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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호 서울북부지법 판사
 서기호 서울북부지법 판사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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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서기호 분도를 응원한다

필자는 천주교회의 평신도 성서학자다. 이렇게 시류에 따르는 글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망설이다 결국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서기호 판사에 관심있는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다. 이 기사에서 신학적 내용은 자제할 것이다.

최근 일부 보수언론은 서기호 판사를 '인성이 가벼운 좌파 판사'라고 지목했다. 페이스북에 '가카 빅엿'이라는 문구를 남긴 사실을 문제삼았다. 게다가 성적 최하위(서기호 판사는 반박했지만) 판사라고 단정지었다. 지금 서기호 판사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여 있다.

나는 서기호 판사와 20년 지기다. 약삭 빠르지 않고, 조금 느리지만 수더분하게 자기 길을 가는 이 친구가 오해 받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동료 신앙인의 관점에서, 서기호의 인간적인 면을 들려주고 싶다. 우리는 친구를 도와야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들이다. 그런 신앙인들이 기호 주변에는 많다.

가톨릭 대학생

서울대 법대생 서기호 판사는 학창시절 명동에서 가톨릭대학생연합회 활동을 열심히 했다. 우리는 일주일에도 여러 번 미사를 보고 집회를 다녔다. 그렇다. 우리는 명동의 486세대다. 명동의 뒷골목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시기, 기호는 그때부터 복음, 가난, 정의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게 좀 특이한 서울대 법대생 후배로 다가왔다.

우리는 어려운 신학책도 열심히 읽었다. 성서학과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과 해방신학이 단골 메뉴였다. 집회를 하든, 토론을 하든, 모꼬지를 가든, 모임의 시작과 끝은 기도와 성가였다. 명동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다. 방관하지 않아야 참된 신자라고 생각했다. 가톨릭 회관 한 구석에서 우리는 그렇게 청년기를 보냈다. 우리는 청년 신앙인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세상에나. '좌파 판사'라니. 정말 말도 안 된다.


늦은 출발


그 당시 우리는 '전국가톨릭대학생협의회'를 만들었다. 서기호 분도는 회장을 맡았다. 우리는 우여곡절을 함께 겪었다. 그는 현장에 가서 듣는 것을 즐겼다. 당시 우리의 지도 신부님은 지금 주교님의 아우 신부님이다. 친구들 가운데에서 일부는 신부님과 수녀님이 됐다. 우리도 남들처럼, 때가 되자 취직도 하고 결혼도 했다.

기호는 한참 늦은 나이에 사법 시험을 보았고, 나는 유학길에 올랐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우리 나이 또래보다 몇 년씩 늦다. 평판사 서기호의 법대 동기들은 부장판사급이다. 서기호는 그냥 공부만 했던 판사가 아니다. 비록 남보다 몇 년 늦었지만, 그동안 삶의 체험과 현장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 됐다.

비폭력 대화 법관

이런 남다른 배경 때문인가. 평판사로서 서기호는 출세보다는 '소통'에 관심이 많다. 비폭력 대화(NVC)라고 들어 보셨는가? 남의 의견을 잘 듣고 내 의견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비 정치적인 순수한 운동이다. 서기호가 하는 SNS 활동의 대부분은 이 비폭력 대화와 관련한 것이다. 그는 강의를 주선해주고, 스스로 모임에도 참가한다. 판검사들의 술자리보다 비폭력 대화에 열심이다.

기호는 "언제나 날카롭게 맞서는 양쪽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 법관에게 비폭력 대화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면의 이야기를 빨리 알아채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판사가 있다면 재판이 훨씬 효율적이고 부드럽게 진행될 것이다. 나는 서기호 판사의 '72자 판결문'도 이런 소통의 노력으로 이해한다. 도통 알아듣기 어려운 판결문을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물론, 법원의 판결문 간소화 지침에 따른 일이기도 하다.

