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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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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의 <사계(四季>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클래식 음반이다. <사계>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가 1723년에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 가장 유명한 곡으로서 또한 가장 사랑받는 바로크 음악 중 하나이기도 하다.

비발디의 <사계>는 현재 우리들의 삶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는 출발역 안내 방송에 비발디 <사계> 중 <가을>의 첫 번째 악장을 사용하고 있고,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에서는 <봄>의 첫 번째 악장을 사용하고 있다.

비발디의 <사계>는 거의 300년 전 유럽에서 작곡된 음악이지만 300년 후 극동의 지하철과 비행기에서까지 그의 음악이 애용되고 공감을 얻는 것을 보면 '무서운 예술의 힘'이 몸으로 실감난다. 비발디 생전에 자신이 작곡가로서 더욱 알려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당시 골도니라는 비평가는 그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비발디는 바이올린 주자로서는 만점, 작곡가로서는 그저 그런 편이고, 사제로서는 영점이다."

한 음악가의 천재성을 당대에서만 평가하기엔 그래서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시대를 뛰어넘은 작곡가, 그것이 내가 보는 비발디이다.

고아원의 쇠창살 뒤에서 고아소녀들은 비발디의 지휘에 따라 악기를 연주했다. 고아는 역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비발디의 음악을 통해 삶의 빛을 발견했다.

이탈리아어 번역가 서대원씨는 비발디가 활동하던 1700년대 베네치아의 한 고아원에서 버려진 상처로 고뇌하는 고아들이 음악을 통해 빛을 발견하는 과정을 그린 책을 번역했다. 서씨는 해외입양아들을 초청하여 국내 친부모와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일을 했고, 지금도 해외입양아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평소 해외입양아들의 과거사와 그들의 정체성 찾기에 관심이 많은 나는 서대원씨를 만났다.

그와 나는 공통점이 많다. 입양아에 대한 관심, 클래식음악에 대한 흥미, 그리고 비발디를 좋아하는 것. 3백 년 전 비발디는 당시 환영받지 못한 고아들에 대해 애정을 갖고 그들의 삶에 희망이라는 빛을 던져 주었다. 다음은 지난 7월 26일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서대원씨와 만나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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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원저자 티치아노 스카르파(Tiziano Scarpa)는 2009년 이 책(원제 '슬픈 성모')으로 이탈리아 최고의 문학상인 스트레가상과 몬델로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왜 이 책이 이탈리아 최고문학상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또 이 책의 주제는 무엇인가?
"이 책은 시화된 독백소설이다. 이런 시화된 표현기법이 이 소설을 전통적인 서간문 소설형식에서 벗어나게 한다. 동시에 자칫 단순한 비창(悲愴)시가 되었을 수도 있는 하나의 줄거리를 완성시킨다. 이 점이 이 소설의 문학적 가치다. 사실주의적 색채로 스토리가 전개되지만 서정시적 문체의 리듬으로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여성해방이다. 질곡과 암흑 속에서 살아가던 한 여성이 음악이라는 빛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 내용이다. 삶의 고통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고통을 받아드리는 자세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한 소녀가 고통을 넘어 자유를 찾는 모습은 그래서 감동을 준다."      

- 이 책의 원제목은 <Stabat Mater(슬픈 성모)>인데, 번역을 하면서 제목을 <어머니 왜 나를 버렸나요>로 바꾸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버림받음의 코드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사실 처음 제목을 정하며 많은 고민을 했다. 스타바트 마테르는 라틴어로 어머니께서(Mater) 계셨다(Stabat)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성모 마리아가 당신의 아들 예수가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죽어가는 현장에서 고통받았음을 뜻한다. 이 작품에서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소녀의 고통은 성모의 고통에 비유되고 있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아버지,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버림은 죽음을 뜻하고 죽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 이 책을 왜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나?
"나는 과거 유럽에서 입양된 한국계 여성들의 뿌리를 찾아주는 일을 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슬픈 사연들과 접할 수 있었다. 당시 정체성에 대해서 그들과 함께 많은 고민을 했다. 그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이 소설은 우리사회에서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신생아 유기, 입양, 사생아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정체성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전하고 싶었다."       

- 책을 보면 베네치아에서는 13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 생활고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아기를 고아원에 버려두고 갔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런 관행이 멈춘 것은 결국 빈곤층에 대한 국가의 사회복지나 지원이 강화되어서인가?
"그렇다. 유럽, 특히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는 국가차원의 사회복지 외에 미혼모들이나 사생아들을 보호하는 가톨릭 단체나 수도단체가 부지기수이다. 또한 그들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는 사회적 인식이나 배려도 한몫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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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발디는 그 음악적 성취와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혼자 가난하게 죽었는데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추정하나?
"1730년 후반 베네치아에서 그는 더 이상 환영을 받지 못한다. 당시 음악적 경향이 빠르게 바뀌고 있었고 나폴리의 오페라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737년 페라라에서 재기를 위한 오페라를 준비하던 비발디는 그의 염문 때문에 교황대사로부터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 출입금지령을 받는다.

비발디는 하는 수 없이 비인으로 떠날 결심을 하고 1740년 비인으로 떠난다. 전에 만난 적이 있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6세의 보호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가 비인에 도착했을 때 카를 황제가 사망하고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이 일어나 모든 극장이 문을 닫는다.

