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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해고자들을 보면 꼭 자신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현대차에서 27년 동안 일하는 동안 3번의 해고를 당했던 그다.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해고자들을 보면 꼭 자신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현대차에서 27년 동안 일하는 동안 3번의 해고를 당했던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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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현장순회하면서 조합원들에게 직접 이 버튼을 달아주고 있어요. 굉장히 좋아들 하세요. '금속노조가 만날 달라고만 했지, 주는 건 처음'이라고..."

마주앉자마자 박상철(52) 금속노동조합 위원장은 투쟁조끼 왼쪽 가슴에 달린 버튼부터 보여줬다. 버튼에는 '현장에서 희망을'이라고 쓰여 있다. "현장이 희망이잖아요"라며 박 위원장은 사람 좋은 웃음을 웃었다.

지난해 10월부터 7기 금속노조를 이끌고 있는 박 위원장을 지난 1월 27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책상 위에는 결재철들이 쌓여있었다. 현장순회로 사무실을 오래 비운 탓이다. 그는 "위원장은 현장에 살아야 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말 잘하는 위원장보단 같이 아파하는 위원장으로"


- 취임 100일을 넘겼다. 그동안 어떤 활동을 했나.
"당선되고 바로 부산으로 내려갔다. 후보시절 당선되면 한진중공업 문제부터 해결하겠다고 했었다. 3주 동안 부산에 있으면서 결국 문제를 풀었다. 이후엔 바로 현장순회를 했다. 보통 노동조합들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사업계획을 짜는데 우리는 현장의 의견을 들어서 사업에 반영해 보자고 했다. 지금 두 번째 현장순회 중이다. 벌써 세 번이나 간 현장도 있다. 후보시절 3개월에 한 번씩 현장순회를 하겠다고 공약했다. 그 약속을 지킬 거다."

- 현장에서 만난 조합원들의 목소리는.
"어느 조합원은 '금속노조가 중병에 걸렸다'고 표현했다. 금속노조가 살아있음을 보여 달라는 게 현장의 주된 요구였다. 투쟁을 현실로 만들어달라고. '노동조합은 투쟁하는 조직인데 투쟁을 안 한다'는 거다. 조합원들이 꼭 금속노조 15만 조합원이 함께하는 투쟁을 하잔다. 그래서 올해는 15만이 함께 하는 투쟁을 하려고 한다."

- 선거 캐치프레이즈가 '금속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였다. 그 의미는 뭔가.
"운동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진정성이 있는 거고. 집회 때마다 말한다. '말 잘하는 위원장 하고 싶지 않다. 고통받는 조합원과 같이 아파하는 위원장이 되겠다'고. 그렇게 금속의 심장을 뛰게 할 것이다."

- 어떤 고통받는 조합원과 함께 하고 있는지.
"한진중 해결하고 나서 바로 쌍차로 달려갔다. 쌍차에서 지금껏 해고자, 가족 등 19명(2월 14일 현재 21명)이 세상을 떠났는데 더 이상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쌍용차 사측이 합의를 지키지 않는 문제 등을 제기해서 꼭 해결할 거다. 그 다음엔 현재 금속노조의 장기투쟁사업장 32곳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갈 생각이다. 개별 현장만 싸우는 게 아니라 권역별과 전국투쟁을 잡으려고 한다. 장기투쟁사업장 조합원이 1천명쯤 되는데 같이 어울려 싸워서 하나씩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다."

박 위원장은 장기투쟁사업장 해고자들을 보면 꼭 자신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현대차 근무 27년차인 그 역시 세 번의 해고를 경험했다. 세 번째 해고는 1998년. IMF 이후 현대차에서 첫 정리해고를 할 때다. 당시 힘들었겠다고 묻자 그는 "아니요"라고 답했다.

