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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입도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났습니다. 계절이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제아무리 덥거나 추웠다가도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톱니바퀴 돌아가듯 밀려가고 찾아오니 말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꼽아보는 날자는 결국 달력입니다. 전세계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달력은 1582년 로마의 황제 그레고리우스 13세가 만든 달력입니다. 어려서나 지금이나 같은 달력이지만 시골에서 자라며 어렸을 때 보았던 달력은 요즘의 달력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고급스럽지도 못했습니다.

 

한 장짜리 달력 중앙에 상자글로 정리돼 있던 24절기

 

신문만한 크기 한 장에 열두 달이 다 들어 있고, 벽 한쪽에 벽지를 바르듯이 붙여놓고 보는 달력이었습니다. 그 달력에는 한 달씩 정리 된 월력이 굴비 두름처럼 두 줄로 나란하게 인쇄되어 있었고,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멋져 보이는 한자가 가운데 윗부분에 쓰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자 아래쪽 공간으로는 입춘, 우수, 경칩하며 대한까지 이어지는 24절기가 날자 별로 상자 글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달력 중앙, 글 상자 안에 '입춘 2월 4일'과 같은 식으로 24절기가 월일별로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아이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상관도 없었지만 '곡우인데 가물어서 큰일이라던 가, 망종 때가 되었으니 씨갑시(씨앗의 방언)를 넣어야 한다거나 '소한'이네 집에 놀러갔던 '대한'이가 얼어 죽었다'는 등의 말을 통해서 24절기를 들었던 게 기억납니다.

 

소풍가는 날을 손꼽던 양력도 아니고, 동그라미로 표시하던 생일처럼 음력도 아니었기에 24절기는 마냥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어른들만이 써서 그런지 막연하게나마 24절기는 설이나 추석처럼 음력을 기준으로 한 어떤 날 일거라는 생각은 하였습니다.

 

양력 중의 양력, 24절기

 

많은 세월이 흐른 나중에서야 24절기야 말로 양력 중의 양력, 태양의 궤도인 황도를 기준으로 한 절기임을 알았습니다. 달력에는 양력과 음력만 있는 게 아니라 절기력도 있다는 것까지는 알았었는데 갑자력도 있었습니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삼복三伏 더위라 한다. 그런데 복날은 음력도 아니고 절기력도 아닌 간지력(60갑자력)이다. 갑자력 10간干 중 경更일이 하지 이후 세 번째 오는 날을 초복, 네 번째 오는 날을 중복이라 하고, 말복은 입추 후 첫 번째 경일이다.

 

경庚은 오행 중에 금金으로 가을을 뜻한다. 말하자면 해는 하지를 지나 가을로 가고 있는데 지구는 복사열로 달궈져 화火 기운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을 기운인 경庚이 아직 땅에 강하게 남아 있는 여름 기운을 피해 숨는다(伏)는 뜻이다. 사람 인人 변에 견犬 자가 붙어 있어 개고기를 먹는 개 복 자가 아닌가 싶지만 사실은 숨을 복伏자다. -173쪽-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생일이나 제사와 같은 일상까지를 음력기준으로 생활하고 있는 농부들이었지만 농사일에는 언제나 24절기가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태양에 지배될 수밖에 없는 농사만큼은 철저하게 양력(陽曆)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선조들의 지혜를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24절기가 농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춘분, 청명, 곡우, 하지, 처서, 한로, 상강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24절기야 말로 농부의 삶을 궤적해 주는 궤도이며 시간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농부, (사)전국귀농운동본부 텃밭보급소 소장인 안철환 지음, <소나무> 출판의 <24절기와 농부의 달력>에서는 24절기를 농부의 경험으로 엮고 논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24절기와 농부의 달력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24절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달력에 대한 지식을 소개하고 있고, 2부에서는 24절기를 구조적으로 세세하게 분석·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3부에서는 각 절기와 농사와의 관계를 실전처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곡우가 되면 농부들은 정신없이 바빠진다, 춘분 때까지만 해도 사실 농한기의 여운이 남아 있어 농부의 입가에는 여전히 하품이 맴돈다. 청명이 되어 따뜻한 햇살에 막걸리라도 한 대접 목을 축이며 점심을 먹은 뒤에는 살짝 졸음이 온다.

 

그런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청명을 지나면 정신이 없다. 감자를 심었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얼갈이 심고, 아욱, 시금치, 홍당무, 상추 심고 바로 이어 강낭콩에 완두콩가지 심노라니 정신없이 냅다 달린 기분인데 곧바로 직파 고추를 심을 준비하느라 또 하루 종일 정신이 없다.-141-  

 

망종 때쯤 풀을 다스리지 못하면 실농(失農)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중략- 망종(芒種)은 까끄라기 망(芒)이 있는 곡물을 거두거나 모내기하는 철이다. 곧, 모리와 같은 곡식을 거두고 벼를 모내기 하는 철인 것이다. -157-

 

기회는 타이밍입니다. 무었을, 어떻게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적시, '언제'를 맞추지 못하면 버스 지나간 뒤에 손드는 격으로 말장 도루묵 되기 십상입니다.

 

봄에 씨앗을 뿌려야 여름에 꽃이 피고, 여름에 꽃이 피어야 가을에 열매를 맺듯이 타이밍이라는 것은 수영이나 육상 출발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라 농사철에서도 아주 중요합니다.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필독서 될 듯

 

농사에서 무엇을 언제 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는 시간표이자 지시서가 24절기이고, 24절기에 대한 실천적 경험과 통계를 현대적 감각으로 정리하고 가시적으로 설명한 것이 <24절기와 농부의 달력>입니다.  

 

창작을 하듯이 쓴 읽을거리가 아니라 농부로 살아가면서 몸소 경험하고 터득한 것을 24절기에 덧대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귀농을 꿈꾸거나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귀농에 앞서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인 듯합니다.

 

농촌으로의 귀농이 아닐지라도 살아온 인생을 가늠해 보고, 살아갈 미래를 설계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오는 세월을 좀 더 의미 있게 맞이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사계절 등댓불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24절기와 농부의 달력>(안철환 지음, 소나무 펴냄, 2011년 7월 25일, 12,000원)


24절기와 농부의 달력

안철환 지음, 소나무(2011)


태그:#24절기, #귀농, #안철환,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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