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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북한 경유 가스관 설치 합의의 배경

2011년 11월 2일 이명박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정상회담에서 한국과 러시아 정부는 가스관 설치에 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여건이 조성될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할 것을 표명하였다. 러시아 가스프롬 발표에 따르면 가스프롬과 한국가스공사는 2013년 9월 러시아의 사할린-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토크 그리고 북한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연결되는 가스관 공사를 착수하며 2017년 가스 공급을 시작하는 일정에 대하여 합의했다.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관 설치와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 사업은 얼마나 현실적이며 한국, 북한, 러시아에게 있어서 어떠한 경제적, 지정학적 의미를 갖는가? 또한 6자회담 재개에 있어서 러시아의 입장과 의지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명박 대통령과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미 2008년 9월 가스관 건설 공사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의 비판적 반응 외에도 북핵문제, 천안함, 연평도 사건 등 남북관계의 경색에 따라 답보상태에 머물렀다. 가스관 사업이 다시 구체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2011년 8월의 북러정상회담이었다. 정상회담 당시 북한은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관 설치 제안에 예상 외로 적극적으로 호응하였으며, 이에 메드베데프대통령은 러시아정부 산하에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가스관 설치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여 왔다.

지난 9월 한국가스공사와 러시아 가즈프롬 간에는 '러시아 PNG 로드맵'에 대한 합의가 있었으며 10월 26일에는 한·러 양국의 장관급이 참석하는 '제11차 한·러 경제과학기술공동위원회'를 열고 가스관 설치를 위한 양국 간 협력에 대하여 합의하였다.

이렇게 가스관사업이 가속화된 것은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입장변화가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는 지난 20여 년간 북핵문제를 비롯한 동북아 안보레짐에서 비교적 소극적인 노선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2009년 제3차 북핵 위기와 미국의 정권교체 이후 본격화된 북미대화 등을 전후하여 러시아의 대 동북아노선 및 대 한반도노선에는 감지할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는 동북아에서의 미국 헤게모니 견제라는 러시아 외교노선 강화와 한편으로는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이례적인 비판, 동시적인 북·러관계 정상화 시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핵문제 및 한반도문제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개입의 형태로 표출되어 왔다.

천안함 사건 대응에서도 러시아는 한반도문제에서의 자국의 영향력을 국제적으로 가시화하는 데 주력한 바 있다. 또한 대북 식량지원의 규모를 확대하고 무조건적 6자회담 조기 재개를 주장하는 북한을 두둔하는 등 북·러 공조체제를 점차적으로 강화해 왔다. 이러한 러시아의 적극적 대북노선 선회는 궁극적으로 지난 8월, 9년 만에 북·러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북·러관계가 정상화되는 데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 전격적으로 가스관 설치에 동의하게 된 배경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왜 북·러관계의 정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가? 최근 러시아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는'전략적 세계전망 2030'특별보고서에서 북한의 붕괴가 가속화하여 2030년대 한국에 흡수통일될 것으로 전망하였으며 이 보도는 한국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으며 북한붕괴에 대한 낙관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특히 IMEMO가 대표적인 국책연구소라는 측면에서 이 보고서는 러시아당국의 공식적인 입장처럼 확대 해석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미 20년 전부터 북한붕괴론이 제기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건재해 왔을 뿐만 아니라 최근 북한의 경제상황은 오히려 북·중교역의 빠른 확대에 힘입어 상당 부분 회복되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지난 11월 3일 일본 중의원 부의장은 방북을 앞두고 북한과의 국교재개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모든 정황은 북한의 조속한 붕괴를 예고하기보다는 오히려 북한이 제3차 북핵위기 이후 사실상 비공식적 핵보유국으로서의 국제적 지위를 확보하고 나름대로의 정치·경제적 안정기에 접어드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게 한다. 러시아가 전격적으로 가스관사업을 추진하는 것 역시 비교적 장기적인 북한체제 유지 가능성 판단과 이에 근거한 북·러관계의 정상화 추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보인다.

