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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 선배가 2월 1일 세상을 달리했습니다. 평생 사회운동에 종사하며 밀알의 역할을 하다가 갑자기 세상을 뜬 것입니다. 우리 나이로 70을 두보는 그의 시 '곡강(曲江)'에서 '고희(古稀)'라고 했습니다. 예전엔 70의 연치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쓴 시어(詩語) 같습니다. 두보 이후 1300여 년이 흘렀습니다.

과학과 의술의 발달로 인간 수명도 많이 길어졌다고 합니다. 지금은 은퇴 뒤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인생은 칠십부터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립니다. 예전에는 70이 많은 나이에 속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말입니다. 건강하게 7,80대를 보내는 분들이 주위에 아주 많습니다.

그 선배가 우리 나이로 꼭 70에, 그것도 2월의 첫 날 영면한 것입니다. 그의 나이보다도 드러나는 건강한 모습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몹시 안타까워했습니다. 며칠 전 만나 정담을 나눈 사람도 있고,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물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의 시신이 안치된 장례식장엔 그래서 많은 조문객들이 발길을 했습니다.

저에게도 그는 사랑하는 선배인지라 꼬박 하루를 빈소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발인예배를 마치고 내려왔습니다. 제가 빈소에 머문 사이 많은 사회운동 지인들이 다녀갔습니다. 그 중엔 고인과 남민전 사건 동기인 최석진 형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정식 스님은 아니지만 수행생활을 하는 그는 50일 동안거(冬安居)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부음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최석진 형은 한참 뜨고 있는 안철수의 멘토로 알려진 법륜(法輪) 스님의 친형입니다. 고등학교 2년 중퇴인 법륜을 '법륜'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최석진 형입니다.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그(최석진)가 남민전 네 명의 사형수 중 한 명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재문 신향식 안재구 최석진 등이 사형 언도를 받았는데, 그 중 이재문 신향식 두 분은 사형이 집행되고, 안재구 최석진 두 분은 사형 집행 직전에 종교계를 중심으로 한 구명운동으로 집행을 면했다고 합니다.

안재구 선생은 세계적인 수학자라는 점에서, 그리고 최석진은 나이가 어린 젊은이여서 죽여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일었습니다. 최석진 형은 그때 남민전 사형수 네 명 다 구명 운동의 대상이 되었었더라면 사형까진 집행되지 않았을 텐데 아쉽다는 말은 거듭했습니다. 그로부터 남민전 사건의 비화(秘話)를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완전 승복(僧服)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상복도 아닌 겨울용 회색 개량 한복을 입고 느릿느릿 도사처럼 말을 이어갔습니다.

고인에 대한 덕담과 아쉬움에 젖은 대화를 하다가 금세 정치 쪽으로 이야기가 번졌습니다. 구태 정치는 이젠 사라질 때가 되었다는 말끝에 누군가가 한나라당의 새 당명으로 '새누리'당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누리'는 한자 말 '세상(世上)'의 순 우리말 표현입니다. 개혁 의지가 조금은 보인다는 둥, 아무리 순 우리말이라고 해도 대중이 수용하기엔 좀 어색하다는 등의 말들을 했습니다.

그 때 최석진 형이 되물었습니다.

"뭐라꼬요? '누리'라고 했습니꺼? 그건 1980년대 우리가 처음 쓴 말인데…."

1970대를 거쳐 80년대 중반까지 이 땅엔 운동다운 운동을 펼친 토양이 아니었습니다. 의식이 있는 사람은 싹이 트기 전에 뿌리 채 뽑혔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학생운동도 사회에 나와서는 파편화되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지경이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최석진 형을 비롯한 몇몇 학생운동 출신들이 충북 괴산에 모여 농촌 공동체를 만들고 지은 이름이 '푸른 누리'였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그 일은 몇몇 사람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한 날, 푸른 누리 공동체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고 합니다. '푸른누리'라는 이름은 청와대 어린이 신문의 제호이니 그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는 전화였다고 합니다. 가당치도 않은 얘기였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이 한 전화인지라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푸른누리' 공동체에서 발행하던 회지가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뒤에 1990년 대 중반의 것을 가지고 가서 소명을 했던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새누리당의 '새누리'도 우리 '푸른 누리'에서 도용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네예."

그는 특유의 경상도 억양으로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거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이 상표권을 침해한 것이네! 새누리당에 상표 사용료(로열티)를 달라고 해 봐요."

물론 반농의 말이었지만, 한나라당이 이름을 새누리당으로 바꾼다고 해서 순수한 농촌운동 공동체인 푸른누리의 정신이 훼손되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다 입신양명 출세의 자리를 향해 치달리고 있는 때, 경쟁주의를 멀리하고 일등 독식주의를 거부하며 무상무념(無想無念)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위안을 받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한다면 세상이 조금은 더 따뜻해질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당명을 바꾸고 정강정책을 거창하게 내걸기 전, 인간 존중의 마음을 갖는 것이 우선해야 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명을 순수한 우리말로 바꾸는 것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을 순수하게 보는 시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정치 개혁은 선거 때만이 아니라 늘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만 가지면 정치 개혁은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것이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떠오른 교훈입니다.


태그:#상가 조문, #새누리당, #푸른누리, #남민전, #최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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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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