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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인터뷰 내내 블랙커피를 두 잔 넘게 마셨다. 특유의 경상도 말투도 여전했다. '신정아' 이야기만 나오면 다물었던 입이 술술 풀렸다. 참여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들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노무현 정부 때 원칙대로 경제를 운용하지 않았다면 (이제 와서) 어떤 문제가 생겼겠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현 정부의 위기 극복 바탕에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안정이 한몫했다는 뜻이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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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 집권 초에 보수언론과 야당에서 '경제포기대통령' 등 오만 이야기를 다 들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원칙이 확고했다.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참여정부 초기에도 SK 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등 경제 여건이 좋지 않았다. 경제팀 내부에서도 논쟁이 있지 않았나.
"미세한 부분에서 논쟁도 있긴 했지만, 원칙은 그대로였다. 거품 경제가 결국 가진 자보다는 서민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간다는 것, 양극화를 더 심화시킨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 보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진보 개혁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결국 서민생활은 더 어려워지지 않았느냐는 지적인데, 부인하지 않는다. 미흡했다. 우리도 무지 노력은 했지만, 해결하지는 못했다. 누구 잘못이냐고 하면, 경제참모인 제 책임이다."

금세 그의 표정은 굳었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지지층이었던 진보개혁진영의 비판에 좀 더 적극적이었다. 그의 말이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작년에 책을 냈어요. 거기에 '노무현의 역설'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당시 세계적인 버블경제는 대외의존도가 70~80%에 달하는 우리 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치죠.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 여러 경제안정화 정책을 취했는데, 성과는 영 보지도 못하고, 뒤늦게 지금 정부가 (성과를) 보고 있다는 거예요."

"노무현의 역설- MB 정부의 위기극복 바탕이 된 참여정부 경제정책"

- 경제정책의 효과라는 것이 바로 나타나기 어려운 측면은 있는데.
"정부에서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조그만 정책이라도 입안부터 시행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3년이 걸린다. 또 그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더 걸리게 돼 있다. '어쨌든 그래도 해결 못했잖아'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 참여정부가 재벌개혁에는 미흡했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재벌개혁에서 구분해야 할 것이 '대기업'과 '재벌'이다. 재벌은 분명히 개혁할 존재지만, 대기업은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해줘야 한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입장에선 작은기업이든, 대기업이든 해외에 나가 경쟁해야 하니까."

- 재벌 역시 기업활동을 하지 않는가.
"우리 재벌행태를 보면, 옛날로 치면 '시장의 장터국밥집' 같은 것이다. 가족경영 자영업자다. 온 가족이 총동원돼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즘 딸이 빵 가게하고, 요식업하고 그렇지 않은가. 재벌들의 무분별한, 문어발식 확장, 이런 문제를 잡아야 한다."

변 전 실장은 재벌 문제에 대해서, "정교하게 다뤄야 한다"고 했다. 재벌의 일부 소수일가 중심으로 수평적인 확장은 규제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또 정부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는 "재벌의 나쁜 행태에 대해선 정부와 함께, 시민사회의 감시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곤 왜 이들이 자영업자 영역까지 들어오게 되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했다. 무작정 막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구조적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재벌이 진출한 꽃가게, 빵가게, 커피숍, 파스타집, 자동차수입 등 이런 부분들 보면 대부분 아웃소싱과 연관돼 있어요. 또 일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하청을 두고… 국내 노동 경직성과 관련돼 있죠. 쉽게 사업 진출해 돈 벌면서, 사람도 정규직 안 써도 되고 하니까…."

"2030년 복지국가는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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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자연스레 복지문제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그는 "국민들이 최소한 입고, 먹고, 자고, 병원, 교육 등의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와 성장은 함께 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를 위해 분배와 노동, 재벌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분배 개혁을 통해 국민들의 기본적인 의식주와 교육, 의료 등은 국가가 책임을 지자는 것이다. 

- 기본적인 복지를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
"그게 돼야 한다. 그래야 직장에서 나오더라도 큰 걱정하지 않고, 다시 배우고, 일하는 기회도 생기지 않나. 지금처럼 '해고는 살인'이 되는 현실을 극복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성장도 어렵다."

