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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미술관 로비에서 전시에 대해 설명하는 박영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왼쪽)과 도움말을 주는 카터 포스터 휘트니미술관 수석큐레이터(중앙)
 덕수궁미술관 로비에서 전시에 대해 설명하는 박영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왼쪽)과 도움말을 주는 카터 포스터 휘트니미술관 수석큐레이터(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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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4대 미술관 중 하나인 휘트니미술관 소장품이 아시아 최초로 덕수궁미술관에서 9월 25일까지 열린다. 라우센버그, 만 레이, 톰 웨셀만, 워홀 등 47명 작가의 대표작 87점이 소개된다. 뉴욕다다, 네오다다, 팝아트,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등 미국미술의 조류를 두루 살펴볼 수 있다. 다만 추상표현주의 작품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것 같다.

1931년 게르트루드 밴더빌트가 개관한 휘트니미술관은 지난 100년간 미국의 자국미술을 전문적으로 수집해왔다. 그래서 미국현대미술의 발전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휘트니미술관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백남준은 1982년 이곳에서 '회고전'을 열었고 1993년에는 '휘트니비엔날레(서울전)'을 백남준 주도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번 전에서는 1776년에 독립한 미국이 20세기에 들어와 세계 최강국이 되어가는 역동적 모습이 붓보다는 물체로 그리는 경계 없는 미국미술 속에서 조명된다. 이를 통해 미국인의 삶의 철학과 가치관이 뭔지, 그런 것이 작품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살펴볼 수 있다.

현대미술의 대명사 오브제란?

에드워드 키엔홀츠(Edward Kienholz 1927-1994) I '이름 없는 미국대통령(Untitled American President)' 도자기받침대나무에 금속, 플라스틱, 천, 체인 153×34×34cm 1962. 리처드 에스테스(R. Estes 1936-)의 '사탕가게'(1969)[뒤면 왼쪽] 로이 리히텐슈타인(R. Lichtenstein)의 '금붕어 어항'(1977)[뒤면 오른쪽]
 에드워드 키엔홀츠(Edward Kienholz 1927-1994) I '이름 없는 미국대통령(Untitled American President)' 도자기받침대나무에 금속, 플라스틱, 천, 체인 153×34×34cm 1962. 리처드 에스테스(R. Estes 1936-)의 '사탕가게'(1969)[뒤면 왼쪽] 로이 리히텐슈타인(R. Lichtenstein)의 '금붕어 어항'(1977)[뒤면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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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용어는 아마도 '오브제(objet)'일 것이다. 오브제는 프랑스어로 물건이라는 뜻인데 뒤샹은 변기라는 오브제에 무트(mutt)라는 가명사인을 하면서 현대미술에 도입된다. 일상이 예술이 되듯 일상품이 예술품이 되는 시대를 연 셈이다.

여기서 천과 금속 등 오브제를 사용하여 미국정치를 풍자한 서부 작가 키엔홀츠의 작품 하나를 보자. 머리도 없이 자전거안장 모자를 쓴 채 우유 통이 된 몸에 성조기를 감고 있는 미국대통령은 실체 없는 빈껍데기처럼 보인다. 미국대통령도 개인의 능력과 철학보단 상품처럼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잘 포장이 돼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비꼰 것이다.

미국의 대량소비문화가 낳은 미술

웨인 티보(Wayne Thiebaud 1920-) I '파이 진열대(Pie Counter)' 캔버스에 유채 76×91cm 1963. ⓒ Wayne Thiebaud VAGA, NY and SACK, Seoul, 2011
 웨인 티보(Wayne Thiebaud 1920-) I '파이 진열대(Pie Counter)' 캔버스에 유채 76×91cm 1963. ⓒ Wayne Thiebaud VAGA, NY and SACK, Seoul,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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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유럽의 폐허로 그곳에 생필품을 수출하면서 미국은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된다. 1954년 미국에서는 RCA사 21인치 컬러TV가 첫 출시되었고 1960년대 미국의 TV보급률은 80%가 넘었다. 그러다보니 여기에 흘러나오는 현란한 광고가 소비를 폭발적으로 늘리게 되고 소비가 그 시대의 코드로 자리 잡게 된다.

