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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가 에스파냐를 침략해 벌인 민간인 학살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이후 피카소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고야는 이런 계열과는 전혀 다른 그림도 많이 그렸다.
▲ 1808년 5월 3일의 처형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가 에스파냐를 침략해 벌인 민간인 학살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이후 피카소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고야는 이런 계열과는 전혀 다른 그림도 많이 그렸다.
ⓒ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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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에스파냐의 화가 고야(1746~1828)는 몇몇 유명한 작품들로 인상지워져 있었다. 그런데 그 그림들이 편차가 상당히 커 호기심을 끌었다.

이를테면 몇몇 작품은 계몽주의 화가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즉 날카로운 풍자와 리얼리즘 정신을 보여준다. <이성이 잠들면 유령이 나타난다>나 그 유명한 <1808년 5월 3일의 처형>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전혀 다른 작품 세계도 있다. 그들 작품은 표현주의적이고 대단히 혁신적이다.

그간 마음으로만 고야에 관심 있던 차에 마침 마로니에북스에서 품위 있는 타센(TASCHEN) 시리즈를 번역한 책이 나와 내 호기심을 충족해 주었다.

궁정 사회의 무기력과 허명 넘어 인간적인 모습 그린 고야

고야의 그림은 독특하다. 궁정화가로서 그가 그리는 이들은 '위엄이 있어야 하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는 과장해서 그리지 않았다. 유명한 <카를로스 4세와 그의 가족>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야는 왕가에 아첨하지 않았다. 그들은 호화로운 의복을 입었지만, 고야는 빛나는 지위를 강조해서 그리지 않았다. 왕은 총명하게 표현되지 않았고 왕비의 얼굴도 미화되지 않았다. 멍한 표정의 인물들은 심지어 바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 그림에서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진 궁정 사회의 무기력과 허명을 읽을 수 있다.

지위와 생계가 궁정에 달린 화가임에도 고야는 왕가에 아첨하지 않았다.
▲ 카를로스 4세와 그의 가족들 지위와 생계가 궁정에 달린 화가임에도 고야는 왕가에 아첨하지 않았다.
ⓒ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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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그림도 마찬가지다. 고야는 귀족 그림에 으레 있기 마련인 화려함과 지위의 상징을 배제했다. 오히려 인간적인 모습을 포착해낸다. 호베야노스 초상화가 바로 그런 사례다.

호베야노스는 당시 법무부장관이었다. 장관은 장식 없는 평범한 의복을 입고 있으며, 판관의 가발도 쓰지 않고 있다. 또 공식적인 자세도 취하지 않고 팔에 머리를 기대고 책상에 앉아 있다.

그는 관심을 끌려 하기보다 고뇌하고 지친 모습이다. 계몽주의자로서 무지와 미신에 맞서 싸우다 지친 모습으로 보인다. 고야는 계급장을 떼고 인간으로서 호베야노스를 그렸던 것이다.

장관의 지위를 빛나게 하는 데 관심을 쏟지 않고, 계몽주의 운동에 지친 인간적인 모습을 담았다.
▲ 호베야노스 초상화 장관의 지위를 빛나게 하는 데 관심을 쏟지 않고, 계몽주의 운동에 지친 인간적인 모습을 담았다.
ⓒ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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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화가를 지낸 화가들은 밝고 활기찬 궁정생활을 묘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고야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주제에 국한하지 않았다. 그는 에스파냐 궁궐의 오락과 소풍 대신 하급 신분의 현실을 그리기도 했다.

고야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계몽주의를 지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계몽주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림을 통해서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광기, 불안, 두려움으로 작품 세계 극적으로 변화해

그의 내면은 무언가 해결하기 힘든 문제와 씨름하는 듯하다.
▲ 고야의 자화상 그의 내면은 무언가 해결하기 힘든 문제와 씨름하는 듯하다.
ⓒ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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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그의 그림이 계몽주의를 선전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계몽의 뒤편에 있는 어둠을 그리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고야의 그림은 독특함과 흥미를 더한다.

1793년 이후로 그의 그림은 환상과 악몽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르렀고 청력을 상실했다.

그의 작품이 극적으로 변하게 된 모습을 보여 주는 작품이 동판화로 작업한 <로스 카프리초스>(변덕) 연작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근대 판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다양한 그림 중에는 당시의 권력자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내 주목을 끈 것은 그런 그림들이 아니라 '모호한' 그림들이었다. 모호하다는 것은 그림 속 그의 태도가 그렇다는 말이다.

즉 그가 기이한 환상을 풍자에 이용하는 것인지 거리감을 두고 있는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고야의 그림은 그것이 더욱 매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묘하다.

그 외에 인간의 광기를 담기도 하고(<정신병자 수용소>),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을 포착하며(<밤의 폭풍>), 무언가에 쫓기는 두려움을 화폭에 담기도 한다(<거인>). 사실 내게 고야는 이런 분위기의 그림들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밤의 산불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포착한 그림으로 보인다.
▲ 밤의 폭풍 밤의 산불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포착한 그림으로 보인다.
ⓒ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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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림들에서는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 대담한 붓 터치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 세계가 극적으로 변한 것은 근대적 개인의 공허한 내면을 직면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 세기를 앞서 성취한 미술계의 혁신

이번에 고야가 대단히 혁신적인 화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읽으며 얻게 된 큰 성과다. 특히 <개>라는 그림은 큰 충격이었다. 이 그림은 한 세기 뒤에나 가서야 볼 수 있는 미술계의 혁신을 성취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홀로 버려진 존재의 공허함을 그린 무척이나 충격적인 그림이다.
▲ 개 홀로 버려진 존재의 공허함을 그린 무척이나 충격적인 그림이다.
ⓒ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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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모든 예술적 전통을 거스르고 있으며, 공간을 공허하게 남겨 둔다. 그림에서 보이는 것이라곤 단 1%를 차지하는 개의 머리뿐이다. 어둡고 설명할 수 없는 고독과 불안감이 가슴을 채운다.

