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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화요일인 5일을 기점으로 카이로 중심가이면서 이제는 혁명의 광장으로 불리는 타흐리르에서 반정부 시민운동이 시작되더니 목요일과 금요일을 거쳐 지난 11일 월요일까지도 시민들은 물러나지 않고 다시금 텐트를 들고 타흐리르를 찾았다.

일요일에는 '전국의 학생 및 대학생들은 타흐리르로 집결하라'는 메시지가 온종일 트위터를 달구었다. 지난 혁명 이후 매주 목요일 늦은 저녁부터 금요일까지 타흐리르는 으레 시민들이 모여 '대정부 요구사항이나 항의 혹은 혁명의 정신을 고취시키는 장소'라고만 알고 있던 나는 시위가 한 주를 넘어서는 것을 보고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나는 지난 3월처럼 또 다시 부랴부랴 장을 봐왔고, 적당한 현금을 환전했으며, 온갖 지역뉴스들을 읽었다. 또 혹시 멀리 나가있는 한국인 친구들이 있는지를 점검하고 주의를 주기 시작했다. 이미 수에즈에서 아인 소크나로 가는 고속도로는 무장시민들에게 점거된 상태였다. 다행히 성지순례를 안내하던 지인은 큰 일을 겪지 않고 카이로로 귀환했다.

월요일 오전 '내각 총사퇴와 총리퇴진'을 요구하는 타흐리르의 시민들의 수는 이미 10만 명이 넘어섰고, 알렉산드리아, 이스마일리아, 소하그, 아슈트 등지에서도 타흐리르 못지 않은 대대적인 군중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하야한 전 대통령 무바라크가 머물고 있는 홍해변의 세계적인 휴양지 샴 엘 셰이크의 시민들은 '무바라크 일가는 이 도시를 떠나라'며 시위행진을 벌였다.

'내각 총사퇴와 총리퇴진' 요구하는 이집트 시민들

수천 명의 희생을 딛고 30여 년의 독재정권타도를 쟁취했던 카이로 혁명은 지난 4개월 동안 개헌안 국민투표와 수상교체, 내각총사퇴, 전직 고위관리들의 구속 혹은 출국금지 그리고 전직 대통령과 그 일가 기소 등을 이끌어냈지만 여전히 국민들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점이 불만으로 누적이 되어 이번 '혁명 2기'를 이끌어낸 이유가 되었다.

또한 이집트의 정부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군최고위원회는 여전히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지 못했으며 혁명의 가장 큰 동력이었던 '가난에의 저항'을 해소할 근거를 마련하지 못했다. 군최고위원회는 어떻게든 올해에 있을 두 번의 선거를 무탈하게 치르고 정권을 넘겨주려는 목표라도 세워놓은 듯이 행동했다. 

구내각의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구여당이 해산된 지금 이집트 최대의 정당이 된 무슬림형제단은 소수이지만 국민의 1할을 차지하고 있는 콥틱교도(크리스찬)들을 무시한 채 '이집트를 이슬람국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점도 카이로 혁명을 주도했던 젊은 혈기의 시민단체들의 이념과 크게 동떨어진 것이었다.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금요일 예배시간에 타흐리르에 모인 시민들은 무슬림이 기도할 때는 콥틱교도들이 그리고 콥틱교도들이 예배를 올릴 때는 무슬림들이 서로 손을 잡고 바리게이드를 만들어 자칫 발생할 수도 있는 공권력의 공격으로부터 서로를 지켜내었다. 이집트 국민들에게 '이집트는 하나'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났다고, 정치적 힘을 얻었다고 혁명의 이념이 달라질 수는 없었다. 그것을 참고 지켜볼 국민들도 아니었다. 이집트 국민들은 어느새 한 사람 한 사람이 혁명가로 변해있었다. 국민들은 나라는 분열되고 혁명은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한 초석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와중에 이집트 국영기업인 Gasco는 그간 이스라엘로 보내던 석유를 더이상 보낼 수 없다고 발표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그간 중동에서 유일하게 평화적으로 지낼 수 있었던 데에는 구정권기에 맺었던 국제협약이 –그것이 비록 불평등조약이었다할지라도–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완충지대역할을 했던 시나이반도의 경계태세는 더더욱 삼엄해지고 긴장감이 돌게 될 것이다.

또한 그토록 가난을 벗어나고자 혁명의 기치를 들었던 산업의 역군들은 임금인상과 근무환경개선의 요구사항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곳곳에서 자신들의 직장(공장)들을 무단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가는가 하면 경찰과 충돌하여 부상을 입거나 줄줄이 연행되었다. 사주들은 혁명으로 생산 및 영업실적에 엄청난 타격을 이미 입은 상태이므로 임금을 인상시켜줄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고 버텼다.

'시위군중 살인 및 교사' 경찰들 석방... 법정 둘러싸고 농성

전과 다름없이 국민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려드는 경찰들도 문제였다. 이집트 경찰들은 전과 다름없이 시민들에게 무기를 휘두르고 희생을 내고 있다. 경찰이 아무리 비난을 받아도 제대로 된 처벌은 받지 않아 시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설상가상으로 전범이나 다름없는 '시위군중에 대한 살인 및 교사'를 저지른 경찰관계자들은 1만 파운드 정도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었고, 그중 4명은 아예 증거불충분으로 혐의를 벗었다. 혁명순교자들의 가족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고 시민들과 함께 알렉산드리아 법정으로 몰려가 둘러싸고 농성을 벌였다. 이 사건은 대단히 큰 뉴스로 이집트 전역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재판의 결과가 이번 혁명의 단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집트 트위터에는 이집트 국내 정세를 한탄하며 자조적으로 누군가가 퍼뜨린 이 말이 계속해서 리트윗되고 있다.

"1파운드의 빵을 훔치면 감옥으로, 사람을 죽이면 샴 엘 셰이크(휴양지)로"

타흐리르 광장에 닿아있는 메트로역 '사다트'에서는 종종 혁명 당시의 순교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이 열렸다. 그중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도 있고 어른들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절대로 알 리가 없는 어린 아기의 사진도 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들여다보는 시민들은 누구는 디카를 들이대고 누구는 두 손을 꼭 쥐고 기도를 하며 또 누구는 코란을 암송한다. 그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사진 밖의 이 사람들은 사진 속의 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 희생에 보답하려는 마음을 다지고 있을 것이라고. 

짓밟힌 시민들이 어깨엔 텐트를 짊어지고 한 손으론 아이의 손을 잡고 타흐리르로 향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들은 이미 모두 순교자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혁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나는 가만히 그들을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네이버의 <마담 아미라의 이집트여행> 카페에도 실립니다.



태그:#이집트혁명, #타흐리르광장, #서주선생, #카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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