티보의 '파이 진열대'는 달콤한 소비에 빠진 1960년대 미국의 한 모습이다. 자동화 등 첨단기술로 이런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이런 소비사회는 새로운 미술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이 작가도 어려서부터 이런 걸 봐왔기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으리라. 나중엔 물건만 소비하는 게 아니라 사람까지도 소비하게 되면서 대중스타가 등장한다.

미국문화의 아이콘을 예술화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 I '녹색 코카콜라 병(Green Coca Cola Bottles)' 캔버스에 합성 폴리머, 실크스크린 잉크, 흑연 209×145cm 1962.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Inc. SACK, Seoul, 2011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 I '녹색 코카콜라 병(Green Coca Cola Bottles)' 캔버스에 합성 폴리머, 실크스크린 잉크, 흑연 209×145cm 1962.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Inc. SACK, Seoul,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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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중소비시대에 코카콜라는 미국문화의 아이콘이라 할만하다. 이는 어찌 보면 우리나라 고려시대의 청자나 조선시대의 백자와도 비견할만하다. 이렇게 아주 흔한 소모품을 미술에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재치 있게 예술로 시각화한 사람이 바로 앤디워홀이다. 초록빛 나는 위 작품은 그의 코카콜라 작품 중에서도 최고걸작이다.

갑자기 그가 한 유명한 말이 생각난다. "대통령이 마시는 코카콜라나 내가 마시는 코카콜라나 같다" 이 말은 정말 20세기 미국사회의 한 단면을 정직하게 대변해주는 문장이다.

올덴버그, 톰 웨셀만 등 팝아트의 진화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1929-) I '거대한 담배꽁초(Giant Fagends)' 우레탄, 폼, 철사, 나무, 라텍스, 포마이카 132×244×244cm 1967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1929-) I '거대한 담배꽁초(Giant Fagends)' 우레탄, 폼, 철사, 나무, 라텍스, 포마이카 132×244×244cm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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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웨셀만(Tom Wesselmann 1931-2004) I '위대한 미국 누드 #57(Great American Nude #57)' 합성보드에 합성폴리머와 종이콜라주 122×165cm 1964. ⓒ Tom Wesselmann Museum SACK, Seoul, 2011
 톰 웨셀만(Tom Wesselmann 1931-2004) I '위대한 미국 누드 #57(Great American Nude #57)' 합성보드에 합성폴리머와 종이콜라주 122×165cm 1964. ⓒ Tom Wesselmann Museum SACK, Seoul,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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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팝아트는 미국의 대표미술로 자리 잡는다. 워홀과 동시대 작가들도 그런 정신을 이어가거나 발전시킨다. 그중 모든 걸 엉뚱한 상상력과 동심으로 보는 올덴버거가 있다. 그는 공공미술가로도 유명한데 청계천의 '스프링'의 작가이기도해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올덴버그는 위에서 보듯 재떨이 위에 놓인 담배꽁초를 거대한 기둥처럼 바꿔놓는다. 그는 이렇게 별난 발상으로 기존의 발상을 뒤집고 하찮은 물건에도 기념비적 상징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관객을 웃게도 하고 당황하게도 한다. 예술이란 이렇게 난해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과 가까이 있음을 알려준다.

톰 웨셀만의 '위대한 미국 누드'는 마네의 '올랭피아'와는 영 딴판이다. 우선 밝은 원색이 인상적이다. 얼굴 없는 미국여성의 누드는 신선한 카타르시스와 정신적 해방감을 맛보게 한다. 현대인의 익명성을 풍자하면서 미술을 자유롭고 경쾌한 유희로 만든다.

네오 다다, 물감만 아니라 오브제로 그리다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2008) I '푸른 독수리(Blue Eagle)' 유화, 흑연, 인쇄물, 면티, 캔, 철사, 조명 213×152×13cm 1961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2008) I '푸른 독수리(Blue Eagle)' 유화, 흑연, 인쇄물, 면티, 캔, 철사, 조명 213×152×13cm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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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번에서 가장 미국적인 네오다다 작품을 보자. 이 미술운동은 전통적 매체나 개념을 거부하고 붓과 물감만 아니라 오브제로 작품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역시 R. 라우센버그와 J. 존스 등을 둘 수 있다. 이들은 녹슨 판, 옷소매, 타이어, 박제독수리 등 갖가지 물체를 쓰는 '컴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g)'을 창안한다.