<곤봉 결투>라는 그림도 강렬하게 다가왔다. 무릎까지 찬 모래 속에서 도망칠 수도 없고 과연 승리자라고 해도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이 그림을 현대 사회에 대한 적절한 비유로 읽었다.

우리가 이 모래 수렁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하면 지나칠까?
▲ 곤봉 결투 우리가 이 모래 수렁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하면 지나칠까?
ⓒ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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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수렁, 더구나 살아도 의미 없는 상황.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처절한 무한 경쟁 속에서 남을 죽이고 살아남아야 하지만 결국엔 아무 의미 없이 공허한 세상! 그에 대한 너무도 적절한 비유다. 머리털이 곤두선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가 처절하게 담긴 그림들

고독한 내면을 그렸다는 점에서,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은 그림이 또 있다. <감람산의 그리스도>! 이 그림은 프로테스탄트의 고독한 내면을 보여 준다. 보통 종교화에는 화면을 가득 채운 밝은 분위기의 천사들이 있을 테다. 그러나 이 그림은 절대적인 암흑이 공간을 채운다.

근대인에게 미리 주어진 역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운명이 주어져 있다. 우리는 그 운명 앞에서 왜냐고 항변한다.
▲ 감람산의 그리스도 근대인에게 미리 주어진 역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운명이 주어져 있다. 우리는 그 운명 앞에서 왜냐고 항변한다.
ⓒ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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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절규한다. 왜냐고. 왜 하필 나냐고. 그것은 현대인의 내면이기도 하다.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찾아야 하는, 외롭고 의혹에 찬 현대인의 모습이 너무도 강렬하게 담겨 있어 소름 끼친다.

개인의 고독한 내면은 출구를 찾지 못하면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행패 부리는 쪽으로 잘못된 출구를 찾기도 한다. 순례여행을 우울한 악몽으로 그린 <산이시드로 순례여행>이 그런 모습을 담고 있다.

이 그림에는 광기어린 사악한 군중이 담겨 있다. 성숙한 자아를 위해 노력하지 못하고 스스로 존재 이유를 찾지도 못한 군중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우쭐해 하고 행패를 부린다.

순례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집단 광기를 그렸다. 공허한 내면을 어찌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집단으로 떼를 지어 다니며 두려움을 회피한다.
▲ 산이시드로 순례여행의 일부 순례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집단 광기를 그렸다. 공허한 내면을 어찌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집단으로 떼를 지어 다니며 두려움을 회피한다.
ⓒ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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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공허한 내면을 돌아보지 않고 떼로 몰려다니며 자신의 두려움을 오히려 바깥으로 폭력을 행사하며 해소하는 이들이 떠오른다.

군복을 입고 손에는 권총을 들어 좌파 척결(빨갱이 사냥)을 외치는 이들, 전쟁의 상처로 인한 공허한 내면을 폭력으로 해소하는 전우회 회원들이 그들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는 이의 퇴행 욕구를 보게 된다.

비단 그들만이 아니다. 에리히 프롬의 지적처럼, 스스로 적극적인 자유를 만들지 못하는 이들은 익명의 권위에 의존해 집단이라는 도피처로 공허한 내면을 숨긴다.

고야의 그림을 알게 될수록 그가 근대 사회와 그 내밀한 속살을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대면하고 그 문제와 씨름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야의 그림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스스로 그림 읽는 재미를 만끽하게 하는 책

마로니에북스 출간
▲ 책 표지 마로니에북스 출간
ⓒ 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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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겪고 그 잔혹함을 담은 그림들과 말년에 자신의 집의 벽면을 채운 '검은 그림들'까지 모두 소개할 수는 없으리라. 나머지는 고야에 대한 책을 접해 보길 바란다.

이 책은 고야의 그림을 편중되지 않게 전반적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마음을 사로잡은 도판들을 내세우고 있어 무척 맘에 들었다. 특히 짧지만 명쾌한 설명으로 고야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다.

요즘 책들의 추세는 친절하게 모든 것을 다 떠먹여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 친절함에는 함정이 있다. 스스로 그림을 읽는 재미를 빼앗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중층적 작품 해설과 해석의 여백을 두어 스스로 그림 읽는 재미를 만끽하게 해 주었다. 나아가 충만한 가슴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감동을 만들게 했다.

덧붙이는 글 | <고야> / 로제 마리 & 라이너 하겐 / 이민희 / 마로니에북스 / 2010-12-10 / 1만2000원

개인블로그에도 송고했습니다.



고야 : 황금과 피의 화가

자닌 바티클 지음, 시공사(1997)


태그:#고야, #GOYA, #프란시스코 고야, #TAS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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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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