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신발을 벗고 가는 참가자들도 있다.

간혹 신발을 벗고 가는 참가자들도 있다. ⓒ 유지성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사막, 오지를 왜 그리 자주 가세요? 힘들지 않나요?"

물론 힘들 때도 많고 생각보다 힘들지 않을 때도 많다. 그보다는, 사람은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열심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나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남들이 부러워 미치게 만드는 것, 그게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이다.

오랜 시간 대회를 참가하다 보면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첫 번째는 처음부터 "힘들면 적당 할 때 포기하렵니다"와 "힘들어도 끝까지 버티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두 가지 상반된 형태의 사람들이다.

나는 10년간 다양한 대회 경험을 쌓으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척 보면 그 사람의 한계점을 알 수가 있는 선구안이 생겼다. 그리고 힘에 겨워 마치 쓰러질 것 같이 보이는 사람도 몇 가지 조언과 도움만으로도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 달려나가게 만드는 능력도 생겼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의지력이 강한 사람만 해당되지 처음부터 포기한다는 사람은 절대로 현장에서 도와주지 않는다. 나의 원칙이자 철학이다.

 매일 아침 이어지는 좀비들의 출몰.

매일 아침 이어지는 좀비들의 출몰. ⓒ 유지성



 마지막 코스는 트루판 지역을 달렸다.

마지막 코스는 트루판 지역을 달렸다. ⓒ 유지성


생각보다 수월했던 3일간의 레이스가 끝나고 대회 4일째부터는 본격적인 모래와 더위와의 한판 싸움이 시작됐다. 처음부터 덥거나 하여 사막 지역에서 기온 차이를 못 느끼면 그 환경에 쉽게 적응이 되는데 이번의 경우 초반에 비를 만나다 보니 기온 적응에 상당한 애를 먹었다. 영상 2도까지 떨어진 추위에 적응 할만하니 하루 아침에 갑자기 영상 50이상을 찍어버린다. 어제까지 산악구간을 달리다가 막판에 좀 더워지나 싶었는데 이건 뭐 대책이 없을 정도로 진짜 더위가 시작됐다.

대회 4일째. 초반은 10km거리의 거대한 모래언덕을 직선으로 넘어가야 한다. 다행히 이른 아침의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서 태양이 가려져 있다. 하지만 언제 구름 넘어 태양이 나타나 모든 사물을 태워 버릴지 모르기에 초조하기만 했다. 모래지역에서 영상 50도가 넘는 태양을 만나면 평상시보다 체력 소모와 갈증이 심해지기에 빨리 벗어나야 한다. 결국 승부는 태양이 나타나기 전에 모래언덕을 넘어 다음 구간으로 이동하냐 못하냐에 달려 있었다.

높이 수십 미터에서 100미터가 넘는 거대한 모래산. 두발로 때론 두손까지 동원하여 기어서 올라가야 하는 모래 언덕들이 끝도 없이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하면서 거대한 모래언덕들을 넘어가지만 자꾸만 태양이 신경 쓰여지기에 연신 하늘만 쳐다본다. "모래 언덕이야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구름이 없어지면 어쩌나?" 자꾸만 자꾸만 걱정이 늘어갔다. 하지만 꾸준히 서두른 덕분에 태양이 세상의 문을 열고 인사할 찰나 다행스럽게도 모래언덕을 벗어날 수 있었다.

체크포인트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뒤에 도착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너무나 힘들어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하루 제대로 된 고비사막의 맛을 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첫번째 체크포인트에서 잠시 쉬고 길을 가는데 팝콘 터진 듯이 모래가 달궈지는 소리가 들린다.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모래지역에서는 아무래도 속도가 안 난다. 높다란 모래 언덕은 없지만 작은 언덕의 모래밭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물은 떨어져 갈 때 낙타에 물을 실은 운영요원들이 나타났다. 조금만 더 가면 체크포인트가 있다고 하기에 힘을 내어서 뛰어갔다. 정말로 저 앞쪽으로 텐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보통 대회에서 다 왔다 하면 앞으로 최소 2~3km 심지어는 그 이상 남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정말로 얼마 안 가서 텐트가 나타났다.

