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르고 독도와 연을 맺은 정광태는 지금까지 울릉도-독도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독도를 방문하는 것은 물론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 온라인에서의 활동도 활발하다.

1983년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르고 독도와 연을 맺은 정광태는 지금까지 울릉도-독도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독도를 방문하는 것은 물론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 온라인에서의 활동도 활발하다. ⓒ 정광태


노래방에서 안 불려도, 최신곡 차트에 없어도 웬만한 인기곡보다 꾸준히 소비되는 노래가 있다. 30년 동안 잊힐 때쯤이면 한 번씩 울리는 '독도는 우리땅'이다. 잊을만하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이 시비를 걸 때마다 이 곡은 전의를 다지는 응원가 노릇을 했다. 내 집 앞마당을 훤히 꿰뚫듯이 조목조목 독도에 대해 설명하는 가사는 '이래도 너희 땅이라고 우길래?'하는 자신감 넘치는 으름장 같은 것이었다.

이 노래를 부른 정광태는 1974년 데뷔한 개그맨으로 통기타를 매고 토크송이라는 스탠딩 개그를 했다. 박인호(본명 박문영)가 작사·작곡한 '독도는 우리 땅'을 처음 부르게 된 것은 1982년 KBS의 개그프로그램 <유머 1번지>. 임하룡, 장두석, 김정식과 함께 포졸복을 입고 코믹하게 부른 노래다. 이후 음반제작자가 "그 곡으로 판을 내자"며 만나기로 했지만, 제작자가 늦게 나오는 바람에 바쁜 세 명은 먼저 가고 정광태만 남게 됐다.

정광태의 표현대로라면 "한가해서" 부르게 된 <독도는 우리 땅>이 그에게는 인생의 절반을 함께 한 동반자가 됐다. 이 곡을 부르는 30년 동안 그는 독도를 수없이 오가고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독도에 대해 알리면서 우직하게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

울릉도-독도 홍보대사이자 한국연예제작자협회 부회장이기도 한 정광태를 4일 마포구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그가 건넨 명함에는 자신보다 독도의 프로필로 꽉 차 있었다.  

"우리 땅인데 뭘 그렇게 강조하냐고?"

 1983년부터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른 정광태는 독도 홍보대사로 30년 가까이 독도 알리기에 앞장 서고 있다.

1983년부터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른 정광태는 독도 홍보대사로 30년 가까이 독도 알리기에 앞장 서고 있다. ⓒ 정광태

- 최근 일본 자민당 의원들의 방한 소동으로 다시 독도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독도 홍보대사로서 심정이 남다르셨을 것 같은데요. 
"일본이 지속적으로 해온 일상이지만 아주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행위예요. 정치적 의도가 없었으면 그 의원들이 왜 왔을까요? 입국 금지로 9시간 동안 버텼는데 우리가 그들을 이슈화시키는 꺼리를 준 것밖에 안돼요.

독도만 건드리면 우리 국민들이 난리가 나잖아요. 사실 정부에서 일본에게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문제예요. 역대 대통령들이 한 번도 독도를 방문한 적이 없잖아요. '우리 땅인데 뭘 그렇게 강조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 것에 대한 진실을 세계만방에 알리는데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거죠.

'스스로 주장하지 않는 권리는 보장받지 못한다'는 국제법 조항도 있잖아요. '명명백백한 자국의 영토도 주장하지 않는 자에게는 돌아오지 않는다'(이한기 저, '한국의 영토' 서문)는 말도 있고요.

- 예전에는 거꾸로 정광태씨의 일본 입국이 금지된 적이 있었잖아요.
"날짜도 기억해요. 1996년 9월 17일, 추석특집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SBS와 일본에 가려고 했다가 입국을 거부당한 날이에요. 서류미비로 비자 발급이 안 된다고 해서 20분간 실랑이를 벌였어요. 원래 입국 거부되면 서류도, 여권도 안 준다는데 내가 하도 난리치니까 주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서류를 찢어버렸죠. 그 당시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었는데 열 받아서 영주권 포기하고 1999년 본적을 독도로 옮겨버렸어요. 그런 행위들을 통해서라도 독도를 지키고 싶었어요."

- '독도는 우리 땅'은 사실상 방송 금지곡이 된 적도 있었습니다.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을까요?
"아무래도 그랬겠죠. 그런데 그 당시에는 왜 금지곡인지도 몰랐고, 물어볼 수도 없었어요. 금지곡이 되던 해에 금지가 풀렸는데 사실 어떻게 풀린 지도 모르겠어요.   

'뗏목 타고, 수영해서' 목숨 건 울릉도-독도 종단기 

 1984년 3월, 정광태는 해양경찰청 배를 타고 처음으로 독도에 들어갔다. 사진은 당시 독도 주민들과 함께 찍은 것.

1984년 3월, 정광태는 해양경찰청 배를 타고 처음으로 독도에 들어갔다. 사진은 당시 독도 주민들과 함께 찍은 것. ⓒ 정광태


- 처음 독도에 가셨을 때가 언젠가요?
"1983년 7월 25일 독도 의용수비대 창설 30주년 행사에 나를 초대해줘서 처음 울릉도에 들어갔어요. 의용수비대장 홍순칠씨에게 감사패도 받고, 명예 독도군수로 임명되기도 했죠.

