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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정치와 사회 부조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지금 자신이 처한 현실의 문제가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촛불집회, 청춘콘서트, 나는 꼼수다 등 사회적 이슈와 문제, 갈등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올해 이슈가 될 총선과 대선은 그 기폭제가 될 것이다. 지역이나 내용, 방법은 다르지만 그 이면에는 '열심히 살면 행복해지는 세상'을 희망하는 대중들의 바람이 있고, 이러한 공감은 대중들이 행동에 나선 직접적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이승만 정권의 안보의 시대에서, 박정희 및 군사정권의 발전의 시대, 87년 민주항쟁 이후의 민주화의 시대로 진보한 대한민국. 이제 복지국가를 넘어서는 행복국가로의 변화를 꿈꾸는 대중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대중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이념의 논쟁이나 복지의 논쟁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개개인의 바람과 함께 가지 못하는 사회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사회적 잉여, 개인적 결핍

우리나라는 압축적 근대화를 거치면서 성장위주의 경제발전을 이룩해 오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한 구조적, 태생적 한계를 감춰오고 있다. 사회적이나 거시적 경제 지표만 봤을 때 우리 사회는 잉여의 나라임에 틀림없으나 개개인의 삶과 생활에서는 그 결핍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어린이 놀이터에 있는 시소(seesaw)처럼 항상 개인의 결핍과 사회적 잉여는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서로 오르락 내리락 서로에게 긴장(tension)을 주면서 문제점을 보완하고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로 불리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나라는 기득권과 특정 계급을 위한 매커니즘이 대중의 갈망을 짓누르고 있는 상태다. 개인적 결핍은 커져만 가고 사회적 풍요는 특정 계급에 집중되어 양극화와 계급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단어는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어 가고 있다.

2040세대의 자화상 

2040세대의 위기가 요즘 이슈가 되고 있다. 20대는 생활비문제, 등록금문제, 취업문제, 자존감 문제 등으로 고민하고 있고, 30대와 40대는 노후에 대한 불확실, 자녀문제, 사교육비 문제, 주거문제, 고용문제 등 20대와 마찬가지로 현실적 문제와 더불어 미래에 대한 불확실에 대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또 20대는 '워킹푸어(Working poor)', 30-40대는 '하우스푸어(House poor)'로 대변되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우리는 사회적 결핍을 직접 느끼고 공감하고 있다. 

학비를 벌기위해 12시간 넘게 아르바이트를 해야하는 현실, 졸업 후 학자금 대출 때문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현실, 몇 백대의 경쟁률을 통과해야만 취업이 가능한 현실, 취업을 해도 제대로 된 일자리와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 등 20대는 지금의 희망없는 사회에 좌절하고 있다.

30~40대는 취업하고 결혼하기 위해서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현실, 맞벌이가 아니면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현실, 전셋값 폭등으로 직장과 거주공간이 멀어져서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해야 하는 현실,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노동시간을 감당하기 위해 밤 늦게 까지 야근을 해야하는 현실, 2년 마다 전셋값 마련에 등골이 휘는 현실, 앞으로의 미래가 보이지 않아 자녀를 더 낳을 수 없는 현실, 안정된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 노후에 대한 준비와 비전이 보이지 않는 현실 등 더 많은 불안을 안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먹은 만큼 행복해진다'는 링컨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가 경험해온 환경에 따라 우리의 행복정도와 기대치가 달라진다고 한다. 지금의 2040세대는 개인주의, 경제적 욕망, 문화 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그런 이상적 현실과 미래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양극화에 따른 상대적 행복에 대한 박탈감도 우리가 '마음먹기'를 할수록 커지기 마련이고, 지금은 그 '마음먹기'조차 사치로 느껴질 정도이다.

정치, 금융, 언론, 기업, 정부...주객이 전도된 권력 중심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굴직한 모든 결정은 정치, 금융, 언론, 기업, 정부 등 거대 권력조직의 상호 이해 메커니즘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결정과정에서 '우리'는 배제되어 있고 그 속에 '대중'은 없어 보인다. 대중은 그 권력의 메커니즘에 참여할 수 없으며 권력기관은 개인의 고립화를 조장하면서 그들의 참여를 막는다. 하루종일 일해도 빡빡한 현실, 그 속에서 대중은 개인적 고립화에 빠져들고 권력은 그런 시스템을 이용해 대중을 조정한다. 이렇게 사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로 퇴보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모든 권력 시스템의 본질적 주체는 대중임에도 불구하고 시민을 위한, 시민이 행복한 사회라는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일련의 권력기관은 자신의 태생적 근원인 대중을 위한 서비스는 마다한 채, 자신의 입지와 권력을 확장하기 위해 몸부림 칠 뿐이다. 이와 같이 구조적으로 주객이 전도된 근본적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나라의 행복국가로의 이행은 가시밭길 될 것이 뻔하다.

절망이 있기에 희망이 더 값진 것

정권이 바뀌고 권력이 움직일 때마다 그 권력의 중심에는 항상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나는 엉뚱한 권력자만 있을 뿐 기존의 헌옷을 리폼하려는 권력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큰 줄기에서 대중을 설득할 뿐 시민들이 살아가는 생활공간과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참 답답하고 불편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과 고난이 수반되기에 희망이 더 크게 싹트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시스템화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는 것과 아울러 그 문제점을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대중들이 모여서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다들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이러한 한국적 상황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했다면 그 다음은 그 해답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가슴이 뛰면 그게 시작이다

자신이 생활하는 업역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성과와 보람이 있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우리주변의 가족, 친구, 직장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영역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그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며 바람직한 미래를 후세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작은 단초가 될 것이다. 그 대안을 찾아내는 고난의 과정을 얼마나 슬기롭고 아름답게 이뤄내는냐가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진정한 과제이다.

우리가 직접 나설 수 없다면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리더를 찾아야 한다. 큰 틀과 새로운 정책으로 포장한 리더가 아닌 실핏줄과 모세혈관과 같은 세밀한 민생현안을 통해 체질을 강화시키는 리더. 올해의 총선과 대선에서 그러한 리더가 나올 수 있게 우리는 지금부터 그들을 자극하고 우리의 갈망을 표출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행복해 질려면 사회적 스트레스를 감소해야...

사회적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은 통제 불가능성, 이해 불가능성, 예측 불가능성 등 크게 3가지로 나누어 그 원인을 살핀다고 한다. 이 세가지가 긴밀히 맞물려 사회적 스트레스를 형성하는데 지금 우리의 사회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제약되어 있고, 상식이 통하지 않고, 미래가 보이지 않은 극심한 사회적 스트레스 상황 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 대중이 느끼는 답답함, 삭막함, 불편함은 과도한 사회적 스트레스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참 슬프고 안타깝지만 그 해결방안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본다면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평범한 교사는 말하고(tell), 좋은 교사는 설명하고(explain), 훌륭한 교사는 시범을 보이고(demonstrate), 위대한 교사는 가슴에 불을 지른다(inspire)고 한다. 앞서 언급한 이러한 지속적인 문제 인식이 그대들의 가슴에 작은 촉매제가 되었으면 한다.


태그:#대한민국 현실, #2040세대, #자화상, #권력, #INS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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