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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어머니 집에 가면 화장실이 두 개다. 시골에 화장실이 두 개라는 말에 엄청 부자겠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아니다. 하나는 '뒷간'이다. 아직도 화장실보다는 뒷간이라는 말에 더 정감이 간다. 뒷간을 없애지 못한, 않은 이유는 논일과 밭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급한 볼일(?)이 있으면 집 안 화장실보다는 뒷간이 더 편안하기 때문이다.

한번씩 뒷간에 앉아 볼일을 볼 때마다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앉으면 엉덩이 뒤에 무언가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바로 '똥장군'이다. 요즘은 '똥차'('화장실'보다 '뒷간'이 더 정겨운 것처럼 '분뇨차'보다 더 정겹다)로 정화조를 푸지만 옛날은 똥장군으로 퍼날랐다.

아버지는 논밭에 거름을 줄 때가 되면 지게로 똥장군을 날랐다. 똥지게를 지고 어떤 때는 산을 넘을 때도 있다. 아버지는 유난히 몸이 약했고, 똥장군 속의 똥물이 출렁거려 중심을 잡기 참 힘들기 때문에 휘청거리며 산을 오르는 아버지 뒷모습이 생생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직접 똥장군을 나르기도 하셨다. 몇 년 전까지만해도 뒷간 한구석에 남아 있었는데 요즘은 시골도 '똥차'가 오기 때문에 똥장군은 거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SBS 수목드라마 <뿌리깊은나무> 한장면, 세종 이도는 백성을 위해 똥장군을 졌다. 과연 MB가카도 국민을 위해 똥장군을 질 수 있을까
 SBS 수목드라마 <뿌리깊은나무> 한장면, 세종 이도는 백성을 위해 똥장군을 졌다. 과연 MB가카도 국민을 위해 똥장군을 질 수 있을까
ⓒ SBS <뿌리깊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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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이도, 똥장군을 지다

뜬금없이 똥장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지난 19일 SBS 수목드라마 <뿌리깊은나무>에서 세종대왕이 똥지게로 똥장군을 진 모습을 보고서다. '욕세종'으로 16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배우 한석규(세종 이도 역)는 군주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백성의 모습 그대로였다.

똥지게 진 이를 누가 자신들의 군주인 전하라고 생각하겠는가. 정인지(혁권 분)와 무휼(조진웅 분)이 "전하가 어디 계시느냐"고 묻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세종 이도, 아니 똥지게꾼 이도의 답이 걸작이다.

"'전하'라고 하는 게 나냐?"

이 황망함에 둘은 무릎을 꿇었다. 실로 충격이었으리라. 황망한 그들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충분히…"라며 말리는 것은 당연하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들도 똥장군을 진 적이 없는데 지엄한 전하께서 직접 똥지게를 지셨으니 그것을 빨리 내려놓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세종 이도는 똥지게를 내려놓기보다 "인분이 밭작물을 얼마나 더 자라게 하는지 알아오라고 한 지가 언제냐. 만날 '조금만 기다리면 됩니다. 연구 중이다'. 에라이~ 빌어먹을!"이라고 하며 똥바가지로 똥물을 뿌린다.

조선시대도 관료주의는 있었다?

겉말로만 백성을 생각하는 대신들, 엄격한 신분제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그들에게 세종 이도는 정말 똥물을 뿌리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신분 좋은 대신들에게 똥이 밭작물에 얼마나 더 좋은지 알아오라고 한 것 자체가 지혜로운 세종 이도의 어리석음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뿌린 똥물은 자신을 탓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종은 몸소 나섰다. 백성만을 생각하기에 나온 행동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렇게까지 했으니 내일부턴 관련 기록을 담은 문서들이 '벌떼같이 올라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도 관료주의, 탁상행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인간사 다 같은 것 같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정인지와 무휼이게 타박을 다했을까. 이런 전하 모습이 정인지와 무휼은 좋아 피식 웃었다.

세종대왕이 누군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첫 번째 반열에 놓아도 다른 왕들이 토를 달지 못할 성군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근엄하고, 범접하지 못할 고귀한 세종대왕으로만 생각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똥장군을 진 똥지게꾼 세종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의 웃음에 대한 세종 이도의 답이 또 다시 걸작이다.

"아, 내가 우스우냐? 내가 전하다."

여기서 무릎을 탁 쳤다. 2011년 대한민국은 '쥐그림'을 그렸다고 감옥에 잡아넣는다. 국격을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최고 권력자를 '풍자'조차 하지 못하는 2011년은 세종이 살았던 그 시대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물론 말할 것이다. 그것은 드라마라고. 그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엄한 왕이 똥장군 진 모습을 보고 웃을 수 있었던 정인지와 무휼, 그들을 감옥에 잡아넣지 않는 이도. 세종이 대왕으로 추앙받는 이유를 알겠다. 세종은 그랬을 것이라 믿고 싶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9월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실장 주재 36차 확대비서관회의에 당부의 말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9월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실장 주재 36차 확대비서관회의에 당부의 말을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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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세종처럼 '똥장군'을 질 수 있을까?

똥지게꾼 세종을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생각났다. 과연 그는 국민을 위해, 똥지게를 질 수 있을까? 이 대통령에게 똥지게를 질 수 있느냐고 묻는 것 자체가 허망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나라를 책임진 사람이라고 묻고 싶을 뿐이다.

결론. 그럴 가능성은 '없다'. 한미FTA가 농촌을 도약시킬 것이라고 하고, 참모가 감옥에 갔는데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하고, 자신이 살 집을 아들 명의로 사고서도 사과 한마디로 없이 "본의 아니게"로 끝내버리는 MB '가카'에게 똥장군을 지라고 하는 것은 모독일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 속 세종은 똥장군을 졌다. 아마 시청자들 모두 그 세종에게 감복했을 것이다. 세종 이도는 <뿌리깊은나무> 2회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부왕 태종 이방원에게 이렇게 말한다.

"권력의 독을 감추고, 칼이 아닌 말로서 설득하고, 모두의 진심을 얻어내어 모두를 오직 품고, 하여 모두가 제 자리를 찾고 제 역할을 하게 하는 그런 조선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하고 기다릴 것이옵니다. 전 오직 문으로 치세를 하려 합니다. 모든 무는 오직 외적을 방비하고 영토를 수호하는 데만 쓸 것입니다."

이게 군주가 갈 길이고, 2011년 국가 지도자가 갈 길이다. 하지만 우리  MB 가카는 똥장군도 지지 않고, 말로 설득하지도 않는다. 세종과 정반대로 간다. 정말 세종은 위대한 군왕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세종, #똥장군, #MB, #한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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