"해고를 3번쯤 당하면 그러려니 해요. 2번 다 원직복직됐으니까 다시 그러겠지 하죠. 또, 싸워야 하니까. 그리고 현대차 조합원들은 지금도 구속자나 해고자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어요. 조합원들이 많이 격려해줘서 우리는 정말 즐겁게 싸웠어요. 당시 제가 현장조직 의장이었는데 쌀가게를 해서 해고자 83명을 다 먹여 살렸죠. 현대차 앞에 본점, 구별로 네 군데 분점도 내고. 조합원들이 이왕이면 해고자들 쌀을 사주자고 해서 잘 됐어요. 싸워도 재정적 기반이 있어야 싸우잖아요."

그 노하우를 쌍차 조합원들에게도 전수해줬단다. 쌍차에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당시 해고자들이 한 명도 떠나지 않고 함께 싸웠다. "생계를 함께 해결하고 학습모임도 하니까 사이가 되게 끈끈해졌어요. 끈끈하면 못 떠나거든요." 물론 투쟁도 견결히 했다. 박 위원장은 현대차 정문 앞에서 쇠사슬을 목에 걸고 23일간 단식을 하기도 했다. "현장에 가서 정말 일하고 싶었거든요." 간절함을 품은 투쟁은 2년 후 전원 복직으로 결실을 맺었다.

'자본의 곳간을 열자'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임기 동안 재벌들이 곳간을 열어 사회책임경영을 할 것을 계속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임기 동안 재벌들이 곳간을 열어 사회책임경영을 할 것을 계속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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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이 현대차지부 신승훈 조합원의 분신으로 시작됐다. 노조 간부 중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의 노무관리에 대한 대응 없이 금속노조가 승리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금속노조는 현대차그룹의 노무관리에 대응하는 TF팀을 구성했다. 현대차는 늘 글로벌 탑5를 외친다. 세계5대 자동차기업에 들어가겠다는 거다. 그런데 아직도 현대차에서 노동자가 자기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하는 참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잖은가. 사측에 문제 제기를 하는 노동자는 감시를 받고 있는 현실이다. 금속노조가 올해 신년투쟁 선포대회를 현대차그룹 앞에서 했다. 실제 글로벌 탑5가 될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도 다하라는 뜻이다. 아직도 현장탄압하고 노동자가 분신하는데 무슨 글로벌 탑5냐.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 공중전도 펼치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 현대차그룹의 노무관리 대응팀은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지.
"우선 관련 자료를 취합해서 전면적으로 언론에 제기할 생각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금속노조를 기획탈퇴한 사업장이 많았다. 상신브레이크, 발레오, KEC, 유성 등. 자료들로 밝혀진 부분도 있는데 모두 현대차그룹과 관련이 있다. 현대차그룹이 부품사의 노무관리까지 관여하고 있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싸우려고 한다."

- 산별노조로서 펼칠 사업 구상이 있다면.
"재벌의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재벌들을 많이 키워줬잖은가. 올해 주요 슬로건으로 '재벌의 곳간을 열자'를 채택했다. 재벌들도 사회적 역할을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 일환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려고 한다. 올해 여태껏 금속노조가 한 번도 못했던 중앙교섭이 이루어질 것 같다. 현대차, 기아차를 중심으로 주간연속 2교대제와 비정규문제 관련 중앙교섭을 잘 해내 두 가지 문제를 정확히 해결할 거다."

- 심야노동이 철폐돼야 하는 이유는 뭔가.
"현대자동차에서만 2009년에 32명이 죽었다. 사인을 보면 암과 심혈관계 질환이 많다. 암은 발암물질의 영향이 많은 것 같다. 산재 신청을 하면 그렇게 판명 나고 있는 추세다. 뇌출혈, 심장마비 등의 심혈관계질환은 주야맞교대로 인한 부분이 크다. 밤에 잠을 못자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최근 사망자의 2/3정도가 심혈관계 질환으로 그 비율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나도 현대차에서 27년 일했지만 야간노동에 따른 피로도는 말도 못한다."

