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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것 중 '마감'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매일매일, 그리고 순간 순간 마감과 마주합니다. 때로는 인생 자체가 마감에 비유되기도 하지요. 지금 이 시각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을 '마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내게 있어 마감이란 한정된 시간 동안, 키보드로 모니터 가득 글자를 써넣는 싸움이다. 이 싸움은 오롯이 나 혼자의 몫이다. 내 머릿속 문장들은 오직 내 손가락을 통해서만 배출되기 때문이다. 내가 머리를 두 개 갖지 않는 이상, 손가락이 각자의 인격을 갖고 움직이지 않는 이상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 구석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 가운데, 함께하는 무언가가 있다. 마감에서 빠질 수 없고, 빠지면 어색한 존재들. 마감과 함께하다 싸움이 끝나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나의 '마감 메이트'를 소개한다.

끈적이는 양말, 기름진 머리칼

피부와 물아일체의 상태를 이루고 있는 양말.
 피부와 물아일체의 상태를 이루고 있는 양말.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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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감은 '밤'을 동반한다. 새벽같이 출근해 아침부터 주야장천 마감을 해도, 마감은 한밤을 지나 꼭 다음날 새벽에야 끝나기 때문이다. 꼬박 하루를 새야 하는데, 그동안 끈적이는 양말과 기름진 머리칼은 조용히 찾아와 내 몸의 일부가 된다.

아침에 신은 뽀송한 양말은 슬리퍼를 신었음에도 조금씩 식은땀을 머금더니, 결국 약간의 끈적임을 동반하며 내 발에 피부처럼 차지게 붙는다. 쉽게 벗을 수도 없다. 나조차도 그 미묘한 향을 견딜 수 없는데…. 주변 사람들은 오죽할까. 찝찝함을 꾹 누르고 그냥 책상 밑으로 깊숙이 발을 감추는 방법밖에 없다.

기름진 머리칼 또한 마감과 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묘한 변화. 분명 아침에 드라이와 왁스의 도움을 받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머리칼은 마감의 기세에 눌려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두피와 밀착해 기름지게 변한다. 깊은 밤, 머리칼은 그렇게 겸손을 깨닫는다.

관절의 신음, 적당히 찾아오는 그 소리

마감 도중, 나도 모르게 공황 상태에 빠질 때가 있다. 어울리는 단어나, 신선한 문장과 같은, 원고에 꼭 필요한 뭔가가 떠오르지 않을 때다. 생각날 듯, 나지 않을 듯…. 한참 동안 초조함에 빠지곤 한다.

이럴 때, 비틀어 내는 관절의 신음소리는 모든 초조함을 날려준다. 마감이라는 치열한 싸움 속, 한동안 외면받고 의자와 책상에 고정됐던 목과 다리와 허리는 비틀고 꺾어줄 때, 자신이 여기 있음을 증명한다. 키보드 위에서 원고를 쏟아내며 고생하던 손가락은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길 원하며 꺾임과 동시에 아득한 신음을 내뱉는다.

'뚝, 똑, 딱, 뚜두둑.'

온몸을 울리는 관절의 신음은 온몸에 시원함을 더하며 꽉 막힌 머릿속을 뚫어낸다. 하지만 마감 도중 몇 번밖에 쓰지 못하는 '필살기'. 자주 꺾으면 쾌감도, 재미도, 감동도 없고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저 아프기만 하다.

다음 마감까지 내 몸에 남아 있을 야식의 흔적

시원한 맥주 한 잔에 맛있는 닭똥집 튀김
 시원한 맥주 한 잔에 맛있는 닭똥집 튀김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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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식과 간식은 마감에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분명 마감 전 세 끼니 영양 가득하게 빠짐없이 챙겨 먹었어도 말이다. 그것도 꼬박꼬박. 아니, 꾸역꾸역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입 안으로 들어가고 위장에서 소화가 된다. 물론 야식과 간식의 섭취가 마감의 진행상황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앞으로 한 줄 써내려가기 힘든 상황도 온다. 야식과 간식이 가진 열량의 힘은 마감과 거의 무관하다. 하지만 정신적 지주라고 해야 할까. 야식과 간식 앞에서 마감 대상자들은 끊임없는 위로를 느끼고, 마감을 위한 전의를 불태운다.

이런 야식과 간식을 혹자는 '유혹'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그냥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길 권한다. 야식과 간식, 그 모양과 맛은 마감과 함께 사라지지만 그 흔적은 내 몸 각지에서 물과 지방, 단백질, 탄수화물로 남아 다음 마감 때까지 나를 지켜준다.

키보드에 손 대는 순간 생기는 피로

마감 뒤, 마구 피곤할 것 같지만 웬 걸. 생각보다 피곤하지 않다. 피곤함보다는 생생함이 앞선다. 사실 피곤은 이미 마감과 함께 찾아와 있다. 글을 쓸 때쯤이면, 아니, 글을 쓰려 폼을 잡기 시작하면 피곤에 쩔어 있는 상태가 된다.

물론, 열심히 일해서가 아니다. 그냥 포털의 연관 검색어처럼 자연스럽게 '마감'이란 글자에 자동으로 '피곤'이 따라오는 격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 피곤이 더 깊어지지 않는다는 점. 한결같이 피곤은 그 양과 질을 유지하며 마감 끝까지 함께 한다. 그리고 마감이 끝나면 눈 녹듯 사라진다.

영화 <모비딕>의 한 장면. 배우 황정민은 이 영화에 열혈 사회부기자로 등장한다.
 영화 <모비딕>의 한 장면. 배우 황정민은 이 영화에 열혈 사회부기자로 등장한다.
ⓒ 쇼박스(주)미디어 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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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앞둔 며칠 전부터 마감을 마치기 전까지. 수천, 수만 개의 하고 싶은 일들이 머릿속을 떠돈다. 지금 당장 할 필요가 없는 방 청소에서부터, 샤워, 여행, 맛집 투어, 술자리, 악기연주, 데이트, 자전거타기 등등. 심지어는 다툼으로 인해 한동안 안부도 묻지 않던 옛 여자친구와의 통화까지. 그렇게 하고 싶은 일들은 마감과 함께 찾아온다. 전혀 구체적이지 않던 사람이라도, 전혀 구체적일 필요가 없는 일이라도, 마감이 끝나면 꼭 하고 말겠다는 듯. 초를 쪼개 써도 모자란 마감의 틈바구니에서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야 만다.

하지만 마감이 휩쓸고 지나간 그 자리, 이미 하고 싶은 일들은 온데간데없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것도 아니다. 이미 쥐도 새도 모르게 하고 싶은 일들은 사라져 있다. 구체적인 계획을 짜 놓은 흔적을 통해 짐작만 할 뿐이다.

마감이 우리를 피곤하게 만든 것일까. '익사이팅'한 마감의 쾌감이 모든 욕구를 대신한 것일까. 희한하게도 돌아오는 다음 마감이면 또 다른 하고 싶은 일들이 새록새록 다시 샘솟는다.

나는 한 계절 간격으로 밤새워 마감하며 원고를 쓰고, 무언가를 만들어간다. 그 과정 속에서 원고뿐만이 아닌, 마감을 함께하는 것들과 함께 새로운 추억이 생겨난다. 어쩌면 우리는 원고를 쓰기 위해서가 아닌, 추억을 만들기 위해 마감을 하며 이 밤을 지새우는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작성한 황주성 기자는 방송기자연합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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