결국 비발디는 무일푼이 되어 이탈리아로 돌아오지 못하고 1741년 7월 28일 비인에서 급성장염으로 외롭게 생을 마감한다. 그가 평생 앓아왔던 천식이 사망원인이란 주장도 있다."  

- 책을 보면, "고아들 중 남자 아이들은 15살에 고아원을 떠나야 했고 고아소녀들은 결혼하면서 고아원을 떠났다. 그녀들은 일부만이 결혼을 했고 나머지는 일생을 고아원에서 살았다"고 했는데, 그것은 소녀(여성)들에 대한 고아원 측의 각별한 배려였나?
"고아소녀들은 결혼하며 고아원을 떠났다. 당시 시대상황으로 미루어 배우자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고아원을 떠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여성의 권리가 보호되지 않았던 시대라 여성 혼자서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고아원 측의 배려라 하겠다."   
   
- 책에 나오는 고아소녀 체칠리아는 비발디가 불후의 명작인 <사계> 같은 협주곡을 작곡하는 데도 영감을 주었다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영감을 주게 되었는가?
"주인공 소녀 체칠리아는 바이올린에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연의 소리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시도를 한다. 이를테면 바이올린으로 제비 소리를 낸다든가 사물이 내는 소리를 통해 상상으로 사물의 모습을 그려내는 연습을 한다. 그녀는 모든 자연현상을 소리로 해석하려한다. 비발디는 그녀를 통해 영감을 받고 인간이 한 해 동안 경험하는 모든 자연현상을 음악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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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원작가 티치아노 스카르파는 과거 비에타고아원으로 사용되었던 베네치아시립병원에서 태어났고, 2005년엔 <첫사랑>이란 인터넷 잡지를 창간하여 입양아들이 자신의 뿌리에 대해 알 권리와 인종차별 등, 사회 문제들을 이슈화시키는 사회활동을 해왔다. 이탈리아에도 현재 입양아 문제가 심각한 수준인가?
"이탈리아는 이미 오래전에 다문화사회로 접어들었고 제3세계에서 입양아들을 받고 있는 나라이다. 당연히 입양아와 관련된 문제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의 종교성이나 다문화사회에 대한 성숙된 의식으로 인해 우리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하겠다." 

- 이 책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1700년대 바로크 음악의 대가였던 안토니오 비발디, 베네치아 공화국의 피에타재단, 그 재단이 운영하는 고아원의 고아소녀들이 이 작품의 소재인데 그 셋이 어떻게 연결되어 이 책의 이야기가 전개되는지 소개해달라.
"베네치아공화국의 피에타재단은 1346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재단이다. 이 재단은 음악에 재능이 있는 고아소녀들을 선발해 음악교육을 시키고 재단유지에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피에타 고아원 내에서 공연을 하는 전통을 갖고 있었다. 1704년 안토니오 비발디 신부가 이 고아원의 바이올린 마스터로 부임해서 1740년까지 고아소녀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위해 작곡을 했다.

그의 음악들은 고아소녀들에 의해 연주되었다. 비발디의 아름다운 선율에는 고아소녀들의 슬픈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이다. 비발디라는 거장 덕분에 피에타 고아원 소녀들의 명성은 전 유럽에 퍼지게 된다. 소설은 피에타 고아원의 소녀들과 그들의 스승 비발디 신부가 피에타 고아원에서 만들어가는 일들을 묘사하고 있다."

- 이 책에서, "음악은 기적을 만들어내고 한 고아소녀는 음악을 통해 상실된 자아를 발견, 정체성을 발견한다"는 장면이 나온다. 좀 부가적으로 설명해달라.
"주인공 소녀는 비발디가 작곡한 '사계'를 연주하며 그 음악과 하나가 되고 자신이 음악 안에서 모든 것이 될 수 있음을 경험하며 전율한다. 자신을 학대하고 부정하던 태도를 바꾸고  자신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나'로 실존함을 깨닫는다. 자아를 찾게 되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집착과 애증을 떨쳐버리고 독립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것을 결심하고 고아원을 탈출한다. 자신을 옥죄고 있던 고통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 "이 소설에는 또 한 고아소녀의 고통과 성모의 고통 그리고 비발디가 연계되어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연계되어있는가?
"자신의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성모의 고통은 인간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 고통 안에는 인류의 구원이라는 큰 뜻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버림받음에서 기인된 트라우마로 고통 받던 고아소녀는 비발디의 음악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 소녀의 고통에는 자아 발견의 씨가 배태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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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원씨는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로만 가톨릭 필그림센터(ASPEC)를 운영하며 전 세계의 가톨릭성지를 순회하며 성지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성지순례단를 조직해왔다. 가톨릭청소년문화원에서 국제문화교류를 담당하며 청소년들의 해외문화체험을 위한 기획과 행사를 주관해왔다. 현재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역서로는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하자구나> <엄마가 깨워도 안 일어나는 방법> 외 다수의 종교관련 서적들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어머니 왜 나를 버렸나요>(티치아노 스카르파 씀, 서대원 옮김, 인디북 펴냄, 2011년, 10000원)



태그:#비빌디, #서대원, #입양, #고아,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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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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