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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낡은 연습용 가야금 한 대가 있다. 지금부터 십여 년 전, 국악원에서 가야금을 배울 때, 선배의 작업실에서 그야말로 집어온 것이다.

집에 오는 아이의 친구들은 하나 같이 이 가야금에 호기심을 드러낸다. 줄을 한 번 퉁겨 보는가 하면, 점잖게 가야금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폼(?)을 잡기도 한다. 가야금에서 흘러나오는 청아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가야금을 배우는 아이는 드물다.

우선 초등학교 2학년 짜리 아들 녀석부터 가야금은 여자들이 배우는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 황병기 선생의 연주 모습을 보여 주어도 요지부동. 제 엄마가 쓴 국악방송 프로그램을 들으며 자랐지만, 가야금 같은 국악기를 배울 생각은 별로 없는 듯하다. 간혹 국악 음악회에 데리고 가면 온몸을 배배 꼬며 말한다.

"엄마, 언제 끝나요?"

지난 몇 년 간 국악에 관한 글을 써왔지만, 이런 상황 앞에서는 난감하기만 하다. 국악과 그리 멀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이럴 정도니, 갈 길이 아주 멀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아이와 품앗이 공부를 같이 하는 시우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었다.

"오늘 가야금 배우러 가는 날이에요!"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일어서는 시우의 얼굴에 살짝 화색이 도는 듯도 했다.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은 시우에게는 아주 드문 일.

10살 시우가 피아노 아닌 '가야금' 배우게 된 이유

초등학교 3학년인 시우.
 초등학교 3학년인 시우.
ⓒ 문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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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인 시우가 가야금을 배우게 된 이유는 좀 특이했다. 처음부터 국악에 관심이 있었거나 가야금이란 악기에 매력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시우에게는 한 살 위의 언니와 늦둥이 남동생이 있었는데, 욕심 많고 뭐든 잘 해내는 언니와 어리광쟁이 남동생 사이에서 시우는 점점 말수가 적어졌다. 수업 시간에 손을 들고 발표를 하는 일도 드물었고, 묻는 말에도 어물어물 대답하는 일이 많아졌다.

시우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는 일이 무엇일까? 시우 엄마는 고민 끝에 가야금을 가르치기로 결정했단다. 이야기인즉슨, 피아노 같은 악기를 잘 다루는 아이들은 흔하지만 가야금을 배우는 아이들은 그에 비해 많지 않기 때문에 시우가 자신감을 갖는 데 도움이 되리란 생각이었단다.

마침 가까운 문화 센터에 가야금 강좌가 개설됐고, 시우는 여물지 않은 손가락으로 가야금을 배우게 된 것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시우는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

"언니보다 가야금은 잘 해."

시우의 목소리는 조금씩 커지고 표정도 밝아졌다. 꼭 가야금을 배웠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우네 식구들은 의식적으로 시우를 많이 칭찬해주고, 시우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려고 노력했으니까. 하지만 가야금이란 악기가 시우에게 좋은 친구가 되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가야금이 시우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가야금 악보.
 가야금 악보.
ⓒ 문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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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가야금은 시우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쳤던 걸까? "좋은데, 참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하는 광고 문구처럼 마냥 그냥 좋은 것은 아니다. 하나씩 따져보면 시우에게 가야금이 얼마나 약발(!)이 좋은 악기였는지 살펴볼 수 있으리라.

먼저, 가야금은 나무와 실로 만들어진 자연에서 온 악기이다. 오동나무로 만든 울림통과 명주실을 꼬아 만든 가야금의 줄은 마음 안정에 많은 도움을 준다. 금속성 소재를 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재료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야금연주단의 음악을 통한 태교 실험 결과 가야금 선율이 뇌파 중 하나인 알파파에 긍적적 효과를 불러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단 시우뿐 아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늦은 시간까지 학교로, 학원으로 순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의 정서는 갈수록 메말라 가고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가야금 선율은 자연의 순박함을 느끼게 한다. 아스팔트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잠시나마 바람 부는 강가에 서 있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 가야금은 감정 조절에 아주 좋은 악기이다. 가야금은 피아노처럼 고정음이 있는 악기가 아니고 음을 만들어가는 악기이다. 가야금에는 정해진 '도'가 없지만 '레' 줄을 눌러 '도'음을 만들 수 있다. 피아노나 다른 서양악기와 달리 미분지음이 가능하기에 연주자가 힘을 조절하는 것으로 음을 나눠 반음, 반의 반음, 반의 반의 반음까지도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가야금을 조율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의 감정과 정서까지 조율할 수 있게 해준다.

