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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요즘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여론은 자신들이 설정한 의제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했지만 오세훈의 무상급식주민투표는 뚜껑도 열지 못했습니다. 또한 박원순을 엄청 때렸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조선일보>의 발행부수와 그들이 자랑하는 '영향력'을 고려해봤을 때, 마음이 편치않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현재 국내 종이신문 시장의 최강자인 조선일보의 일평균 발행부수는 180만부. 또한 조선닷컴 일일평균 순방문자수(UV)가 260만명에 달하고, 스마트폰·태블릿PC를 통한 조선일보 뉴스앱 이용자가 1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조선일보 콘텐츠 이용자가 급증하고 있다."('조선일보, 발행부수(180만)·인터넷 독자(260만)·모바일 독자(100만) 모두 국내 1위', 11월 21일 <조선일보>)

 

하지만 <조선일보>는 신뢰도는 매우 낮습니다. 지난 8월 한국기자협회 창립 47주년을 맞아 기자들이 뽑은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로는 <한겨레>(19.2%), KBS(11.7%), <경향신문>(11.6%), MBC(8.3%), <조선일보>(4.5%) 순이었습니다. 영향력 1위라는 신문의 신뢰도는 5위였습니다.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특히 요새는 <나는 꼼수다>라는 인터넷 방송이 '대한민국 1등신문' <조선일보>를 능가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발행부수가 아니라 신뢰도가 핵심이지요. 당연히 <나는 꼼수다>를 600만 명이 내려받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그 방송을 '괴담 진원지'라며 때립니다. 하지만 때리면 때릴수록 <나는 꼼수다>는 인기를 더해질 것입니다. <조선일보>가 독자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나는 꼼수다>를 때릴 것이 아니라 언론으로서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 되는데도 말이죠.

 

그런데 <조선일보>는 그럴 마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자꾸 때립니다. 지난 25일에는 지방법원 한 부장 판사를 향해 "법복을 벗어라"라고 윽박질렀습니다. 

 

11월 25일 자 <조선일보>는 1면 <"FTA추진 대통령, 뼛속까지 친미" 현직 부장판사 페이스북 글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현직 부장판사가 페이스북에 정치 성향이 짙은 글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며 "모 지방법원의 부장판사인 A(45·사법연수원 22기)씨는 지난 22일 국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강행 처리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 22일, 난 이날을 잊지 않겠다'는 글을 올렸다"고 보도했습니다.

 

"판사가 FTA 비판? 법복 벗어라"

 

<조선일보>은 < FTA 통과를 "나라 팔아먹은 것"이라고 한 판사" >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제대로 된 판사라면 그런 경솔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며 "판사가 개인 의견을 밖으로 표현하면 특정 사안에 편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고, 재판에서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이 부장판사가 앞으로 FTA 반대 불법 시위를 하다 기소된 시위대나 FTA와 관련한 행정소송에 휘말린 정부 관계자들을 소송 당사자나 증인으로 불러 재판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그럴 경우 이 판사가 아무리 공정하게 재판한다고 해도 국민들이 공정한 재판이라고 믿어주겠는가"라고 따졌습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이렇게 윽박질렀습니다.

 

"국민들은 법정 안과 밖에서 판사의 언행을 보며 그가 공정한 재판을 할 자질을 갖췄는지를 판단한다. 그래서 법관은 실제로 공정하게 재판해야 하지만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게 싫다면 법복(法服)을 벗는 게 정상이다"

 

알고 보니 "법복 벗으라"는 처음이 아님

 

<조선일보>가 판사를 행해 '법복을 벗어라'고 촉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08년 8월 박재영 전 판사가 '야간집회 금지조항에 대해 위헌 논란이 있는 만큼 자칫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낮 집회는 참여할 것이고 야간에도 합법적인 집회는 참여하겠다' 등의 발언과 함께 '집회 참가자들의 생계가 어렵다'며 보석결정을 내리자 사설을 통해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같은 해 8월 14일 자 '불법시위 두둔한 판사, 법복 벗고 시위 나가는 게 낫다'라는 제목 사설에서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 판사가 불법 촛불시위를 주동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을 재판하는 법정에서 피고인과 촛불시위를 두둔하는 발언을 잇달아 했다"며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건 일반인도 모두 알고 있는 법언이다"라며 "'판사는 구체적 사건에 대해 공개 논평하거나 의견을 밝혀선 안 된다'는 건 모든 법관이 지켜야 하는 법관윤리강령"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이 판사는 일반인도 아는 법의 상식도 모르고, 모든 판사가 지켜야 할 법관윤리강령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란 말이다. 이런 판사가 아직껏 판사 노릇을 하고 있는 사법부의 현실이 놀랍기만 하다"고 탄식까지 빼놓지 않았습니다.

