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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전용 병동인 효자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은 모두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허리가 굽었고, 팔 다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온전하게 쓰는 예가 드물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인다 해도 휠체어나 보행기에 의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딱 1퍼센트의 확률이라고나 할까. 자신의 두 발로 힘차게 걷는 할머니가 계셨다.

이 할머니는 허리도 굽지 않았고, 걸음걸이도 할머니들 특유의 그것이 아니라 옛날 양반네들이 했다는 팔자걸음이었다. 게다가 두 팔은 또 앞뒤로 어찌나 힘차게 내저어대는지 그 팔에 스친 사람치고 "아이고 아파라" 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살짝 스친 사람이 아프다는 소리를 낼 정도라면 할머니 자신도 꽤나 아플 법한데 전혀 그런 내색이 없었다.

링거를 꽂아놓으면 어느새 주사기를 빼내서 '쭈쭈바'를 빨아먹듯이 쭉쭉 빨아먹다가 온 몸을 피투성이로 만들어놓기 일쑤인 이 할머니는 효자병동의 완전한 독불장군이었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몰라 간병인이나 간호사 등 종사원들이 항상 전전긍긍해야 하는 요주의 인물이었고, 큰소리 낼 일이 없어서 무덤 속처럼 침체돼 있는 병동 전체에 이따금 활기를 넣어주는 산소 같은 사람이기도 했다.

옆 병상이든 옆 병실이든 누군가 병문안이라도 왔다 치면 쪼르르 달려가서 "나도 빵 먹을 줄 알어"하는 것은 기본이다. 손에 쥐어진 빵을 한 입 먹어보고 마음에 안 들면 뒤로 홱 던져버리고 다시 손을 내밀며 "빵이 쉬었어, 딸기 줘"하는 말로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을 기절초풍하게 만들어놓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졌다.

철없는 백작부인 할머니 꼼짝 못하게 하는 존재는?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이 철없는 백작부인 같은 할머니에게도 '쥐약'같은 존재가 한 사람 있었다.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다. 거칠 것이 없이 휘저어대고 다니다가도 남편이 달려와서 "또, 또오" 한 마디 소리를 질러대면 "알았어요. 얌전할게요" 하고 아주 얌전한 목소리를 내면서 침대로 들어가는데 그러는 순간에도 눈은 저 멀리 다른 곳을 더듬고 있었다. '저 영감태기 제 자리로 가면 바로 튀어나가야지'하는 듯이 그렇게.

효자병동뿐만 아니라 병원 전체를 통해서도 완전히 유일한 케이스라고나 할까, 그랬다. 부부가 벽 하나를 사이로 함께 입원해 있는데 도무지 어디가 아파서 장기간 병원 생활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의사나 간호사를 붙잡고 그것을 확인해 달라 할 일도 아니어서 그저 구경이나 하는 거였다.

어떤 때 보면 '짠'하기도 했다. 부부가 기왕 병원 생활을 할 바에는 특실 같은 데서 함께 살아가는 게 온당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남편은 오른쪽 11인실에서 다른 남자들과 함께 있고, 아내는 왼쪽 9인실에서 다른 할머니급 여자들과 함께 있으니 이산도 이런 이상한 이산가족이 없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갈라져 있다 보니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르지 않나, 귀를 기울이느라 바빴고 아내는 아내대로 '무슨 짓'을 하다가도 남편이 달려오지 않나 뒤를 살피느라 또 바빴다. 그래서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재미가 단일하지 않고 복합적으로 배가되는 것이었다.

두 부부가 함께 있을 때 보면 그렇게 대조적일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두 발로 땅을 딛고 서면 그 모양이 완전한 기역자 형태였다. 오리처럼 궁둥이가 뒤로 빠져 있는 형국이어서 앞으로 오고 있는데도 뒤로 물러서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에 그 부인은 완전히 꼿꼿하게 일자형이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갖고 달려가는 순간에 할아버지가 그것을 발견하고 허둥지둥 뒤를 좇고 있을 때의 모습은 비유가 좀 이상하지만 <노트르담의 곱추>가 얼핏 연상되기도 했다. 한없이 착하고 순진한 곱추 콰지모도와 천진난만한 소녀 에스메랄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기역자 형이 되기까지의 사연이 또 재미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겨우 삼 년밖에 안 걸렸다고 했다. 삼 년 전에는 할아버지 당신도 두 발로 땅을 딛고 서면 쭉 곧은 일자형이었단다. 그런데 할머니가 삼 년 전의 어느 날부터 이상한 짓을 하도 많이 해대니까, 그 이상한 짓을 수습하고 다니느라 꼿꼿이 서볼 틈이 없었다는 거였다.

"이리 기고, 저리 기고, 날마다 그렇게 불불불 기어 다니기만 했당게라."

