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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 <고구레 사진관> 겉표지
ⓒ 네오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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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거기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 찍힌 사진'을 가리켜서 '심령사진'이라고 부른다. 이미 죽은 사람 또는 살아있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어야할 사람이 사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심령사진이라고 해서 꼭 죽은 유령이 찍힐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인터넷을 떠도는 수많은 심령사진들의 대부분은 죽은 사람들, 또는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어딘가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 찍힌 사진들이다.

어쩌면 이것은 '심령사진=공포물'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자신이 죽은 장소를 떠나지 못한다고 하던가. 그냥 죽는 것도 서러운데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면 그 원통함을 간직한 원혼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다가 산 사람이 자신의 장소에 침입해서 사진이라도 찍는다면 기를 쓰고 그 사진에 얼굴을 내밀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는 아직 여기에 남아있다고, 억울하고 원통해서 이대로는 저승으로 떠나지 못한다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것이다.

오래된 사진관으로 이사 온 가족

미야베 미유키의 2010년 작품 <고구레 사진관>은 이런 심령사진을 소재로 한다. '고구레'는 사진관을 운영하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의 이름이다. 이 사진관이 있던 건물에 어느날 한 가족이 이사를 오게 된다. 열여섯 살의 남학생 하나비시 에이이치와 그의 여덟 살짜리 남동생 히카루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이다.

이 건물은 지은지 삼십삼 년이나 지났다. 사진관을 운영하던 당시의 간판이나 내부장식도 그대로 남아있다. 하나비시 부부는 '독특하고 재미있다'는 이유로 내부장식과 간판도 그대로 둔 채 이 건물로 이사 온 것이다. 그러니까 이 가족의 집은 가게가 딸린 주택인 셈이다.

오래된 건물이라서 그런지 이상한 소문도 돌고 있다. 건물의 가게에서 전 주인인 고구레 씨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고구레 야스지로는 몇 달 전에 여든다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직전까지도 가게는 영업 중이었다. 손님이 없었지만 고구레씨는 새벽 다섯 시에 문을 열고 저녁 일곱 시에 문을 닫는 일과를 반복했다.

그 사진관은 고구레씨의 인생 그 자체였던 것이다. 유령 소문이 돌아도 주변 사람들은 그다지 신기해하지 않는다. 건물이 남아 있는 한 고구레씨의 영혼도 그곳에 머물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 이사 온 가족의 입장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자신의 집에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은 그다지 기분좋은 일이 아니다. 이런 소문을 뒷받침하듯이 이사온 지 얼마되지 않아서 한 여학생이 고구레 사진관에서 인화했다는, 귀신처럼 보이는 인물이 찍힌 사진을 들고 나타난다.

유령의 사진관, 유령의 사진

심령사진이라는 다소 무거워보이는 현상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작품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약간 고지식해 보이는 고등학생 에이이치는 친구와 동생의 도움을 받으며 사진의 정체를 추적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함께 즐거운 소풍을 떠나기도 한다. 그 사진이 에이이치의 인간관계를 넓히고 성장을 도와주는 촉매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심령사진은 카메라 고장이거나 이중 인화 같은 트릭의 산물일 가능성이 많다. 이렇게 과학적으로 해명하더라도 여전히 심령사진은 호기심의 대상이다. 과학은 과학으로 존중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사진에 유령이 찍히는 불가사의한 일도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거기에는 죽는다고 해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 또는 기대가 깔려있다. 고구레씨는 죽은 다음에도 사진관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죽고 나서도 가게에 앉아서 마을을 바라보고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거리를 바라본다.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보고 변해가는 시대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생겨나는 수많은 아름다운 기억들과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들이 고구레씨를 붙잡고 저 세상으로 떠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망자가 찍힌 사진들은 무섭다기 보다는 슬픈 사진들에 가깝다.

덧붙이는 글 | <고구레 사진관> 상, 하.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이영미 옮김. 네오픽션 펴냄.



고구레 사진관 - 상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네오픽션(2018)


태그:#고구레 사진관, #미야베 미유키, #심령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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