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매년 올라가는 건강보험료에 대한 해묵은 문제만큼이나 심각한 것은 가벼운 증상이나 병원치료가 필요치 않는 것에도 병원을 찾는 것과 함께 대형병원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깊게 베어 있다.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런 이유 중의 하나가 큰 병원에 가면 충분한 의료시설과 뛰어난 의사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이나 기대를 하기 때문이지만, 병원을 나설 때면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잦다. 내 몸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잘 알 텐데도 의사 앞에서는 선뜻 내 생각을 편하게 말하지 못하고 의사로부터 들을 수 있는 것도 제한적인 것은 이윤을 쫓는 병원시스템의 전반적인 문제라고 본다.

 

아플 때 병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프지 않더라도 내 몸과 건강에 대해서 터놓고 상담을 할 수 있는 의사를 만날 수는 없을까? 내 주변에 그런 병원이나 의사 한 명쯤 알고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지만 그런 병원이 있다고 해도 그곳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명예를 가진 특권층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일 뿐, 일반 서민들에게는 언감생심 꿈 같을 것 같지만 그런 병원이 있다.

 

작년, 겨울에 강원도 원주의 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을 방문했을 때 의사와 환자가 격의 없는 소통을 하는 근간이 되는 것이 의료생협임을 느끼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이 당시 광풍처럼 전국을 휩쓸던 신종플루 예방백신 주사값이 2만 원(비회원 3만 원)으로 종합병원의 13만 원과 비교가 되었고, 또한 과잉진료가 없다는 것이었다.

 

전국에 있는 의료생협은 13개로 아직은 매우 적은 숫자이지만 현재 의료기관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의료인과 주민들이 의기투합하면 숫자를 늘리는 일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2012년 서울 은평구에서 의료생협 '살림'의 설립을 준비하는 활동가들의 현장활동을 취재하기 위해 따라나섰다.

 

18일 오후 6시, 은평구 불광천에 간이탁자와 의자를 놓고 체지방, 혈당검사, 혈압을 검사하는 장비들을 갖춘 후에 활동가 네 명이 본격적인 거리건강체크 활동을 시작했다. 이날은 세 번째 활동을 하는 날이었다. 바람잡이(?)라도 할 생각에 진료를 먼저 받겠다고 나섰지만 체지방 검사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기자가 나서서 주민들에게 진료과정을 안내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주민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나온 거야. 적십자?"

"살림의료생협에서 나왔어요. 생협 혹시 아세요?"

"모르지."

"의료생협은 주민들이 조합을 만들고 돈을 모아서 병원을 운영하는 거예요."

 

지나가던 주민 중에는 거리에서 무료진료를 하는 것에 호기심과 함께 돈을 받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활동가들은 일일이 의료생협에 대해서 친절하고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진료를 받은 김대수(69·가명)씨는 매년 정기검사를 하고 있다면서도 나이가 많아서 건강에 항상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연세에 비해서 아주 건강해 보이는데요. 결과는 좋게 나왔나요?"

"보기에만 건강해 보이는 거지, 안 그래요. 건강할 때 관리를 잘해야지 해마다 검사를 하는데 당뇨가 높아서 위험 수위야 잘 관리해야 해."

 

가족력(유전)으로 20년째 고혈압과 당뇨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박순심(67·가명)씨는 의료생협에 대한 설명을 차근차근 듣더니 허리협착증으로 병원에 다니면서 느꼈던 불편함을 하소연하듯이 상담의사에게 털어놓았고, 의사는 말을 끊거나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증상과 처방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박씨는 일반병원과 다른 진료에 대해서 공감한다는 듯이 더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을 보였지만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의 눈치를 느꼈는지 아쉬운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활동가들은 잠시도 쉴 틈 없이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길어지자 마감시간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진료를 하려는 듯 검사를 하는 손놀림이 더욱 빨라졌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오후 7시 30분 가까이 되어서 대기 중인 주민들까지만 진료를 하겠다고 알렸지만 일부러 찾아왔다며 꼭 진료를 해달라는 주민에게도 차근차근 설명을 하고 진료를 하는 동안에도 찾아오는 주민이 있어서 이러다간 안 되겠다 싶어 기자가 거리진료를 알리는 펼침막을 접었다.

 

살림의 활동가 다림(교육과나눔팀장)씨는 거리진료에서 이상 소견이 있는 주민에게는 의료생협병원이 아직 개원을 하지 않았기에 다른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을 것을 알려주고 필요한 검사가 어떤 것인지도 알려준다고 한다. 거리진료를 받은 주민들의 진료카드는 두 장을 작성해서 주민에게도 한 장을 주고 한 장은 보관을 해서 다음 거리진료 때 다시 찾아오면 활용하기도 한다.

 

주민들에게 친근하게 진료상담을 했던 의사 추혜인(33·서울대병원 수련의)씨는 의대에 다닐 때부터 의료생협에 관심이 있었고, 여성운동을 계속해오면서 주민들과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까 의료생협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출세(?)의 길을 버리고 나오는 것에 대해서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을까.

 

"내년 초에 수련의 과정이 끝나면 병원에서 나올 수도 있고 남을 수도 있지만, 의료생협병원이 시작되면 나오려고요. 부모님은 대학(병원)에 남아라 이야기는 하는데 제가 그렇게 하지 않을 성격인 것을 알기 때문에…(웃음). 지금은 기대는 안 하시고, 이제는 의사가 된 것만으로 만족을 하세요. 부모님은 제가 의사가 안 될 줄 알았거든요. 이제는 소원 성취하셨기 때문에…(웃음)."

 

살림의 현재 조합원은 173명에 출자금은 1500만 원이 모였다. 생협법에 따라서 조합원 300명, 출자금 3000만 원이면 의료생협병원을 설립할 수 있다. 소유와 운영도 조합원 모두가 함께 참여한다. 함께하는 의료진으로는 가정의학과 2명, 치과, 한의사 각 1명이 같이하며, 서울과 경기지역에 살고 있거나 직장이 있는 이들은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정기출자금도 1구좌당 월 1만 원부터 가능하며 탈퇴할 때는 전액을 돌려받는다.

덧붙이는 글 | 거리건강체크는 5~6월과 9~10월 불광천 일대에서 진행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로 문의.
문의는 (가)살림의료생활협동조합 02) 6014-9949, 인터넷카페: http://cafe.daum.net/femihealth


태그:#의료생협, #살림, #생활협동조합, #은평구, #불광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