할머니가 입 안에 든 밥알들을 푸, 불어놓으면 그것을 쓸어 담느라 기어 다니고, 국그릇을 박살내 놓으면 또 그것을 닦아내고 치우느라 기고, 라이터를 당겨 불을 질러놓으면 그것을 끄러 다닌다. 그렇게 정신 차릴 틈이 없이 허둥거리다 보니 허리를 펴는 시간조차도 아까워서 그냥 기어 다니며 수습을 했는데 삼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허리를 펴고 싶어도 이젠 펴지지가 않는다는 거였다.

당신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 사람에게도 깍듯이 존댓말을 쓰는 이 할아버지의 하루 일과는 삼 년 전이나 지금이나, 집에서나 병원에서나 거의 다를 게 없다는 느낌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내가 집 밖으로 나갔다가 실종돼 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대폭 줄었다는 정도라고나 할까. 하긴 어쩌면 할아버지가 굳이 아내와 함께 병원 생활을 하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물론 할아버지 당신 손으로 밥을 짓지 않아도 되는 잇점도 있을 터이었다. 빨래나 청소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매 끼니 때마다 반찬을 챙기고 수시로 물수건을 만들어다가 아내의 이곳저곳 더러워진 데를 닦아내는 등의 잔일은 여전히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그랬다. 할아버지는 간병인들에게 맡기지 않고 자기가 직접 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런 잔일에서 생의 최대 보람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일을 하고 있을 때의 표정이 그렇게 잔잔하고 부드럽고 넉넉해 보일 수 없었다.

반찬을 조달하는 방식도 눈물겨운 데가 있었다. 이웃 병상의 환자에게서 그 가족이 가져온 것을 얻기도 하고, 병원 앞 식당 주방에서 음식 쓰레기 치우는 일을 거들고 얻기도 하는데 간장게장이라든가 특이한 젓갈 같은 값비싼 것들은 시장에 가서 사 오기도 했다. 그렇게 준비한 반찬들을 플라스틱 통에 정리해서 공용 냉장고 안에 두었다가 식사 때가 되면 양손에 하나씩 들고 아내의 병실로 들어섰다.

기역자로 완전히 굽은 몸에 반찬통을 들고 뭔가 좀 미안스럽다는 투로 살살 웃어가며 병실로 들어설 때의 모습은 뭐라고나 할까, 예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떤 기이한 마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엉덩이를 뒤로 멀리 빼고 있어서 자꾸자꾸 멀어져가는 것 같은데도 어느새 안으로 들어와 있는, 어느새 안으로 들어와서 주변 여러분들에게 미안하다는 투로 연신 고개를 굽신거리며 히죽히죽 웃고 있는 그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 사람이 정말로 사람인가? 남자인가? 싶어지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주변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하는 그 잠시의 시간도 이 철없는 백작부인 같은 할머니는 놓치는 법이 없었다. 어느새 남편의 손에서 반찬통을 빼앗아 들고 마치 석삼년이나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어대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또, 또오, 맨입으로"하고 소리를 지르면 "알았어요, 안 먹어"하고 뒤로 물러앉기는 하지만, 할아버지가 다시 주변 여러분들에게 미안하다는 투의 관심을 둘라치면 할머니는 다시 얼른 반찬통에 손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기역자 할아버지에게 반한 간달프 할머니

그런데 이들 부부의 이러한 모습을 전혀 다른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병원에 쌔고쌘 남자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 연애를 하겠다고, 그리하여 퇴원하는 날 '새깽이들'한테 연애 사실을 공식적으로 통보겠다고 공언해 온,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간달프처럼 머리가 성성하게 완전히 백색인 할머니가 하필 그 할아버지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던 모양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누구도 그것을 진담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나도 명색이 여잔디 말이오. 당신네들 하는 꼬라지를 보니께 이놈의 가심에서 천불이 나서 못 살겄소. 그러니께 당신네들이 책임지고 내 영감 하나 소개를 하든가 만들어내든가 하시오 잉?"

