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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이징에서 진행된 한중 국방장관회담을 둘러쌓고 말들이 많다. 대부분의 언론은 중국의 외교상 '결례'를 지적한 반면, 당국은 일절 함구하고 있은 가운데 정작 당사자는 '우여곡절'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성과를 내세우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중 국방장관회담 후 발표된 공동보도문에는 한국의 핵심적 요구사항이 빠져 '빈 껍데기'라는 지적이다.

 

문제의 발단은 이렇다. 한중 국방장관회담에 앞서 김관진 장관은 14일 천빙더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천 참모장은 미국의 제국주의 행태를 강하게 규탄하고, 미국과 공조를 취하고 있는 한국의 태도를 우회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천 총참모장은 "미국은 초강대국이어서 다른 나라에 이래라저래라 얘기하는 것이고 만약 다른 나라가 미국에 이렇게 얘기하면 그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서 "패권주의는 항상 패권주의에 맞는 행동이나 표현을 하는데 미국이 하는 것은 패권주의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 사람들과 무슨 문제를 토의할 때는 어려움이 많다. 한국과 미국도 동맹이지만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중국과 주변국 사이에 분쟁이 생길 때 미국이 그런 나라들과 군사훈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도 했다. 이런 내용을 공개석상 모두발언을 통해 15분간 지속한 것이다.

 

이 같은 천 총참모장의 발언은 의도된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 장관은 앞서 시진핑 국가 부주석를 예방한 자리에서 ▲국군포로 탈북자 인계 ▲천안함·연평도 사태에 대한 북측 책임론을 펼치며 중국의 역할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행동이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두 사안은 '대를 이은 북중 혈맹관계'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그 동안 한중 간 많은 논란과 공방이 있어온 예민한 사안으로 자기보다 급이 높은 시 부주석을 예방한 자리에서 꺼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을 빌미로 한 서해상에서의 지속적인 한미합동군사훈련에 중국이 위협을 느끼며 강하게 반발해 온 것과, 남중국해의 난사4도를 둘러싼 미국과의 마찰, 한미 간 유지되고 있는 군사동맹과 한국군 지휘권 문제 등을 상정했을 때 결코 돌출 발언이 아닌 준비된, 의도된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이런 '의도된 결례'는 한국에게 '너 자신을 한 번 돌아보라'는, 자기성찰을 촉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김 장관의 도전적 발언과, 그 동안 펼쳐온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을 중심으로 한 대북, 대중 압박정책에 대한 중국의 반대급부적 행동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고집해온 '전략적 인내'를 통한 '북 붕괴론'과 미국 일방주의 외교정책에 따른 중국과 북의 반발, 긴장된 동북아정세와 북중관계 강화 측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한편, 당국은 이번 한중 국방장관회담을 통해 '양국 국방관계 발전의 새로운 전환점'이라고 평가했으나, 이 역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양국은 회담 후 발표한 공동보도문에서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부합하는 국방관계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로 했다'며 ▲국방전략대화 개설 ▲군사교육 교류 재개 ▲재난구호 상호지원 양해각서 체결 등을 합의했다.

 

하지만 논란이 됐던 천안함·연평도 사태와 관련해서는 중국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이 제기한 '도발'이라는 문구 대신 '행위'로 표현함으로써 한반도 평화 위협의 주범이 북이라는 한국의 주장에 대한 거부의 뜻을 밝힌 것이다. 천빙더 총참모장이 강하게 제기한 '패권주의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한호석 미주 통일학연구소장은 최근 <통일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한미합동으로 벌이는 각종 군사행동을 거론, "서해에 조성된 무력충돌 위험에 대해 중국이 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번 한중 국방장관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미국의 행위에 반대한다'는 뜻을 암시적으로 표현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결례'와 '무시' 등의 논란을 낳은 이번 한중 국방장관회담은 이명박 정부의 외교적 무능을 여지없이 드러냄으로써,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냉전적 남북관계, 편향적 국제관계가 나라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음을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사람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중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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