- 많은 돈이 필요한데, 나랏돈으로는 어렵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더욱 양극화, 빈곤 성장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난 정부 때 '비전2030'을 통해 복지 성장을 위한 계획서를 만든 것이다."

- 당시 보고서에 2030년의 복지국가를 위한 재원이 1100조 원이 든다고 썼는데.
"(커피를 마시면서) 언론들이 '세금폭탄이네' 하면서 엄청 시끄러웠다. 제대로 보면, 그리 허황된 수치가 아니다. 1100조 원이라는 돈은 25년 동안 매년 물가가 오르는 것을 포함해서 계산해 보니까 그만큼 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향후 25년 동안 발생할 총 GDP의 2% 수준이다."

그는 "내 잘못이 크다"고 토로했다. 지난 2006년 당시 우리나라 재정의 7%(약 16조 원)만 매년 '비전2030'에 투입할 경우, 복지국가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그때만 해도 진정성에 호소하면 '잘 될 것이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보수언론과 야당뿐 아니라 열린우리당인 여당까지도 반대하고 나서니…. 제가 소통이 부족했고, 전략을 잘못했다고 봐야죠."

- 현 정부도 올 7월에 국가미래 청사진을 제시한다고 한다. 사실상 'MB식 비전2030'이라고 하는데.
"비전을 만드는 데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세 가지 조건이 들어가야 한다. 하나는 많은 사람이 참여해, 국민의 뜻이 반영돼야 한다. 둘째는 복지성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원대책을 확실히 마련해야 한다. 세금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포함해서…."

"한미FTA는 경제동맹이 아니다... 한중FTA로 오히려 종속될 수도"

인터뷰 시간이 2시간을 훌쩍 넘었다. 지난 정부부터 최근까지 논란이 컸던 한미FTA에 대해서 물었다. '도대체 왜 추진하려고 했는가'에 대해선, 그동안 알려진 내용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철저하게 실용적,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한미FTA는 기본적으로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면서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이고, 개방의 문제였다"고 답했다.

- 한미FTA는 단순한 관세 장벽을 넘어서는, 미국의 제도와 법을 한국에 가져오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미국제도를 이식한다는 것은 조금 심한 것 같고…. 종속되는 개념이 아니라, 복지 성장을 위해서 미국 시장을 우리가 철저하게 이용하자는 것이다. 우리 시장을 열어주는 대신, 우리도 미국에 들어가서 우리 것을 만들자는 것이다."

- 한미FTA 협상단에 노 전 대통령이 '철저히 장사논리로 하라'고 했는데.
"(끄덕이며) 현 정부에선 한미FTA를 두고 '양국간 경제동맹이다'고 했는데, 노 대통령은 '경제동맹이라는 말은 절대 쓰지 마라'고 했다. 이것이 아무렇지 않게 보여도 굉장한 차이다."

그의 말을 좀 더 옮겨본다.

"참여정부 때 한미FTA는 경제동맹과 관계가 없어요. 미국과 무슨 동맹을 해요. 미국시장을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유리하게 들어가겠다는 것에서 철저히 장사꾼 논리로 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협상팀에게 미국의 군사, 외교, 안보 등을 고려하지 말고, 철저하게 국민의 이익에 맞춰 협상하자는 거였지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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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과 시민사회 등에서 주장하는 한미FTA의 재협상 또는 폐기 여부에 대해, 그는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서, 한미FTA가 문제가 된다면 얼마든지 재협상이나 폐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에 앞서 실업 급여를 포함해 각종 노동자 보호장치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 정부에서 추진 중인 중국과의 FTA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미국과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완적인 부분이 있지만, 중국과는 겸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중국과 FTA가 발효되면 우리 시장이 종속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최대한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향후 총선과 대선 정국에서의 역할을 물었다. 신정아 질문과 같은 답이었다. 아예 답변 자체를 꺼렸다. 대신 이번에 문을 연 자신의 경제전문 블로그인 '변양균닷컴'을 통해, 소통을 많이 하겠다고 했다. 여러 가지 경제정책과 대안을 두고, 시민과 직접 만나겠다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 말이다.

"경제정책이 단지 일부 전문가나, 국가 전유물인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제 그런 세상이 아니에요. 국민이 직접 정책에 참여하고, 설계하는 시대죠. 당분간 이것에 전념하려구요."


태그:#변양균, #신정아,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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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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