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즉생(死卽生)이요 생즉사(生卽死)'란 말이 있습니다. 죽을 각오로 나아가면 살고, 살려고 발버둥 치면 죽게 된다는 말입니다. 충무공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 나오는 말입니다. 저는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죽 지켜보면서 이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야권단일 후보 박원순이 꼭 이겨야 한다는 결의(決意)에서 한 생각이 아니라 상대편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의 네거티브 선거운동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이런 것입니다. 정말 살려고 무던히도 발버둥치는 모습이 바로 '생즉사' 의 결과를 가져올 것 같은 예감입니다.

 

저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후보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아니, 이런 형용 모순이 어디 있습니까? 지면 지고 이기면 이기는 것이지,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랴뇨.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총알 없는 전쟁터에서 가당치도 않은 말로 들릴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악을 선으로 대하고 검은 것을 하얀 것으로 대하라는 말입니다. 네거티브를 포지티브로 대응하라는 주문이었습니다. 박원순 후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그럴 때 좋은 결과는 선하고 하얀 후보, 포지티브 선거 운동을 한 사람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었습니다. 박원순 후보는 이것을 잘 지켜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중요한 선거는 후보 대 후보의 대결이 아니라 계층과 계층의 대결, 계급과 계급의 승기(勝氣)잡기, 구조적 악과 그것에 저항하는 집단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불의한 정권 하에 치러지는 선거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과거 군사정권 때 치러진 선거가 그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오늘(10월 26일) 치러지는 서울시장 선거도 예외가 아닙니다. 나경원과 박원순의 단순 대결이 아니라 온갖 수단과 방법을 한 손에 거머쥔 거대한 권력 커넥션과 왜소한 시민후보 박원순의 대결입니다. 정(政)-경(經)-언론(言論)에 중립의 한 가운데 있어야 할 관(官)까지 유착하여 날뛴 선거판이었습니다. 그것은 선거운동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성을 상실한 정부 여당, 그들의 든든한 자금 줄인 재벌, 거기에다 조중동 보수언론의 준동(蠢動)은 이 나라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급기야 선거 하루 전날인 10월 25일엔 중앙선관위까지 편파의 총으로 박원순 후보를 겨냥했습니다. 후보의 의도성이나 실수가 아닌 학력 문제에 이의를 달아 각 투표소에 정정문을 부착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박원순 후보가 서울대에서 발급받은 증명서에 근거해서 '서울대 문리과대학 사회과학계열 1년 제적'으로 선거포스터에 기록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서울대에 문의한 결과 '서울대 사회계열 1년 제명'으로 회신을 받아 그것으로 정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투표소마다 부착한다니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습니다.

 

박원순 후보가 의도성을 갖고 받지 않은 학위를 받았다고 기록했다든지, 나오지 않은 학교를 나왔다고 했다든지 치명적 오류를 범했을 때, 선관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정정문 부착입니다. 그런데 본인의 잘못도 아니고 발급처인 학교의 실수로 다르게 기재된 사소한 낱말 때문에 정정문을 투표소마다 부착한다는 것은 상대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의도적 행위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저는 '제적'과 '제명'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하에 저항했다고 해서 강제를 학교를 그만 두게 된 것은 그것이 '제적'이 되었던 아니면 '제명'이 되었던 섣부르게 칼질해서는 안 될 사안입니다. 그것도 하루 전, 후보에게 소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정상적인 절차가 아닌 선관위원장 전결로 결정해서 투표소에 정정문을 붙인다는 것은 이승만 정권 하의 '사사오입'만큼이나 웃음 살 일입니다. 투표하러 간 사람이 그 정정문을 읽었을 때 마음의 동요를 느끼게 될 것은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오세훈 전 시장의 무상급식 찬반 주민 투표 결과에 따른 것입니다. 투표율 33.3%를 상회해야만 투표의 효력이 발생하는데, 거기에 미치지 못해 개표도 하지 못하고 폐기되었습니다. 그 때 관공서와 기업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관공서엔 투표 참여를 독려하며 대형 현수막을 청사 건물에 걸었었고, 각 기업체에선 휴가를 주고 출근 시간대를 조정해 주는 등으로 투표 참여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보선엔 어떻게 임하고 있습니까? 이게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한 얘긴지 모르겠습니다만 투표율 45% 이하면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유리하고 48%가 넘으면 시민후보 박원순이 유리하다는 예측 해설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경원 후보 당선을 바라는 측에선 투표율이 낮아지기를 내심 바라면서 이번 선거를 극히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입니다. 속설을 믿고 그 속설을 위해서 선거 때마다 다르게 처신하는 공공기관과 기업체의 카멜레온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선거 때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이 색깔론입니다. 이번엔 한나라당 대표가 나섰군요. 야비합니다. 아직도 전쟁 직후의 냉전논리를 울궈먹고 있다는 것이요. 어제 홍준표 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천안함 폭침을 정부 탓으로 돌리고 반미 촛불 시위를 지원하고, 한미 FTA 반대하고는 박원순에게 서울을 맡기면 광화문 광장은 반미집회 아지트가 될 것이라며 종북주의자 박원순의 당선은 북한 김정일이 간절히 바라는 일이라 고 색깔론 공세를 퍼붓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대변인이라는 자도 종북주의자를 서울시장으로 뽑아 서울을 김정일이 좌지우지하게 해서는 안 된다면 기염을 토했습니다. 빛바랜 이데올로기를 금과옥조(金科玉條)인양 끌어안고 있는 그들이 안쓰럽기조차 합니다.