Ⅱ. 북한과 러시아의 지정학-지경학적 셈법

러시아는 가스관사업을 통하여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정학적, 경제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적극적으로 가스관사업 실현을 추진하고 있다. 1000km의 가스관 중 700km는 북한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가스관 사업은 동북아의 지정학적 구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사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이해관계 외에도 러시아는 이 사업을 통하여 극동시베리아 개발과정에서 한국, 북한, 러시아의 3국 간 경제협력을 추동할 수 있다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특히 사할린과 이르쿠츠크를 비롯한 동시베리아와 극동지역 가스전 개발은 동북아 국가들의 천연가스 수요를 겨냥하여 진행되는 사업이다. 이번 가스관 설치와 천연가스 수출이 현실화될 경우 러시아는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ESPO)', '동부 가스 프로그램'(Eastern Gas Program), 중국의 다칭(Daqing) 송유관을 잇는 동북아시아 천연가스 시장 개척에 있어서의 또 하나의 큰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북한 역시 최근 들어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에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주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무엇보다도 러시아에 대한 신뢰회복과 에너지 및 경제협력의 필요성 외에도 중국에 대한 일방적이고 전적인 경제 의존상황 개선의 의지로 해석된다. 내년을 강성대국의 해로 선포한 북한은 경제발전에 주력하고 있으며 러시아와의 가스, 에너지, 철도산업에서의 적극적인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와 북한은 시베리아횡단철도(TSR)과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사업의 첫 단계로서 러시아 국경도시 하산과 북한의 나진을 잇는 50km의 노후화된 철로를 현대화하는 사업을 추진하였다. 나진-하산 철도는 동북아로 연결되는 러시아의 수송로 확보라는 차원에서 북한이 러시아의 적극적인 동북아정책 노선에 부응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준다. 지난 10월 13일에는 이 철로 현대화사업이 완료되어 시범열차 운행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전격적인 북·러관계의 정상화와 양국 간의 협력은 북한의 러시아 관련 보도기사가 보여주는 적극적인 논조에도 반영되고 있다. 2011년 10월 12일 노동신문은 김정일의 방러를 "북·러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는 중대한 사변"이자 "두 나라 사이의 친선협조, 선린우호관계를 더욱 강화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확고한 담보"로 평가하였다.

이러한 양국 간의 밀착은 양국이 합동군사훈련에 대한 합의에까지 도달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근본적인 변화를 동반하고 있다. 지난 9월 13일 아사히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북한과 러시아는 이르면 올해 전투기 조종사 조난을 대비한 수색구조에 있어서 양국 간 합동군사훈련을 개시하는 데 합의했다고 한다. 이는 지난 8월 방러 당시 김정일의 본격적 합동군사훈련 제안이 부분적으로 수용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Ⅲ. 한·러정상회담 합의 분석 및 평가

러시아와 북한의 적극적인 주도 하에 진행되고 있는 가스관사업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물론 한국 역시 에너지 수급문제라는 절대적인 당면과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러시아의 적극적인 주도와 북한의 전향적 노선 선회를 환영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스관 사업의 현실화, 그리고 그 실질적인 지정학적 파장의 성격은 다양한 국내적, 국제적 변수에 달려 있다.

무엇보다도 가스관 사업의 현실화는 북한의 국내 정세에 대하여 러시아가 얼마나 실질적인 통제력을 확보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북·러관계의 정상화와 양국 간 밀착에도 불구하고 북한 내부정세에 대하여 러시아가 갖고 있는 통제력의 한계는 여전히 비교적 명확하다. 양국 간의 경제협력은 2005년 2억3320만 달러에서 2009년 4940만 달러 등으로 계속 감소해 왔으며 2010년의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아직 9870만 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북한 대외무역의 약 82.5%를 차지하고 있는 북중 교역액의 규모가 34억6600만 달러에 달한다는 점을 볼 때 러시아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또한 가스관 사업이 실제로 현실화된다고 하더라도 이 사업이 한국에 어떤 지정학적 의미를 갖고 있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러회담 당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의 안전성은 보장된 것이 아니며, 문제는 북한으로부터만 야기되는 것도 아니다. 러시아는 지난 2006년과 2009년 천연가스 가격을 둘러싼 갈등과정에서 우크라이나를 경유하여 유럽으로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가스관을 차단하는 등 에너지사업이 갖고 있는 안보 전략적 요소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2013년 러시아 대통령선거에서 푸틴의 당선이 유력시되는 현재 러시아의 에너지민족주의는 당분간 더 강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한국의 에너지 의존도가 강화될 경우 파생될 수 있는 안보위협의 문제를 우려하게 만든다. 위와 같은 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가스관 사업에 대한 상당히 치밀한 검토와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위와 같은 다양한 변수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가스관사업이 비교적 가시적인 한·러정상회담의 성과로 평가될 수 있는 반면 6자회담 문제에 있어서는 이번 한·러 대화는 큰 진전을 가져오지 못하였다고 보인다.