이럴 경우는 이유가 있다. 분명 더위로 인해 참가자들의 신상에 뭔가 이상들이 생기고 있다는 소리다. 체크포인트에 도착해서 첫번째로 눈에 보이는 텐트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그늘이 있는 구석에서 무조건 잠을 청했다. 그 당시 느낌은 급격하게 상승하는 온도에 내 몸이 적응하기도 전에 타 죽을 것만 같았다.

 어마어마한 높이의 모래언덕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어마어마한 높이의 모래언덕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 유지성



 모래언덕을 오르는것도 낭만이 있다.

모래언덕을 오르는것도 낭만이 있다. ⓒ 유지성


"얼마나 잠을 잤을까?" 주위의 소란스러움에 눈을 뜨니 뒤에 따라오던 박영선 누님, 신미경씨, 정화, 재은이 속속 도착했다. 모두 처음 만난 더위에 한방 카운터 펀치를 얻어 맞은 듯 보였다. 거친 호흡과 구토 증상, 의욕 상실에 피곤과 스트레스까지… 전형적인 더위로 인한 탈수 증세다. 무기력한 그 상태로 조금만 더 가면 그땐 정말로 쓰러진다. 이럴 때는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뭔가의 장치가 필요했다.

그때 다행히 샤워기가 생각났다. 샤워기는 생수 병에 바늘로 구멍을 뚫어 만드는데 더울 때 온몸에 물을 뿌려 냉각 효과를 주고 물도 절약해서 오랜 시간 사용할 수 있는 사막의 필수 용품이다. 최고 어르신인 이무웅님께서 2005년 고비사막에서 만들어 실전에 사용했는데 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은 아이디어 용품이다.

널부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샤워기를 하나씩 만들어서 전달을 했다. 입맛이 없더라도 물과 음식을 먹게 했다. 또한 에너지 보충제를 먹여서 빠져나간 전해질과 에너지를 보충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누군가 힘들어 할 때는 "나도 당신과 같은 상황이지만 이겨내려고 노력 하고 있다"라는 동질감과 용기를 주어 다시금 목표를 찾는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이런 건 꼭 사막에서만이 아닌 일상의 우리들 세상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하고 길을 나서는데 옆 텐트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쉬고 있거나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한국 참가자 한 분도 계셨는데 더위에 혈압이 너무 높아져서 기권한다고 한다. 오늘 같이 뜨거운 날은 무더기 탈락이 나와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정상이다.

결국 한국팀은 16명 중 3명이 탈락했다. 전체적으로 봐도 완주율이 70% 정도 간신히 나왔는데 10명 중 3명은 어떠한 이유로 간에 탈락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그나마 대회 2일째 코스가 줄어서였지 만약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면 60% 정도 완주를 했을 것 이다.

 한무리의 낙타때들이 모여있다.

한무리의 낙타때들이 모여있다. ⓒ 유지성



 모든 참가자들은 분홍 깃발을 보고 길을 찾는다.

모든 참가자들은 분홍 깃발을 보고 길을 찾는다. ⓒ 유지성


대회를 참가해보면 어느 순간 몸이 반응하는 정점이 있다. 대회 4일째가 그랬다. 한바탕 더위로 고생하더니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면서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발에는 물집 하나 없고 컨디션도 살아나고 체력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도 될 만큼 충분하기에 캠프까지 남아 있는 마지막 구간 거의 10km를 미친 듯이 달렸다. 이제는 더 이상 나에게 더위는 문제가 되지를 않는다는 신호다.

그런데 코스 중간 중간에 더위를 먹고 쓰러진 참가자들이 꽤 있었다. 그때마다 샤워기를 이용해 얼굴과 목, 가슴 등에 물을 뿌려줬다. 정말로 몇 명 죽어가는 것 살려줬는데 저녁에 고맙다고 텐트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머리 속에는 대한민국이 고마운 나라로 인식됐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를 감동시킨 일이 있었다. 대회 4일째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모두 3명의 한국 여성이었다. 한 명은 재미교포, 2명은 정화와 재은. 그들이 마지막 체크포인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제한시간을 넘겼다. 하지만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았기에 끝까지 갈수 있다는 요구를 했다고 한다.

