄만 치지 않고, 방사형의 거미줄을 치는 거미라고 모두 수직으로만 치지 않는다. 갈거미는 수평으로 방사형의 거미줄을 친다. 이런지라 씨앗을 맺을 때 널리 퍼지기 유리하도록 꽃대를 한껏 키우는 민들레처럼 다양한 거미들의 저마다 다른 특성들을 알고 있으면, 관찰의 폭과 깊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생태관찰의 길로 야무지게 안내하는 길잡이 책

그런데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이런 생태적 특성을 알고 관찰하기란 쉽지 않다. <자연도감>은 민들레나 거미처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이나 식물의 생태적 특성을 알려줌과 동시에 그 특성에 따라 제대로 관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는 책이다.

책은 '떠나기 전에'라는 제목으로 자연을 접하는 자세를 비롯하여 자연을 관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을 시작으로 곤충류와 그밖의 벌레, 조류, 포유류, 파충류 및 양서류, 어류 및 조개류, 식물로 나누어 각각에 맞는 관찰방법들과 주의할 점 등을 알려준다.

자연생태관련 출판인들과 저자(연구자)들에 의하면, 아쉽게도 우리나라 동식물 연구에 일본 자료의 의존도는 현재 매우 높다고 한다. 이 책도 일본인이 썼다. 그러나 (출판사에 의하면) 옮기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실정에 맞게 일부를 빼거나 더했다고 한다.

그리고 문교부의 <한국동식물도감>이나 이창복의 <원색 대한식물도감> 등을 비롯한 여러 권의 동·식물 관련 책들을 참고로 우리 현실에 맞게 생물명도 정리했다고 한다.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동·식물이 다른 만큼 일본의 원서를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우리 현실에 맞게 더하거나 고친 것이다. 그래서 활용도가 높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다.

각 식물에 모여드는 곤충, 새의 여러 가지 발 모양, 바람에 날아가는 씨와 튀어서 퍼지는 씨, 집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버섯이나 죽은 나무에 나는 버섯 등, 이야기마다 세밀화를 곁들여 이해를 돕는다. 책 속 세밀화 덕분에 이름을 몰라 정리하지 못한 사진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점 또한 이 책의 장점 중 하나.

민들레 하나를 정해놓고 관찰하면 1-2008년 4월 18일 오전 11시 20분.
 민들레 하나를 정해놓고 관찰하면 1-2008년 4월 18일 오전 11시 20분.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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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하나를 정해놓고 관찰하면 2-2008년 4월 19일 낮 12시 8분.
 민들레 하나를 정해놓고 관찰하면 2-2008년 4월 19일 낮 12시 8분.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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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하나를 정해놓고 관찰하면 3-2008년 4월 20일 오전 9시 38분.
 민들레 하나를 정해놓고 관찰하면 3-2008년 4월 20일 오전 9시 38분.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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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는 얼마 동안 사는 것일까요? 봄부터 여름에 걸쳐 여기저기에 핀 노란 꽃들을 보고 있으면 민들레는 꽤 오랫동안 사는 것 같습니다. 과연 실제로도 그런지 민들레 하나를 정해놓고 민들레가 얼마나 오랫동안 사는지 살펴봅시다. ① 봉오리가 생기고 꽃이 피기까지 며칠이나 걸리는지 관찰합시다. ② 한 번 핀 꽃이 몇 시간이나 계속 피어 있는지 알아봅시다. ③ 아침 8시에서 10시 사이와 저녁 4시에서 6시 사이에 민들레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주의해서 관찰합시다. ④흐린 날에나 비오는 날에는 꽃이 어떻게 될까요? ⑤ 꽃이 시든 뒤부터 솜털이 될 때까지 며칠이나 걸릴까요? - <자연도감> '민들레' 중에서

사실 그동안 '이 식물은 이렇다. 이 곤충은 이렇다'라고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책들은 많았지만 이처럼 전문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이 직접 관찰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본격적인 길잡이 책은 없었다고 본다. 동·식물 관련 책에 어쩌다 하나씩 곁들여 알려줬을 뿐이다. 때문에 이 책의 출판이 무척 반갑기만 하다. '이런 책 덕분에 일본에선 자연생태 연구 관찰자들도 많고 다양한 책들이 풍성하게 나올 수 있는 거구나!' 하는 부러움과 함께.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대략이나마 알고 관찰할 때와 전혀 모르고 관찰할 때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민들레와 제비꽃을 그저 봄의 예쁜 꽃으로만 봤다면, 이젠 이처럼 관찰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 <자연도감>은 이제까지 무심코 스치고 말았던 우리 주변의 동식물들을 제대로 보고 느끼는 그 길잡이 역할을 야무지게 해주리라.

덧붙이는 글 | <자연도감> 사토우치 아이 씀, 마쓰오카 다쓰히데 그림, 김창원 옮김, 진선출판사 펴냄, 2010년 4월, 9800원



자연도감 - 동물과 식물의 모든 것

사토우치 아이 지음, 김창원 옮김, 마츠오카 다츠히데 그림, 진선북스(진선출판사)(2010)


태그:#민들레, #서양민들레, #자연도감, #열매 뭉치(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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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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