 

박원순이 종북주의자이고 김정일 찬양주의자이면 우리나라 국민 6,70%가 그 부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보는 보수의 상대적 개념입니다. 세계200개가 넘는 나라 중 진보주의자가 없는 나라는 한 곳도 없습니다.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는 것이 바로 세계 질서의 한 측면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은 선거 때만 되면 종북, 김정일 추종, 좌경이란 단어로 덧칠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묘혈을 스스로 파는 결과밖에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말에 넘어갈 국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원순 후보에겐 좀 미안한 얘기가 될 것입니다. 그가 참여연대를 만들어 시민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사회운동권에서는 그를 회색분자 비슷하게 봤습니다. 개량주의자라고 뒤에서 수군거렸습니다. 변혁운동을 도모해야 할 때 나이브한 시민운동이 뭐냐며 폄하를 당했습니다. 그런 박원순은 종북주의자, 김정일 추종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를 굳이 규정한다면 대중을 사랑하고 대중을 섬기며 대중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붉은 덧칠도 사람을 봐 가며 할 때 효력이 있습니다. 박원순에겐 가당치도 않는 말입니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감은 없지 않군요. 네거티브 선거 전략이 듣기는 싫어도 막상 투표장에서 기표를 할 땐 그것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어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하니까요. 오늘 아침, 서울에 사는 아들 녀석과 통화를 했습니다. 그도 성인인지라 강요는 못하고 은근히 시민후보에 마음 쏠리도록 대화를 이끌려고 했습니다. 아들 놈이 대뜸 하는 말이 나경원이나 박원순이나 별 차이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민운동하면서 은밀히 자기 속셈 다 차린 운동가에게 실망한 나머지 투표소에 가면 어디에 도장이 찍힐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부연 설명이 병역기피하기 위해 했다는 양손 입양, 사업하는 부인 일거리 연결해주고, 강남의 초호화 아파트 살고, 출신학교 불분명하게 기재하고, 회계장부 허위 기재하고… 등등을 죽 나열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것들은 한나라당에서 계획한 네거티브 선거운동의 산물들입니다. 근거가 명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박원순 후보가 의도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이 말들이 젊은이들에게 먹혀든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민운동가 박원순 후보는 꾸밀 줄 모르고 드러낼 줄 모르는 순수한 사람으로 주위에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자기 잇속 차리고 세상을 살아왔다면 지금 누구 못지 않게 사회적 명예와 황금성을 쌓고 살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길을 포기하고 시민들과 더불어 사는 힘든 길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그의 부정적 면모를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터뜨리고 싶어 하는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이지만, 그들 주장대로 박원순이 흠결이 많은 사람이라면 30년 가까이 시민운동에 종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하자가 있는 사람은 버텨낼 수 없는 곳이 사회운동권 세계입니다. 조직적 강제 제재 이전에 떠나야만 하는 곳이 운동권입니다.

 

저는 박원순 변호사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장관 등 고위 공직자 지명자로 이름이 오르내릴 때 시민운동 지도자로 계속 헌신하기를 은연 중 바랐습니다. 이번 서울시장 후보로 이름이 거론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수하고 정직한 한 사람이 망가져야만 하는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우리 정치권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권모술수와 표리부동 안면몰수가 지배하고 있는 동네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좋은 사람 망가뜨리는 장치로 정치권만큼 유용한 곳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정치권에 부딪혀 범야권 단일후보가 되고 오늘 거대 여당 후보와 맞서게 된 것은 오직 하나, 정치권의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전통 있는 쟁쟁한 야당 후보들을 누르고 야권 단일후보가 된 박원순 후보는 시민후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만 무소속입니다. 무소속이 범야권 단일후보가 된 적이 제가 기억하기로는 없습니다. 그만큼 정치권의 변화를 바란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한 정치, 기껏해야 정당에 매몰된 정치가 아니라 진정 시민을 위하고 국민 전체를 위한 정치를 바라는 염원이 그를 범야권 단일후보가 되게 한 것입니다.

 

정치에는 문외한인 안철수 원장이 하루아침에 대선 후보 반열에 오른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에서의 통큰 양보, 대중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넓은 마음, 무엇보다도 기존의 정치꾼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겸손 등, 오늘날 시민들의 바람을 한꺼번에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람으로 국민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았습니다. 이번 박원순 후보가 승리한다면 내년 12월에 있을 대선에서 그의 보폭도 넓어질 것입니다. 국민들은 지금 나와 다른 별종의 정치인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시장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아날로그 정치인이 아니라 디지털 정치인을 바라고 있다고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이젠 투표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빠짐없이 투표해서 답답하고 침체된 사회 분위기를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해 주기를 수동적으로 바라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바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 방법 중 제일 좋은 방법이 선거를 통한 변화입니다. 지금의 선거는 여당과 야당의 싸움이 아니라 옛 정치와 새 정치의 싸움, 정치인 중심 정치와 국민 중심 정치의 싸움, 무엇보다도 군림하는 정치와 섬기는 정치의 싸움입니다. 젊은 유권자들이 모두 투표에 참여해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함으로써 이런 변화의 물결에 동참하기를 간곡히 당부합니다. 투표는 민주 시민의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밤이 기대됩니다.


태그:#투표참여 독려, #박원순 후보, #네거티브 선거운동, #정치변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