독도에 처음 간 것은 1984년 3월이에요. 해양경찰청 배를 타고 들어갔는데 그 당시 접안시설이 안 되어있어서 마중 나온 독도 1호 주민인 최종덕 할아버지의 배로 갈아타고 들어갔죠. 그때 나는 KBS, MBC에서 신인상 받고 인기도 한창 좋을 때라 사람들이 '연예인 왔다'고 좋아했어요. 독도에서 예포 받은 사람은 대한민국에 나밖에 없을 거예요. 그때 작은 힘이나마 독도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고 나왔는데, 지금까지 왔네요."

 정광태는 2000년 독도수호대원들과 함께 8명 정도 탈 수 있는 뗏목을 만들어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항해를 시도했다.

정광태는 2000년 독도수호대원들과 함께 8명 정도 탈 수 있는 뗏목을 만들어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항해를 시도했다. ⓒ 정광태

- 울릉도-독도 홍보대사로 활동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요?
"2000년, 독도수호대원들과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타고 가기 위한 뗏목을 만들었어요. 어떻게 해서든 독도를 알리려고 한 거죠. 방송사도 그렇고 국민들도 일본에서 딴죽을 걸어야 독도에 관심을 갖잖아요.

한 달간 여의도에 전시했던 뗏목을 강원도로 가져가고, 다시 울릉도로 가져가 바다에 띄웠죠. 한강에서 연습도 해봤는데 배가 너무 안 나가는 거예요. 태풍이 온다고 하니까 울릉군청이 허가를 안 내줘서 싸우기도 엄청 싸우고. 사실 목숨을 걸고 가는 거였죠. 결국에는 배에다가 뗏목을 묶어서 끌고 갔어요. 

뗏목 다음에는 전국에서 수영으로 독도를 종단하기로 했어요. 전국에서 선발한 독도사랑회 45명이 3개월 동안 훈련을 했죠. 2004년 8월 5일 새벽 4시, 울릉도에서 출발해 릴레이로 수영을 해서 28시간 만에 87.4km 떨어진 독도에 도착했어요.

수심이 깊은 데는 2000m도 넘으니까 목숨을 걸고 참여한 겁니다. 희한하게도 기후변화가 심한 그 바다가 28시간 동안 너무 잠잠한 거예요. 울릉도와 독도 사이를 운행하는 관광선 삼봉호에서 우리를 응원하기 위해 태극기를 흔들어 주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독도 도착 200m를 남겨 놓고는 45명이 한 꺼번에 바다로 뛰어들어 독도로 향했죠. 몇 년이 지났지만 정말 멋지고, 자랑스러웠어요. 2005년에는 여성들 33명을 선발해서 수영종단을 또 했어요. 내가 대통령이었으면 훈장 하나씩 줬을 거예요."

- 30년 동안 얼마나 자주 독도를 방문하셨죠?
"수도 없이 갔죠. 지난 5월 26일에도 갔고, 이번 주 일요일인 7일도 가요.(인터뷰 일시는 4일) 독도에 가는 건 일종의 순례죠. 이번에는 독도사랑회에서 갈 사람들을 모아서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가요. 말로만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하는 것보다 실제로 갔다 오면 아이들 생각도 다를 테니까요."

 2004년 45명의 남성들, 2005년 33명의 여성들이 울릉도와 독도 간 90km에 가까운 바다를 수영으로 종단했다.

2004년 45명의 남성들, 2005년 33명의 여성들이 울릉도와 독도 간 90km에 가까운 바다를 수영으로 종단했다. ⓒ 정광태


-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어떤 마음으로 독도를 위해 일하시는 건가요?
"돈 생길 일이 별로 없죠. 나는 자칭 독립군이라고 생각해요. 옛날에 독립 운동할 때는 얼마나 상황이 안 좋았어요. 그 악조건 속에서도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래도 상황이 좋잖아요. 비록 돈은 못 벌지만. 독도를 연구하는 학자, 경비대, 군인들처럼 우리는 각자 맡은 데서 최선을 다 하는 거예요."

9일 오후에 통화한 정광태는 아직 울릉도에 있었다. 엄청난 바람소리와 함께 전화기 너머에서 그는 "태풍 여파 때문에 배가 못 들어와서 1000여명의 관광객이 갇혀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20여 분을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할 정도로 쉽게 올 수 있는 곳이 아닌데 독도를 찾은 사람들은 모두 애국자라고 생각한다"며 감격스러운 소감을 표했다. 이날 정광태는 학생들과 함께 김, 라면, 참치캔 등의 위문품을 독도경비대 울릉도 본부에 전달했다.

8월 15일 경에는 새로운 '독도송'인 '독도는 한국 땅'이 발표된다. '우리 땅'이라는 표현보다 명확하게 '한국 땅'이라고 못 박기 위해서다. "일본에서 도발할 때만 독도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안타깝다"는 정광태. 그의 30년 독도지기는 울릉도 동남쪽에 우직하게 서 있는 독도를 닮아 한결 같다.  

정광태 독도는 우리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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