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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언론의 대부격인 조중동과 함께 뭇매를 맞고 있는 종합편성채널 MBN(매일방송) 윤범기 기자가 진보의 아성에서 축사를 했다?

 

사실이다. 아니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는 지난 10일 개최된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출판기념회에 참석, 버젓이 축사를 낭독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2년 동안 20~30대 청년들과 함께 300회 가까운 독서모임을 이끌었던 윤 기자. 그는 최근 <미디어스>에 "MBN은 조중동 종편과는 다르다"는 제목으로 사설을 기고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 기자는 이 글을 통해 "최소한 언론으로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며 사랑을 받아왔던 MBN이 조중동과 같은 부류로 인식돼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그는 "MBN의 보도 방향은 조중동과 달랐을 뿐더러 <매일경제>와도 꽤 달랐다"며 "40년 전통의 <매일경제>와 17년 역사의 MBN은 구성원이 젊은 만큼 멘탈리티(사고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먹고 살만한 종편기자가 진보아성에서 축사는 왜?

 

김대호 소장은 1월 22일 회원들에게 보내는 감사 편지를 이메일로 발송하며 윤 기자가 읽었던 축사 전문을 공개했다.

 

당시 윤 기자는 "먹고 살만한 종편기자가 <2013년 이후> 한 권 읽고 축사까지 하겠느냐고 물으실지 모르겠지만"이라며 너스레로 운을 뗐다.

 

하지만 윤 기자의 그 이면엔 책 보다 더 뼈저린 쌍둥이 형의 참담한 현실이 가려져 있었다.

 

윤 기자는 축사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근원적)문제는 일자리와 공평"이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격차 해결이 진보의 핵심 과제가 돼야 한다"는 김대호 소장의 말에 감명을 받은 것이라고 전했다.

 

윤 기자는 쌍둥이형의 인생역정을 담담하게 풀어갔다. 서울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윤 기자에 비해 그의 형은 고등학교 연합고사마저 떨어졌다. 중졸 학력이 전부였다. 우여곡절 끝에 검정고시로 고교를 졸업, 전문대까지 겨우 나왔지만, 일자리는 형에게 쉽게 다가오질 않았다.

 

이후 쌍둥이형의 직업은 편의점 알바, 자장면 배달부, 일명 주유소 총잡이까지 닥치는 대로 일손을 거두는 비정규직의 연속이었다. 윤 기자의 형은 지금 우체국에서 월급 120만 원을 받는 무기계약직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올해 36세. 윤 기자와 동갑내기인 그의 형은 아직 결혼도 못하고 하루벌이 생계만 유지하고 있다.

 

윤 기자는 또한 39세 노총각 형을 언급하며 지방대 공과대를 졸업했지만,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5년째 고시공부에 전념하고 있는 형제의 현실을 성토했다.

 

비정규직 철폐는 곧 가난의 대물림을 막는 최소 안전망

 

윤 기자는 축사 내내 자신이 겪은 어려움의 내용들은 되도록 줄이려 했던 점이 역력했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화려한 경력을 숨기는 것 보다는, 구조적 현실에 맞물려 숨 막히는 경쟁 구도에 갇혀버린 자신의 가족사를 대비시키기 위해서였다.

 

윤 기자는 말을 바꿔 가족사를 풀어냈다. 1997년말 IMF가 터져 온 가족이 길거리로 내쫓겼던 시절. 이후 겨우 자영업을 시작해 연명해나갔지만 달라지지 않는 사회현실에 설움을 삼켜야만했던 시절 이야기 등등.

 

윤 기자는 이제는 진보와 보수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가 아닌 소외되고 힘없이 사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정당이 나와야 할 때라고 제언한다.

 

그리고 윤 기자는 마지막으로 호소했다.

 

"저희 형제 같은 사람들이 결혼할 수 없는 사회라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습니다"라고.


태그:#MBN윤범기 기자,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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