봇물처럼 갑자기 터지는 분노. 버럭 화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아이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아이들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확한 음을 낼 수 있도록 연습을 하는 과정은 자신의 감정을 고르는 훈련이기도 한다. 줄을 누르는 정도에 따라 선율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자연스레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똑소리 나는 언니와 한참 어린 남동생 사이에서 시우 마음에 자신도 모르는 감정의 응어리가 쌓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야금 줄을 고르면서 시우는 마음을 달래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시우 엄마가 가야금을 추천한 가장 큰 이유는 손가락 자극이었다. 손가락 끝을 이용해 연주를 하는 가야금은 손 운동에 그만이다. 손가락 운동이 뇌를 자극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처음에는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아프지만 가야금을 배우면서 손끝이 여물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단다.

화가 김희겸이 그린 그림으로, 조선시대의 무신인 석천 전일상(1700∼1753)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 석천한유도(石泉閒遊圖) 중 일부 화가 김희겸이 그린 그림으로, 조선시대의 무신인 석천 전일상(1700∼1753)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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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세 교정. 조선 후기의 화가 김희겸이 그린 '석천한유도'를 보면 가야금을 연주하는 여인네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단정하게 앉은 모습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텔레비전 앞에서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아이 때문에 걱정이 많은 부모라면, 가야금 앞에 한번 앉혀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우선 허리를 펴고 꼿꼿이 펴고 앉는 것에서부터 가야금 연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우가 연습하는 가야금 곡들도 시우에게는 작은 기쁨이 됐다. 시우 역시 또래 아이들처럼 소녀시대를 좋아하고, 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하지만 가야금을 배울 때 연주하는 민요도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 가야금을 배우면서 '흥타령'이나 '도라지 타령' 같은 교과서에 나오는 민요들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국악을 알아야 정체성을 기를 수 있다."

암만 입이 아프게 떠들어 봐도 초등학생들이 스스로 국악을 찾아듣고 즐기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 악기 가야금을 배우는 가운데 시우는 "국악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깰 수 있었던 것이다.

"아들아, 너도 가야금 한 번 배워볼래?"

시우가 가야금을 배우러 문화 센터에 다녀온 날, 나는 가야금이 나오는 옛이야기 한 편을썼다. 당장 우리 집에 서식하는 '초딩'부터 국악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 점잔을 빼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습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말이다. 그것은 아이를 닮은 엉뚱하고 고집 센 주인공인 꾸불꾸불 이야기 고개를 넘어가며 가야금과 만나는 옛이야기였다. 아이에게 읽어주니, 장배라는 주인공에게 썩 마음을 뺏긴 눈치였다. 내친 김에 슬쩍 말을 건네 본다.

"너도 가야금 한번 배워볼래?"

시우 누나가 연습하는 것을 봐서인지, 아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인지는 몰라도, 전처럼 고개부터 내젓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국악에 흥미를 갖고, 시우처럼 국악기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오면, 그 만남이 아이들에게 축복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정말 좋은 것은 직접 경험해보면 알 수 있는 일, 아이들이 국악기와 만나는 기회가 점점 많아지길 바란다. 

가야금 이야기
7세기 무렵, 가야의 가실왕은 악사 우륵에게 명해 새로운 현악기를 만들게 했다. 당시 가야는 신라의 침공으로 망국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을 때였다. 가실왕은 무력을 기르는 대신 새로운 악기를 만들어, 여기에 우주와 자연의 원리를 담으려 했다.

가야금의 울림통이 위가 둥그스름하고 밑면이 평평한 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야금 줄을 받치고 있는 것이 안족(기러기 발)인 것은 기러기가 대오를 이루며 하늘을 나는 것처럼 음악의 질서를 찾고자 함이다. 그리고 안족의 높이가 세 치인 것은 천지인(天地人)을 상징하며, 가야금의 줄이 12줄인 것은 일 년이 열두 달임을 나타낸다. 이처럼 가실왕이 생각하는 가야금은 일상의 음악 도구를 넘어서는 아름다움과 철학적 상징이었다.

이에 우륵은 가야의 각 고을이 다른 말을 쓰는 것처럼 그 고을의 특징을 담은 열두 곡조를 지어 바쳤다. 이것은 마치 한글을 창제하던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가실왕의 바람과는 달리 가야는 망국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우륵은 새로운 악기를 가지고 신라로 투항하게 된다. 우륵의 행보를 두고 이런 저런 말들이 많지만, 적어도 가야금이라는 악기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태그:#가야금, #시우, #국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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