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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청의 부적절한 돈 봉투 제공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

추석명절 촌지사건이 뒤늦게 들통 나 조용했던 지역이 시끄럽다. 발생의 진원지가 관청 기자실이란 점에서 더욱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한 중소도시에 10개가 넘는 지역 일간지가 난립하고 있고 거기에다 방송·통신사 등이 즐비하지만 해당 출입처 기자들은 제발 빨리 수그러들기만 바랄 뿐, 그야말로 꿀 먹은 벙어리 냉가슴 앓기다.

시청 출입 기자들이 당사자이다 보니 추잡한 촌지에 얽힌 사건을 시민들에게 고발하고 알려주는 지역신문과 방송은 보이질 않는다. 대신 이런 사실을 권력과 언론 그리고 시민과의 중간지대에 놓인 시민사회단체가 먼저 고발하는 셈이 됐으니, 있으나 마나한 지역언론의 정체성이 참으로 모호하고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발생하는 기자실 촌지사건을 시민들은 막을 재간이 없다. 왜냐하면, 행정을 감시·비판하고 진실을 알려야 할 언론인들이 관청의 폐쇄된 기자실을 드나들며 공무원과 담합하거나 금품을 받아 챙기는 행위들을 언론이 밝히기 전에는 쉽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밝혀지지도, 잘 알려지지도 않는 게 기자실, 기자단의 촌지수수와 같은 병폐이자 오랜 관행이다. 공생관계가 마치 악어와 악어새 같다.

"부적절한 돈 봉투...지역언론-지자체 공생관계 명징하게 드러나"

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낸 성명.
 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낸 성명.
ⓒ 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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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은 19일 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내놓은 성명을 통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부 신문이 관련기사를 내보냈지만 뒤늦게, 그것도 서울에서 발행되는 <한겨레> 보도만 눈에 띌 뿐이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전북지역의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한데 뭉친 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이날 '전주시청의 부적절한 돈 봉투 제공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란 무거운 제목의 성명을 냈다.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제목이 대략 일러주고 있다. 성명 리드는 이렇게 운을 뗐다.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언론의 유착관계에서 발생하는 고질병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어온 돈 봉투 사건이 또 발생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전주시가 추석을 앞두고 전주시청 출입기자들에게 50만원이 든 봉투를 돌렸다고 한다. 돈 봉투 그 자체도 문제지만, 50만원이라는 액수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어 성명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언론 기자들에게 지급하는 돈 봉투는 지역언론과 지자체의 이른바 공생관계를 명징하게 드러내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면서 "지역언론 기자의 열악한 처우에서 비롯된 현실과 기자를 관리 대상으로 삼으려는 지자체의 왜곡된 언론관이 교직되면서 낳은 현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지자체와 지역언론 기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돈 봉투는 '대가성'의 성격이 짙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이어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전주시와 전주지검 등에 다음과 같이 3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주된 요구사항은 ▲첫째, 전주시는 합리적인 기준과 근거 없이 집행하고 있는 홍보예산을 투명하게 개혁해야 할 것 ▲둘째, 전주시청 출입기자단 역시 이번 사태에 대해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것 ▲셋째, 이번 돈 봉투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적극적인 수사를 벌일 것 등이다. 

이들은 성명에서 무엇보다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관련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해 이번 사건을 일벌백계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연 수사가 이뤄질지 의문이다. 이와 같은 형태가 관청 주변에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전북도청에서도 이와 같은 불미스런 일이 발생해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되레 지역언론사들에게 사건의 전말을 적극적으로 보도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돈 봉투 받은 기자 "명절 때마다 지겨워 죽겠어?"

<한겨레>가 내보낸 전주시청 돈봉투 사건 관련 기사.
 <한겨레>가 내보낸 전주시청 돈봉투 사건 관련 기사.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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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언론사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기 일쑤다. 지역언론과 관공서와의 유착관계가 얼마나 깊게 뿌리를 내렸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한겨레>는 9월 22일 '돈 봉투 받은 기자 "명절 때마다 지겨워 죽겠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번 사건을 전해주었다.