북핵문제는 비핵화 사전조치를 요구하는 한미 당국과 무조건적인 6자회담 조속 재개를 주장하는 북한 간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음으로써 지속적인 답보 상태에 있다. 특히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중단 문제는 양측 간 대립 구조의 핵심 사안이며 북한은 지속적으로 우라늄 농축을 전기 생산을 위한 평화적 핵활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0월 27일 제네바 북미대화에서 북한은 모종의 대가를 전제로 하는 우라늄농축프로그램 중단 가능성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였으나, 이 역시 상호 요구사항의 이행 순서에 대한 전격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문제 해결의 진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북핵문제는 지난 7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첫 남북 비핵화회담의 개최, 중국 베이징에서의 제2차 남북비핵화회담의 개최, 제네바 북미고위급회담 등이 진행되었지만 결국 핵심적으로는 북미관계의 틀 안에서 논의되고 있다.

위와 같이 북미대화로 북핵문제 해결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지난 10월 27일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남북한과 러시아 측의 연쇄회담은 "한-러 양측이 6자회담 재재 여건 조성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는 원론적인 결론으로 종료된 바 있다. 이번 한·러대화에서도 역시 6자회담에 관련된 의제는 양국 간의 협력을 강조하는 원론적 언급이 있었을 뿐이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에서 예정되었던 공동선언문 채택이 결렬되었다는 점은 더욱 시사적이다. 

Ⅳ. 한국의 대응 제언

그러나 한·러회담이 별다른 가시적 성과 없이 끝났다는 점은 단순히 북미관계가 핵심적 고리라는 구조적 한계로만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북핵문제에 있어서 동북아의 미국 헤게모니 견제와 NPT레짐 방어라는 거시적 안보노선을 추구하며 이 과정에서 표면적으로는 상당히 모순된 정책노선을 표방하기도 한다. 즉, 러시아의 북한 핵개발 반대는 북한의 핵개발과 핵보유국으로서의 국제적 위상의 제고가 궁극적으로는 그에 대항한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과 한미일동맹의 강화 및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패권적 지위의 강화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심각한 우려에 기인한다.

따라서 러시아의 북한 핵무기 개발 비판이 한국에 또는 한미동맹에 협조적인 정책노선으로 귀결되리라고 볼 수는 없다. 특히 북·러 공조체계가 빠른 속도로 강화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러시아는 오히려 무조건적인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주장하는 중국과 북한의 입장을 보다 두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 동안 러시아는 한편으로는 한미일의 '비핵화 사전조치' 주장을 명시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무조건적인 6자회담 조속 재개를 주장하는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기도 하는 등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다소 모호한 입장을 견지하여 왔다. 그리고 이는 러시아의 궁극적인 노선에 대한 한국 내에서의 다양한 해석과 논쟁을 야기해 왔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북한의 사전조치 이행을 둘러싼 한미와 북한 간 갈등 중재를 시도함으로써 한국에 유리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한다. 그리고 북·러 간의 밀착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전반에 대한 러시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상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북한에게만 유리한 입장을 취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한국정부에 대하여 상당히 냉랭하고 미온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던 지난 천안함사건이 시사하고 있듯이 한국에 일정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번 한·러정상회담에서 한·러 양국이 '협력'이라는 지극히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선언 이상의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였다는 점은 러시아가 향후 6자회담 재개 과정에서 북한에 보다 편향된 입장을 표방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덧붙이는 글 | * 코리아연구원 현안진단 204호입니다.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www.knsi.org)에서 원문 및 풍부한 참고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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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러정상회담, #가스관사업, #북러관계, #코리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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