사실 이런 방식은 피카소가 20세기 초에 신문지, 화장지, 잡지 등을 찢어 붙이는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에서 유래한다. 이게 발전하여 콜라주(collage 붙이기)가 되고, 다시 아상블라주(assemblage 모아 만들기)가 된다. 이런 게 다 오브제를 활용하는 예술장르이다.

그리고 라우센버그는 약관 39세로 마침내 미국인 최초로 1964년 베니스비엔날레 대상을 받는다. 이는 당시 미국미술이 세계미술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준 쾌거였다. 그는 이렇게 세계미술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거장으로 인정받는다.

미술을 통한 미국문화의 브랜드화

만 레이(Man Ray 1890-1976) I '행운(La Fortune)' 캔버스에 유채 61×74cm 1938
 만 레이(Man Ray 1890-1976) I '행운(La Fortune)' 캔버스에 유채 61×74cm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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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1870년 뉴욕에 루브르박물관에 견줄만한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 세운다. 그리고 1930년대 초엔 '뉴욕현대미술관(MoMA)'와 '휘트니미술관'도 완공된다. 1940년대엔 '구겐하임미술관'을 연다. 미국은 이렇게 미술을 통해 문화국이라는 명예를 얻고자 한다. 그런데 1950년대부터 실제로 미국은 추상표현주의로 세계미술을 주도하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 유럽과 미국의 가교역할을 한 미국작가가 있다. 바로 전위사진의 선구자인 만 레이다. 그는 뉴욕보다는 파리에 살면서 유럽적인 것을 미국에 이주시켜 미국미술을 풍성하게 한다. 그는 뒤샹과 친구가 되어 그가 전해준 다다나 초현실주의에 큰 영향을 받는다.

위 작품 '행운'은 그가 좋아하는 당구를 주제로 한 것으로 그는 기존의 법칙이나 예술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시각화한다. 과장된 원근법으로 낯설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재현적 관습을 해체하고 새로운 양식을 창출한다.

미국미술과 첫 키스, 밋밋할까 짜릿할까

마리솔 에스코바(Marisol Escobar 1930-) I '여인과 강아지(Women and dog)' 나무, 석고, 합성폴리머, 박재강아지, 혼합재료 183×216×122cm 1964
 마리솔 에스코바(Marisol Escobar 1930-) I '여인과 강아지(Women and dog)' 나무, 석고, 합성폴리머, 박재강아지, 혼합재료 183×216×122cm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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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번 전에서 인기 높은 에스코바의 작품 '여인과 강아지'를 보자. 이 작가는 베네수엘라 계 프랑스출신으로 1950년 미국에 이주했다. 미국 인디언공예품에서 큰 영감을 받고 오브제를 집적하여 만드는 아상블라주 기법을 즐긴다. 여기 주인공은 실물 크기와 같은 미국 중산층주부로 그들의 얼굴 속에 숨겨진 풍요 속 허전함을 보여준다.

하여간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미국미술을 한자리에서 소개된 건 처음이다. 미국미술과 첫 키스 맛이 어떻지 궁금하다. 유럽미술에 익숙한 관객에게 이런 미술이 좀 낯설 수도 있다. 21세기를 맞아 우리는 문화전쟁 속에 살고 있다. 이런 전시를 통해 한국미술도 다시 돌아보고 세계미술에 대한 전망과 함께 동시대미술에 대한 안목도 갖췄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것이 미국미술이다 홈페이지 http://americanart.kr/home.html
- 입장료 성인 12000원 - 시간: 오전10시~오후7시(화-목), 오전10시~오후9시(금-일)
- 휘트니전 문화행사 안내 장소 : 덕수궁미술관 (로비, 시청각실 관객 누구나)
- 미니 재즈연주회 : 7월 매주 금요일 17:40, 18:00
- 팝스팝스 미니콘서트 : 8월 매주 금요일 18:00 (총 4회)
- 미국 대중문화 이해 - 뮤지컬 : 9월 중(날짜는 추후공지)



태그:#미국현대미술, #휘트니미술관, #오브제, #컴바인 페인팅, #라우센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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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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