기사는 "전북 전주시청을 출입하는 기자단이 추석을 앞두고 돈 봉투를 나눠가진 다음 물의를 빚자 다시 되돌려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며 "전주시청을 출입하며 취재하는 전북지역 한 방송사 기자는 기자단한테서 받은 돈 봉투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하고 추석 연휴 전날인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사실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고 배경을 밝혔다.

"돈 봉투에 담긴 액수는 회사별로 10만~5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는 기사는 "추석이 지나고 대부분의 기자들이 받은 돈을 기자단에 되돌려줬고, 전주시청 기자단은 되돌려 받아 모은 500만여원을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이어 "전주시는 이에 대해 '지난해 3월 전북도청에서 불미스런 일이 있은 뒤 우리는 아예 명절 돈 봉투를 없앴다. 인사차 기자단을 방문한 사람들이 식사비 명목으로 놓고 간 것 등을 (기자단에서) 나눈 것이 아니겠느냐'고 해명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전주시청에는 지역 신문사와 방송사 등 기자 30여명이 출입하며 취재하고 있다.

<한겨레>는 이날 기사에서 "앞서 지난해 3월 전북도 고위 관계자가 전북도청 출입기자 10여명에게 20만원씩 320만원의 돈 봉투를 돌렸다가 물의가 빚어져, 기자들이 되돌려준 일이 있었다"고 덧붙여 보도했다.

지역신문에 대한 지방정부 지원 과연 독일까, 약일까?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 촌지 근절을 위해 올해 처음 특별감찰을 한 결과, 교원 40명이 적발돼 11명이 징계를 받은 것으로 20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김세연(한나라당) 의원이 교과부로부터 제출받은 `2011년 촌지수수 특별감찰 결과' 자료에서 밝혀진 것과 유사하지만 처벌과 대책은 전혀 다르다.    

촌지 내용을 보면 다양하다. 현금(2명), 상품권(4명), 물품(23명), 식사(11명)이었다. 적발된 교원 가운데 34명이 징계와 경고ㆍ주의 등 인사상 불이익 처분을 받았다. 중징계 2명, 경징계 9명 등 총 11명에게 징계 처분이 내려졌으며 10명에게는 경고, 13명에게는 주의 조치가 각각 취해졌다.

그런데 이러한 기사를 쓴 언론인들의 비슷한 촌지관행은 수사는커녕 발생한다 하더라도 잘 공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지역신문에 대한 지방정부의 지원이 과연 독일까, 약일까란 의문을 갖게 한다.

그래서다. 19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간 충북 옥천에서 열리는 언론문화제에서 이 문제가 화두로 대두돼 더욱 시선을 끈다. 주요 행사가 24일(토요일)과 25일(일요일)에 집중된 이번 행사는 24일 오후 2시30분부터 옥천 관성회관 문화교실에서 '지방정부의 지역 언론지원 약인가? 독인가?'를 주제로 한 학술포럼이 예정돼 있다.

각 지역마다 추진되고 있는 지역신문 지원조례 현황과 지원의 의미, 우려되는 점 등을 짚어보는 이번 토론회에는 한서대 신문방송학과 이용성 교수와 강창덕 경남민언련 전 대표가 발제를 맡고, 전북민언련 박민 정책실장, <부산일보> 이호진 노조위원장, 우희창 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전문위원 , <옥천신문> 황민호 기자, 충북민언련 이수희 사무국장이 토론에 나설 예정이어서 주목을 끈다.  이어 25일에는 <조선일보>반대 옥천마라톤대회가 열린다.

오랜 관-언 유착과 이로 인한 병폐들이 지방정부의 공개적인 지원책으로 근절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이번 토론회를 통해 지역언론과 지방정부의 관계가 좀 더 명확히 설정되고, 지역언론사들이 정체성을 되찾고, 언론의 본령을 다할 수 있는 대안까지 제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태그:#전주시청, #돈봉투, #기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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