운영요원들은 본부와의 무전을 통해 그들에게 1시간의 여유시간을 주었다. 그들은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해서 모두 1시간 내에 남은 거리를 달려왔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우리들은 환호를 올리며 그들의 용기와 끈기에 감동하고 골인을 축하해줬다.

사람들은 고단한 일상 속에서 여유를 찾으려 애쓴다. 그러면 막상 시간이 주어졌을 때 어떻게 하는지? 쉰다, 잔다, 먹는다, 그냥 논다, 여행을 떠난다, 기타 등등... 많은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자세히 듣다 보면 우리는 여유라는 걸 잘 모르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일단 사회가 급하고 눈치를 봐야 하는 것들이 많다 보니 자신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독단적으로 뭘 어찌할 줄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유는 무엇인가? 사람이 진정한 여유를 찾으면 피곤하지 않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오지레이스를 참가해보면 사진을 찍는 사람이나 찍히는 사람 모두 너무나 즐거워한다. 그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말이다. 왜 그럴까?

이상하게도 오지레이스를 참가하면 잊어버린 배려와 여유를 찾게 되는 오묘함이 숨어 있다. 물론 꼭 100% 맞다 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뭔가 새로운 활력과 여유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겐 분명 색다른 세상이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화염산 뒷골목을 누비는 마지막 코스.

화염산 뒷골목을 누비는 마지막 코스. ⓒ 유지성


 고비사막 레이스 로고, 메달, 패스포트

고비사막 레이스 로고, 메달, 패스포트 ⓒ 유지성


대회 5~6일은 사막레이스 하이라이트인 100km롱데이(제한시간 30시간) 날이다. 코스는 전세계에서 사해 다음으로 해발(-154m)이 낮다는 투루판 지역을 달려 마지막엔 불타오르는 화염산으로 골인한다. 2005년에도 경험해봤지만 그곳의 소금사막을 지날 때는 정말 더웠다. 역시나 올해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더웠다. 뭐 그냥 더운 정도가 아니라 아주 화끈하게 더웠다. 그 결과 탈락자도 아주 많이 생긴 1박 2일이었다.

대회 마지막 날은 화염산 뒷동네를 죄다 휩쓸고 다녔다. 영화 인디애나존스를 찍는 장소처럼 다양한 협곡과 골짜기 사이로 요리조리 헤집고 다니는 코스였는데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선두권 일부는 출발시간이 약간 늦었다. 그래서 가다 보면 광속 스피드로 뒤따라 오던 선두권과 좁은 협곡 안에서 만나게 되는 일이 생겼다. 그러면 그럴 때마다 서로 환한 웃음을 주고 받으며 서로 길을 비켜주었다. 바라만 봐도 미소가 저절로 생기는 흐뭇한 광경들이다.

2011년 고비사막 레이스에서는 한국의 새로운 꿈나무를 발굴한 수확이 있었다. 바로 홍순기씨인데, 첫 출전에 전체 5위 연령대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개인적으로는 18번의 오지레이스를 완주했으며, 16명의 선수, 2명의 자원봉사, 2명의 방송팀의 참가로 인해 앞으로도 더욱 많은 한국사람들이 도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고비사막은 나의 18번째 오지레이스 도전인데 고비 찍고 19번째로 10월 사하라 사막을 달리러 떠난다. 지금까지 운좋게 한 번도 탈락 없이 모든 대회를 완주했다. 물론 성적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성적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 도전을 통해서 내 안에 살아 있는 또 다른 나의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고로 나는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한다. nothing but everything. 오지가 사막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다.

 모래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참가자들

모래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참가자들 ⓒ 유지성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월간아웃도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유지성 고비사막 오지레이스 중국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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