 

또한 "가뜩이나 사법부가 목소리 큰 사람들에 의해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요즘"이라며 " 이 판사는 자신을 그동안 촛불시위에 나가지 못하게 했던 거추장스러운 법복을 벗고, 이제라도 시위대에 합류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압박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법관 이름까지 공개하면서 비판했습니다. 지난 2009년 2월 신영철 대법관이 2008년 10~11월 중앙지법원장 재직시절 촛불집회 관련사건을 맡고 있던 판사들에게 "위헌 제청이 되지 않은 (촛불시위 관련) 사건은 현행법에 따라 재판을 계속 진행하라"는 이메일을 보낸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습니다.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고 했으면서 재판 관여한 신영철은 두둔

 

<조선일보>가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법언을 인용하면서 박재영 전 판사에게 '법복을 벗어라'라고 윽박질렀다면, 재판에 관여한 신영철 대법관에게도 법복 벗으라고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아니 박 전 판사보다 신 대법관 행위는 더 심각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 사건에 색깔론을 덧칠했고, '왜 이메일 내용만 조사하고 이메일 유출 경위는 조사하지 않느냐'고 다그쳤습니다.

 

특히 <조선>은 지난 2009년 3월 18일 '신영철 대법관 이메일 유출 경위도 조사키로'라는 제목 기사에서 '신영철 압력 이메일 유출'한 판사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고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습니다. 언론이 취재원를 보호해야 한다면 당사자를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지난 2009년 1월 한미FTA 비준 동의안 상정에 반대하다가 이른바 '공중부양' 사건으로 고발당했던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에 대해 서울 남부지법 형사1단독 재판부(이동연 판사)는 당시 국회 사무처의 강제 해산이 "적법한 질서유지권 발동이 아니었다"며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2010년 1월 14일).

 

그러자 <조선일보>는 2010년 1월 15일자 '공중부양 강기갑 의원, 황당한 무죄 판결'이란 기사에서 "법원이 국회 폭력에 면죄부를 준 상식 이하의 판결"이라며 "법조계 일각에선 이번 판결이 판사 개인의 정치적 신념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반응까지 나왔다"고 비판했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사진'도 공개해버려

 

또한 2010년 1월 14일 서울고등법원 형사 7부(이광범 부장판사)가 2009년 1월 발생한 '용산철거민참사' 수사기록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조선일보>는 '강금실씨 등과 함께 우리법연구회 창립 맴버'라는 제목의 기사로 항소심 재판장 이광범 부장판사의 사진을 실었습니다.

 

그러면서 "박시환 대법관, 강금실 전 법무장관 등과 함께 이른바 '진보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를 만들었다"며 "용산사건 재판은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변호인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문제삼았습니다. 그들의 정치성향을 꼬집으며 색깔론 적용시킨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이처럼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가 내리는 판결이 자신들의 성향과 맞지 않으면 사진을 공개하거나, 법복을 벗으라고 윽박지릅니다. 이번 한미FTA 비판 글을 올린 판사도 우리법연구회 소속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지난 25일 "법원 내 이른바 '진보성향' 법관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간부인 A부장판사의 글에는 두 시간 만에 다른 우리법연구회 회원인 B부장판사(42·연수원 23기)와 검사 출신 C변호사 등 13명이 '좋아요'라고 공감을 표시했다"라며 우리법연구회를 부각시켰습니다.

 

<조선일보>에게 우리법연구회는 눈엣가시

 

지난해 9월 3일 헌법재판소는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낸 지방자치법 제111조 제1항 제3호, 즉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고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경우' 자치단체장 직무를 정지시키고 부단체장이 권한을 대행토록 한 조항은 헌법불합치라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조선일보> '이광재 지사직 언제까지… 대법원의 판결에 달렸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지사 사건 주심은 개혁 성향의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를 만든 박시환 대법관이다"라며 우리법연구회에 괜히 딴죽을 걸었습니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을 좌파성향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지난 2009년 8월 15일 뉴라이트 계열의 보수단체인 자유주의진보연합이 개혁적 판사 연구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원들이라며 판사 125명의 명단을 공개하고 이들에 대한 색깔 공세를 폈습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같은 달 18일 '우리법연구회 회원 명단 공개해야 마땅하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1988년 시작한 우리법연구회는 몇 차례 정치적 고비에서 집단행동을 통해 사법부의 당시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며 추켜세우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론 줄곧 사법부에 정치와 이념의 분열을 초래했다는 논란의 한가운데 있었다"며 "지난 두 정권에선 이 조직 출신이 법원과 정권 요직에 등용되면서 권력화 성향이 두드러지기도 했다"고 우리법연구회를 권력을 추구하는 모임으로 몰아갔습니다.

 

특히 사설은 "작년 말 불거진 신영철 대법관 재판 개입 파문 역시 이 조직 소속 법관들이 법원 내부통신망에 잇따라 의혹을 제기하고 궐기를 촉구하는 글을 올려 증폭된 측면이 있었다"며 "대한변호사협회까지 지난 5월 '법원 내 이념적 사조직은 해체해야 한다'는 성명을 낸 것을 보면 이 조직을 바라보는 법조 내부의 우려를 짐작할 만하다"면서 명단을 공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재판에 관여한 신영철 대법관과 이를 지적한 판사들 중 어느 누가 사법부를 욕보였는지 안다면 우리법연구회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신영철 대법관을 비판해야 합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우리법연구회에 딴죽을 걸었습니다. 황당함 그 자체이지요. <조선일보>가 신뢰도 5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앞으로 쭉 그렇게 가면 발행부수도 5위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조선일보, #우리법연구회, #한미 FTA,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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