서기호가 재임용 심사를 받으러 대법원에 간 2월 7일. 우리나라에 비폭력 대화를 처음 도입한 미국인 캐서린이 특별히 직접 통화해 격려해줬다고 한다. "진정한 소통이 된다면 재임용의 난관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인지 그는 어제 밝아보였다. 진정한 소통의 힘을 믿는 듯했다.

그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이런 소통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 같다. 그는 SNS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다. 사람들 사이에 오해를 풀고 가슴으로 대화하는 법을 내게도 권유했다. 권위적이고 내 한몸 편하게 일하려는 법관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그가 있어 필자는 법원을 신뢰하게 됐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는 7일 오전 원 앞에서 서기호 판사 연임배제시도 및 이정렬 판사에 대한 징계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회견문을 통해 "오늘 열리는 법관인사위원회의 결정을 지켜 볼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는 7일 오전 원 앞에서 서기호 판사 연임배제시도 및 이정렬 판사에 대한 징계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회견문을 통해 "오늘 열리는 법관인사위원회의 결정을 지켜 볼 것"이라고 밝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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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기호 판사는 조금 느리지만 단호히 처신하는 스타일의 소유자다. '신영철 대법관 파동'때도 상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재판의 중립성이라는 원칙을 주장했다. 그 후에 그는 <조선일보> 등에서 가차없이 공격 당했다. 서기호 판사의 친구들은 걱정했지만, 본인은 의연했다. 언제나 그렇듯, 별로 말이 없이 "옳기 때문에 한 것"이라고 조용히 말했다.

홀로 양심에 따라 처신하는 사람, 느리지만 단호하게 처신하는 사람이 살기 힘든 세상이다. 나는 서기호 판사가 약삭빠르지 않아도 좋고 출세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 평신도로서 정의로운 의견을 내는 것을 지지했다. 또한 우리법연구회 등과 가까이 지내면서도 그 무리에 가담하지 않은 것을 잘한 일이라고 본다. 나는 아직도 법관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자신의 소양과 판단에 따라 할 말을 하면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혹시, 무리에 끼지 않았기 때문에, 만만해보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판사는 판결로 사는 사람이다. 이게 판사의 '원래 자리'다. 재판과 관련돼 돈과 청탁을 받고 권력에 순종하면 안 된다. 이렇게 제 자리에서 일탈한 사람은 가벼운 징계를 받고, 재판과 관련없는 부분에서 사회와 소통하려 하는 판사를 자른다면, 우리 법원에 정의는 없는 것이다.

서기호에게 격려를

나는 20년 넘은 친구이자 동료 평신도가 이번 일을 잘 헤쳐나가길 바란다. 그리고 세간의 오해를 풀고 싶다. 그는 이른바 '좌빨'도 아니고, '가벼운 인성의 소유자'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는 판사가 돼서도 평범한 옛 친구들을 만나는 소탈한 법관을 잃고 싶지 않다. 사회의 중진이 된 가톨릭 청년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동료 신앙인 서기호 분도의 편을 들고 깊이 기도하고 있음을 전해주고 싶다.

[사족] 판사들에게
끝으로 이 국민은 이번 기회를 빌려 판사들에게 사족 세 개만 덧붙이고 싶다.

첫째, 법관들도 인간들이다. 무리에서 왕따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나 보다. 법관들이 모여있는 교실에서 군기를 잡는 사람이라도 있다는 것인가. 한나 아렌트가 밝혔듯 악은 '생각없음'(thoughtlessness)에서 생겨난다. 무관심과 쪼그라드는 마음을 걷어내야 할 것이다. 그대들은 쫄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잖나. 

둘째, 내가 공부하는 구약성경은 정의의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정의'(차다크)란 말을 두 번 겹쳐서 강조한 곳이 딱 한군데 있다. 바로 공정한 재판을 실행해야 할 판관들에게 하는 대목이다. 그 말씀을  이 시대의 판관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너희는 정의, 오직 정의만 따라야 한다."(신명 16,20)

셋째, 곰곰히 성찰해 보자. '전관예우'란 말은 얼마나 허무맹랑한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주원준 기자는 신학 박사이며 서강대 강사입니다.



태그:#서기호, #사법개혁, #평신도,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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