'간달프 할머니'가 '기역자 할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했을 때는 그저 농담으로 여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만한 정도의 질투심은 병실 안 할머니들이 갖고 있는 대체적인 감정이기도 했다. "아이그 참말로 눈꼴시라서 못 보겄네 거"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간달프 할머니'는 "눈꼴시라서 못 보겠다"고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똑바로 쳐다보며 '저 남자를 내 것으로 만들 방도가 없을까'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느 하루 갑자기 돈을 끄집어내 건네면서 "쩌그 나 미안스런 말씀인디 꼴뚜기젓 좀 사다주시오, 야?"하시더니 다음 날은 역시 돈을 건네면서 "나 쩌그 머시냐 초코파이 좀 사다주시오 야?"하시더니 그 다음 날은 또 "담배 최고로 비싼 걸로 좀 사다주시오 야?"하는 말로 병실 안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병실에서 담배를 피울 수도 없게 되어 있거니와, 할머니 자신이 담배를 피는 모양을 본 적도 없고, 피운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설령 할머니 자신이 담배를 피운다 하더라도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면 절대로 안 된다는 의사의 엄명이 있었고, 그런 엄명이 없었다 하더라도 '허리가 작신 부러져 버린'상태의 할머니로서는 사실상 입만 살아 있을 뿐 담배든 무엇이든 당신 스스로 몸을 움직여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담배를 사다 달라고 했다. 그것도 아들이라고 부르는 신체 건장한 사내가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기역자 할아버지'에게 그런 부탁을 했다. 왜?

어쨌든 '기역자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할머니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예, 예, 그러지요"하고 밖으로 나간 할아버지는 뭔가 다른 볼 일도 보고 해서 한 시간쯤이나 뒤에 들어왔다. 그리고 담배를 내 놓았다. 그러자 '간달프 할머니'는 담배를 도로 내밀면서 "내가 담배나 필 줄 알간디요, 영감님 피우시라고요"하는 그 간단한 한 마디로 보는 사람들의 허를 팍 찔러버리고 있었다.

담배도 담배지만, '영감님'이라는 단어와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에 갑자기 발생한 일종의 교태라고나 할 나긋나긋함을 사람들은 아마 두고두고 잊지 못할 터이었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그 나긋나긋함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도 물론 알고 있을 터이었다. 모두들 알고 있는 그것을 당사자 중의 한 사람인 '기역자 할아버지'인들 모를 까닭이 없었다.

얼결에 담배를 받아든 '기역자 할아버지'는 두 발을 땅에 딛고 서면 기역자가 되는 상태 그대로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누워 있는 귀부인 앞에 허리를 푹 수그린 채 명령을 기다리는 하인의 자세라고나 할까. 얼굴이 '간달프 할머니'가 누워 계시는 쪽으로 숙여져 있는 까닭에 그 표정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대단히 당황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당황한 채로 '기역자 할아버지'는 돌아섰고, 여전히 기역자인 채로 서둘러 병실을 빠져나갔다. 내가 그날 눈으로 확인한 상황은 거기까지였다.

백작부인 할머니와 기역자 할아버지 갑작스럽게 여행을 떠나다 

그날은 일단 집으로 퇴근을 했다가 다음날 오후에 다시 효자병동으로 들어섰을 때, 그때 '기역자 할아버지'는 무슨 뜬금없는 휴가를 간다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비명이라도 지르듯이 내 입에서 무슨 말인가가 나왔다. 그러자 '기역자 할아버지'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느긋하게 답변을 내놓았다.

"사람이 병원에만 너무 오래 있으니께 말이에요. 죽은 것 같아서 말이에요. 가끔은 휴가도 가고 그래야지요." "허허허이, 이게 뭔 일이래요? 휴가라니, 휴가라니요? 뉴스에 나오겠네 정말."

'혹시 도망가시는 거 아니에요?'소리가 내 입에서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차마 내놓지는 못하고 그저 구경이나 할 수밖에 없었다. '기역자 할아버지'는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당신이 계획한 휴가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간단한 짐을 꾸리고, 당신 자신이 우선 환자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부인의 옷가지들을 챙겨들고 나섰다. 평소에는 부인의 병실로 들어설 때 남자가 자꾸 드나들어서 죄송하다는 뜻으로 만면에 미소를 띠고 실내를 둘러보곤 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인사가 생략되고 있었다.

부인의 옷을 갈아입히려나 보다 생각하고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환자복 위에 치마를 입힌 다음 환자복 바지를 벗겨내고, 상의 또한 스웨터를 먼저 입혀놓고 환자복을 벗겨내는데 그렇게 익숙할 수가 없었다. 여자들이 옷을 갈아입을 때 벗는 것보다는 입는 것을 먼저 하는데 꼭 그런 순서인 것이다. 내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자면, 옷을 벗고 입는 것이 아니라 입은 뒤에 벗는 여자들의 옷 갈아입는 방식은 언제나 경이로웠다. 그런데 여자 자신이 아닌 남자가 마치 자신의 몸인 것처럼 그렇게도 익숙하게 입히고 벗기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 부부는 서둘러 '휴가'를 떠났다. 어디로 가시느냐고, 예정이 며칠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배웅을 끝내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내가 가야 할 곳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간달프 할머니'가 짓고 있을 어떤 표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고나 할까. 나는 그날 어머니가 계시는 병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로비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결국은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태그:#노인병동, #연애감정, #할머니들, #할아버지,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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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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