- 주간연속2교대제와 함께 비정규직문제에 힘을 쏟겠다고 했다.
"불법파견 부분은 당연히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 불법파견 외에도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 우리가 비정규, 정규로 나눈 게 아니잖는가. 자본이 만든 거지. 노동자 위에 노동자 없고, 노동자 밑에 노동자가 없는 데도 말이다. 올해 비정규법, 정리해고법 관련해서 노동진영이 전면 제기를 하려고 한다. 8, 9월경 민주노총이 전면총파업을 한다. 비정규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할 생각이다."

- 민주노총의 현재 상황에서 총파업이 가능하겠냐고 보는 의견도 많다. 산하 최대노조인 금속노조로서 부담도 될 텐데...
"그동안 금속노조가 한 번도 안 싸웠으니 그럴 만하다. 하지만 이번엔 크게 싸울 거다. 금속노조가 최선봉에 설 것이고. 이미 사업계획을 세웠다. 현장순회 때도 조합원들이 이번엔 좀 싸워보자고 하더라."

"노동자 위에 노동자 없고 노동자 밑에 노동자 없다"

박 위원장이 운동에 뜻을 품은 건 25살 때다. 초중고를 함께 다녔던 친구의 영향이 컸다.

"그 친구가 조선대에 다녔는데 광주항쟁 때 수배생활을 하면서 서울에 있는 우리집에도 왔었어요. 광주 얘기를 해주고는 동지들이 있다면서 다시 광주로 갔어요. 그렇게 가서 다시 못 왔죠. 지금은 망월동 묘역에 묻혀 있어요."

친구의 죽음 이후로 세상이 달리 보였다. 친구가 놓고 간 책들도 봤다.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때마침'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지만 부모님이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외가가 있던 울산으로 내려왔다. 울산에는 현대자동차공장이 있었다. 직원이 엄청 많았다. 노조도 없었다. 먹고살 궁리도 해결됐다. 26살에 현대차 노동자가 됐다.

27년 전, 현대차공장은 군대와 다름없었다. 회사 경비들이 정문 앞에서 '바리깡'을 들고 직원들의 귀밑머리를 밀어대던 때다. 현장은 임금인상과 상여금의 등급을 매기는 조·반장이 최고권력이었다. 폭력도 다반사였다.

"노조가 없을 때는 정말 사람이 사는 게 아니었어요. 노조가 없으면 안 되겠다, 잘 들어왔구나, 싶더라고요."

물론 시련도 많았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현장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3차례 구속되기도 했다. 그동안 그의 아내는 신문배달, 우유배달 등 직업을 10개쯤 바꿀 만큼 안 해본 일이 없다.

"지금도 집사람이 제일 응원을 열정적으로 해줘요. 고맙고 감사하죠."

산별노조의 위원장이란 중책을 맡은 이상, 네 번째 구속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두렵지 않을까?

"그거 걱정하면 지도자하면 안 되죠. 세상에 공짜가 없거든요. 위원장이 되니까 조합원들이 대접을 잘 해주더라고요. 그거 공짜 아니거든요. 구속을 피해서는 안 되죠. 가면 가는 거고, 잘 싸우면 안가는 거고. 금속노조 위원장 될 때 집사람이 먼저 '또 감옥 가겠구나' 생각했다더라고요."

'소수의 혁명보다는 다수가 조금씩 변하는 게 더 혁명적이다' 이탈리아의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했다는 이 말을 박 위원장은 좋아한다.

"소수가 백 발짝 가는 것보단 다수가 한 발짝 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게 운동하는 사람의 책무잖아요."

그래서 그가 그렇게 '15만이 함께하는 투쟁'을 강조하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건 어떤 모습일까?

"사실 한 번도 안 해봤으니까 잘 모르지만, 대단히 위력적이지 않겠어요? 15만이 함께 싸울 때 세상이 어떻게 뒤집어지는지 나타나겠죠."

인터뷰 말미에 금속노조 위원장으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금속노조 깃발이 파란색이에요. 희망을 뜻하죠. 정말 금속노조가 조합원들 가슴에 자기 삶의 희망으로 남도록 전력을 다해서 노력할 거예요. '금속노조가 희망이구나', 이렇게 자기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동세상, #박상철, #쌍차, #현대차,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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